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에 열린 J글로벌·채텀하우스·여시재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의 거물들이 방한했다. 그중에는 스티븐 그린(67·사진) 남작도 포함됐다. 그는 무역·투자장관(2011~2013)과 HSBC 그룹 회장(2006~2010)으로 일했다. 그린 남작에게 유럽의 입장에서 유라시아·아시아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 유럽인에게 유라시아란 무엇인가.
- “사실 유럽인들은 유라시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유라시아라는 개념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면 유라시아라는 관념은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는 공통의 지리적 배경을 바탕으로 공통의 기회와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21세기는 ‘유라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다.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유라시아에 산다.”
- 협력과 번영을 도모하는 단위(unit)로서 유라시아는 너무 큰 게 아닐까.
- “그렇지 않다. 유라시아 내에서 상호 연결성이 발전하고 있다. 철도·해상·항공 교통망이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현대판 실크로드가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대륙(landmass)에 살고 있다.”
- 유럽 입장에서 유라시아의 동쪽을 생각할 때 특히 어떤 지역이 떠오르는가.
- “동북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남아시아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 아시아 지역의 지역통합을 어떻게 보는가.
-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아세안은 유럽의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한편 장기적으로는 몰라도 단기적으로는 ‘동아시아연합’의 가능성은 낮다. 중국의 비중이 너무 큰 것도 문제다.”
- 유럽연합(EU)를 약화시킨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유라시아 내부의 경제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 “EU는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바란다. 특히 무역 영역에서 지역 공통의 목소리를 조율하지만 미국·중국·인도 등에 비하면 의견이 분열돼 있다. 브렉시트로, 특히 무역 협상에서 EU 공통의 공식적인 목소리가 더욱 약화될 것이다. 또 영국이 주요 아시아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할 것이기 때문에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공식 경제 대화가 보다 복잡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전에도 개별국가와 개별기업들이 EU와는 별도로 각자의 목표를 추구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독일은 매우 성공적으로 중국에 자본재를 수출했다.”
- 당신은 성공회 사제이기도 하다. 유라시아 협력의 종교적 측면은.
-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협력과 평화를 위해 기독교·불교·이슬람 등 유라시아의 종교간 대화가 필요하다.”
- 한국을 어떻게 보는가.
- “1980년 처음 서울에 왔다. 한국에 올 때마다 엄청난 변화를 목격했다.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규모를 갖게 됐다. 앞으로 50년은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에 달려있다.”
- 앞으로 유라시아 협력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 “국가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유라시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국에, 여러분은 한국에 살고 있을 뿐이다. 100년 후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 유라시아 사람들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 올바른 결정을 내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 당신은 관계·재계에서 매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비결은.
- “모르겠다. 운도 좋았다. 나는 항상 국제적인 맥락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을 선호했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