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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맛집] “탁 트인 카운터에서 즐기는 소박한 가이세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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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의사 윤대현의 ‘소우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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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세키는 고급 일본요리다. 소우게츠는 격식을 버리고 카운터에 앉아 가이세키 요리를 즐기는 집이다. [사진 윤대현]

영화같이 어두운 강남 뒷골목의 ‘반전 맛집’
열린 공간에서 요리 만드는 과정 보는 즐거움
셰프들이 모두 젊고 유쾌해 긍정 에너지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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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떨어지는 이 가을, 마음 맞는 사람과 가볍게 한 잔 하고픈 생각에 하지현 선배(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신사동에 맛있는 전 집을 개발했는데 오늘 어떠신지요?’ 서로 취향이 비슷해 ‘ㅇㅇ’ 라는 단순한 답이 올 줄 알았는데 ‘괜찮은 곳이 생겼으니 거기로 가자’며 약도를 보내왔다. 선릉쪽 골목에 있는 ‘소우게츠’라는 가이세키(일본식 정찬) 집이었다. 혼자 ‘오늘은 텔레파시가 안 통했나, 해물파전에 막걸리가 딱인 날씨인데, 특별한 날도 아닌데 너무 센 데를 가네’라고 궁시렁거리며 찾아 갔다.

가게로 가는 골목길은 어두웠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도 모르겠네’ 하며 혼자 스릴러 영화를 찍다 보니 장소에 이르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대와 달랐다. 일반적인 가이세키 요리집과 달리 룸이 아니라 탁 트인 인테리어였다. 셰프는 모두 젊고 유쾌해 어두운 밤길과 더욱 극적인 대조를 이뤘다. 선배가 예약해놓은 카운터 자리에 혼자 머쓱하게 앉았더니 셰프들이 단골 대하듯 반갑게 말을 붙인다. 모두가 너무 적극적이라 주인을 알아맞히기 어려운 상황. ‘혹시 모두 지분을 갖고 있나’ 싶었다. 속물적 생각의 관성을 꺽지 못하고 나름 매의 눈으로 오너셰프를 찍었는데, 틀렸다. 오너는 주방 뒤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틀려도 기분은 좋았다. 자기 일을 정말 즐겁게 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 때문이다. 나까지 슬며시 흥이 돋기 시작했다. 감정엔 전염성이 있다. 흥 넘치게 일하는 사람과 함께 하니 그 즐거움이 찌든 내 마음에까지 전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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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선배가 와서 두 가지 가이세키 코스 중 싼 걸 골라 식사를 시작했다. 전체·구이·튀김·메인 요리 등 10종류의 음식이 재미나게 나왔다. 나에게 보여준 흥 그대로가 요리에 담겨 있었다. 맛이 즐거웠다. 심지어 젊은 열정이 주는 창조성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몇 주 전 가게 식구들 모두 벤치마킹을 위해 일본에 다녀왔다고 한다. 많이 배웠고 더 노력해야겠다고 말하는 걸 들으니 정말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나에게 주는 흥과 에너지가 젊고 신선했다. 게다가 룸이 아니라 카운터에서 먹으니 순서대로 나오는 요리 만드는 과정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어 더 즐거웠다. 점심엔 벤또(도시락)를 판다고 한다.

첫 경험을 하고 한 달 후쯤 병원 후배와 다시 찾았다. 맛도 맛이지만 그 흥이 그리웠던 것 같다. 후배와의 즐거운 저녁이 무르익고 있을 때 예상 못한 반가운 얼굴이 가게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하 선배가 수련중인 전공의 선생님들과 함께 온 것이다. 전작을 하고 2차로 찾은 듯했다. 바쁜 수련생활에 치친 제자들에게 흥을 주고 싶어 찾지 않았나 싶다. 그들도 즐거운 눈치였고, 흥이 더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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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대한 흥, 다시 말해 긍정성은 행복에 이르는 중요한 요소다. 긍정성 유지에 필수적인 것이 튼튼한 자존감인데, 자존감은 두 요소의 혼합물이다. 하나는 내가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자기 확신이고 다른 하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잘 마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다. 성공 경험이 쌓이면 당연히 자존감이 튼튼해진다. 거꾸로 튼튼한 자존감은 성공 경험에 이르게 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살다 보면 안 좋을 일도 생기고 실패도 겪지만 자존감이 튼튼한 사람은 특유의 긍정성과 삶에 대한 흥으로 전화위복의 결과를 이루는 걸 보게 된다.

자존감 유지를 위해선 먼저 내 삶을 제대로 수용해야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수용이다. 그 다음 더 좋은 쪽을 바라보는 주관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부정적인 부분을 몰아내서 긍정적인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더 강화해 부정적인 것 마저 극복하는 게 튼튼한 자존감 유지에 효과적인 전략이다. 칭찬, 그리고 소박하지만 이룰 수 있는 삶의 목표가 중요한 이유다.

소우게츠

●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24-15 (봉은사로68길 55)
● 전화 : 02-555-9709 영업시간: 낮12시~오후2시, 오후6시~11시30분(일 휴무)
● 주차 : 협소, 인근 공영주차장
● 메뉴 : 점심은 쇼카도벤토(2만원), 저녁 코스(7~9만원), 단품 모둠요리 핫슨(3만원)
● 드링크 : 일품진로·화요(3만5000원), 황금보리(1만8000원,3만5000원), 사케30종(6만5000~18만원), 와인50종(3만8000~9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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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라이프스타일 의학에 관심이 많다. 맛집 찾기는 음식맛뿐 아니라 공감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됐다고 믿기에 늘 새로운 맛집을 열심히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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