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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 평화시대…치킨게임 없이 불황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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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반도체 D램 시장이 무혈(無血) 호황을 맞았다. D램 가격이 최근 급등세를 타며 2014년 말 시작된 D램 불황은 완전히 끝났다는 게 시장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호황은 과거와 다르다”고 평가한다. 벼랑끝 전술을 의미하는 치킨게임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업체 하나 없이도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삼성·SK·마이크론 삼각구도
퇴출된 업체 없이 가격 반등
수십조 실탄 중국 업계 변수
“한국, 호황 때 격차 더 벌리고
전략적으로 비메모리 키워야”

“세계 D램 수요가 증가하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적당한 견제를 유지하는 ‘삼국 시대’에선 당분간 D램 가격이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지는 중국에 달렸다. 중국산 D램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이런 평화는 깨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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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3 4Gb의 평균 계약가격은 지난달 말 기준 1.88달러다. 10월 한 달 사이에만 25.3% 급등했다. 지난 7월 하락 추세를 멈추고 반등하기 시작한 D램 가격이 완연한 상승 흐름을 탄 셈이다.

D램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건 중국 스마트폰 수요다. 지난해 D램 가격이 떨어진 배경은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이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가격 대비 성능’에 집중하며 단가 싼 부품만 사들인 것이다. 마침 세계 스마트폰 시장도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올해 가격이 반등한 건 중국 소비자들이 ‘고사양 스마트폰’을 찾기 시작해서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중국산 스마트폰이 차별화를 위해 고사양 부품들을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고용량 D램을 중심으로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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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에 걸친 D램 시장 구조조정 끝에 살아남은 세 개 업체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도 치킨게임이 종식된 배경이다. 1994년만 해도 세계 반도체 D램 시장엔 25개 업체가 난립해 있었다. 이들 업체가 경쟁적으로 설비를 늘리고 제품 단가를 떨어뜨리며 4~5년마다 D램 시장엔 큰 불황이 닥쳤다. 생산 원가 한참 아래로 떨어지는 제품 가격을 견디지 못하고 IBM·엘피다 같은 대기업이 D램 생산을 접었다.

남은 세 업체는 “더 이상의 치킨게임은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려고 혈안이 돼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국가 지원으로 수십조원의 실탄을 손에 쥔 중국 반도체 업계는 이들 세 업체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면 언제라도 사들일 기세다. 지난해에도 칭화유니그룹이 D램 불황에 고전하는 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각각 인수 제안을 했다 거절당했다. 이세철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격 급등락이 심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중국 기업이 뛰어들면 당분간 시장이 요동칠 게 불 보듯 뻔하다”며 “기존 D램 업체들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게 중국 기업의 진출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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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는 이르면 내후년께 중국산 D램이 출시될 것으로 내다본다. 처음부터 고사양 제품이 나오긴 어렵겠지만 시장 파급력은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6할을 사들이는 큰손이다. 중국 정부가 2014년 1387억 위안(23조3200억원)의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해 가며 자급률을 끌어올리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의 주도권 유지 만큼이나 국가적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사물인터넷(IoT)이나 자동차용 반도체 같은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려면 중소 규모의 반도체 설계 기업이 더 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창원 노무라증권 전무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이 우려되긴 해도 국내 업체들이 10년 정도는 버틸 기술적 격차가 있다고 본다”며 “호황기일 때 기술 격차를 더 벌리고 신성장 분야에 투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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