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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메일 스캔들에 클린턴 휘청…‘8년 통치의 벽’ 결국 못 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힐러리 클린턴이 선거 막판까지 ‘대선 징크스’로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와 백악관이 똘똘 뭉쳐 돕고 할리우드 문화예술계, 주류 언론은 물론 공화당 네오콘까지 지원에 나선 초대형 연합군을 꾸리고도 그간 미국 대선의 승패를 가르는 상식처럼 작동했던 징크스 때문에 ‘클린턴 바람’이 만들어지지 않아서다.

같은 당의 연속 집권 대부분 8년
징크스 깨나 기대했는데 막판 위기
클린턴 “내 e메일 아무 문제없다”
트럼프 “클린턴 당선땐 헌정 위기”

4선을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미국 대선의 공식은 8년 주기설이다.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집권은 길어야 최대 8년이고 8년을 통치하면 여당은 누구를 내보내건 진다는 게 정설이나 다름없는 징크스다. 유일한 예외는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이 연임한 뒤 부통령이던 조지 H W 부시가 1988년 대선에서 이겨 집권을 4년 연장했던 사례다. 미국 역사상 최고 인기 대통령 중 한 명인 레이건의 후광이 부시 당선을 도왔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8년 주기는 정권 피로감 때문이다. 지지자들은 이완되고 반대파는 결집한다. 올해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층들은 정권 피로감을 넘어 기성 정치 거부로 분노를 확대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민주당은 1972년 이후 앨 고어 전 부통령을 제외하고 대선에 한번 도전했던 이를 다시 대선 후보로 낸 적이 없다. 민주당의 대선 공식은 ‘새 얼굴’이다. 하지만 클린턴은 8년 전 민주당 경선 때 대세론을 구가했다가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역전당했던 과거가 있다.

72년 이후 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이끈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파격 카드다. 76년 대선 때의 지미 카터는 정치 입문에 앞서 조지아주 시골에서 땅콩 농사를 했다. 92년 빌 클린턴은 미국의 벽촌 아칸소주 주지사가 경력의 전부였지만 앞서 32세에 당선돼 최연소 주지사 기록를 만든 주인공이었다. 2008년 오바마 후보는 미국 사회를 흔들어 놓은 흑인 대통령 카드였다. 이들의 대선 구호 역시 신선했다. 카터는 ‘땅콩 만이 아닙니다’로 서민 후보이면서도 워싱턴을 바꿀 개혁 정치를 내걸었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맞선 빌 클린턴의 구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는 지금도 성공 사례로 회자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담대한 희망’은 지구촌을 흥분시켰다. 그런데 클린턴의 슬로건은 ‘함께 하면 강하다’이고, 유세 포인트는 “백악관,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모두 거쳐 준비됐다”에 있다. 민주당 지지층은 세상을 바꿀 새 정치에 열광해 왔는데 클린턴은 경륜과 안정을 강조하니 돌풍을 만들기엔 애초부터 한계가 있다.

민주당의 승리 공식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클린턴은 대세를 잡고도 이를 돌덩이 지지로 굳히지 못해 e메일 스캔들처럼 약점이 불거지면 지지율이 흔들리는 현상을 막판까지 반복하고 있다. 주별 여론조사를 집계해 선거인단 확보 숫자를 추정하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에 따르면 대선을 일주일 남긴 1일(현지시간) 클린턴은 263명, 트럼프는 164명을 확보했다. 클린턴이 대선 승리에 필요한 전체 선거인단의 과반(270명)에 여전히 근접해 있지만 닷새 전 클린턴 272명, 트럼프 126명에 비하면 트럼프가 맹추격했다. 연방수사국(FBI)의 클린턴 e메일 재수사 발표로 클린턴이 박빙 우세였던 일부 경합주에서 트럼프 표가 결집하는 때문으로 해석된다. 급해진 클린턴은 “내 e메일은 문제없다”며 지지층을 안심시키려 했다. 공세로 전환한 트럼프는 “(클린턴이 당선되면) 현직 대통령이 형사 재판에 갈 수 있어 미국에 헌정 위기가 온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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