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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를 만나다 34 -예수의 부활은 육신의 부활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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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으로 갔다. 이적의 현장이다. 예수는 이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바위 동굴에 묻혔다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교인에게는 그야말로 ‘성지 중의 성지’다. 중세 때 일어난 십자군 전쟁의 명분도 이 때문이었다. ‘십자가와 부활의 성지(聖地)’를 이교도(이슬람)의 손에 맡겨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골고다는 그리스도교 성지의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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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객들이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었던 길을 걸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다.

예수 당시는 달랐다. ‘골고다’는 히브리어다. 라틴어로는 ‘칼바리(Calvary, 갈보리)’다. ‘해골’이란 뜻이다. 골고다 언덕은 예루살렘에 사는 이들이 가장 기피하는 장소였다. 그곳에 공개 처형장과 공동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죄목으로 사형을 당한 죄수들이 묻히는 곳도 골고다였다. 그런 곳에서 예수는 최후를 맞았다. 처형장이나 화장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꺼리는 공간이었다.

인도도 그랬다. 샤카무니 붓다는 출가 전에 인도 카필라 왕국의 왕자였다. 어릴 적에 그는 서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가 처음으로 사람의 시신을 봤다. 그게 왜 성의 서쪽이었을까. 그곳에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인도의 화장터는 대부분 강가에 있다. 화장한 유골을 강에 뿌리는 힌두교의 풍습 때문이다. 붓다가 마주친 시신도 화장터로 가던 길이었다. 지금도 카필라 왕국의 유적지 서문 밖에는 그 강이 흐른다. 그곳에 화장터가 있다. 망자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을 수습하는 일은 모두 불가촉천민의 몫이다. 그래서 화장터 주변에는 지금도 불가촉천민의 마을이 있다. 죽음의 공간은 동양에서도 꺼리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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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렸던 장소다. 제단 아래 구멍이 있다. 그걸 통해 십자가를 세웠던 땅을 볼 수 있다. 한 여성 순례객이 고개를 숙인 채 구멍 안을 보고 있다.

예수가 묻힌 곳도 그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공간이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지(聖地)’로 탈바꿈했다. 사도 베드로가 묻힌 곳도 그렇다. 그는 로마의 처형장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하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 위에 로마 교황청이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이 세워졌다. 누구나 꺼리는 장소. 부정 타는 공간. 그런 장소가 그리스도교의 성지(聖地)가 됐다. 여기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란 코드가 녹아 있다.

그렇다면 예수 당시에는 어땠을까. 2000년 전에 이스라엘에서 살았던 유대인들,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유대인들은 죽음 후를 어떻게 봤을까. 거기에 부활이 있다고 믿었을까. 육신의 부활. 그걸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여겼을까, 아니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봤을까. 그도 아니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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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곳에 성묘교회가 세워져 있다. 성묘교회 안 벽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7?~100?)는 예수 당대의 인물이다. 그가 저술한 역사서에는 ‘유대인과 부활’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걸 보면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이 ‘육신의 부활’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예수의 부활’이 있기 전에 말이다. 요세푸스가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강연한 ‘음부론(陰府論)’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하느님은 정하신 때가 되면 만인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킬 것이다. 한 영혼을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전생(轉生)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은 그 몸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다.” 그가 남긴 유대 역사서 『유대고대사』와 『유대전쟁사』는 귀중한 사료다. 성경을 제외하면 예수 당대를 기록한 역사서는 거의 없다. 요세푸스는 때가 되면 하느님이 죽은 그 몸을 다시 부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요세푸스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다. 유대 사회에서는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다. 게다가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다. 젊은 날 사두가이파였다가 바리사이파로 돌아섰다. 그런 그가 ‘부활’을 거론하고 있다. 심지어 부활을 믿지 않는 그리스인들을 향해 이렇게까지 말했다. “여러분 헬라인(그리스인)들은 몸이 썩는 것을 보고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지만 부활을 믿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여러분도 플라톤의 사상대로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 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믿지 않는가? 그러니 이제 의심을 버리고 부활을 믿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에게는 죽기 전의 몸과 동일한 원소로 이루어진 몸에 생명을 불어넣어 불멸의 존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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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 바닥에 앉아 있는 이들은 예수와 사두가이파의 논쟁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이 대목은 다시 읽어봐도 놀랍다. 예수 당대에 이미 ‘부활 사상’이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고 사흘 만에 부활하기 전에, 예수의 부활과 상관없이 이미 유대인들에게는 ‘부활 사상’이 있었다. 물론 모든 유대인이 죽은 후 부활을 믿은 건 아니었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다. 사두가이파는 제사장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성직자 계층이었다. 유대 사회의 지배층인 사두가이파는 헤롯 왕가와 함께 로마 제국에 협조하며 눈 앞의 이익을 좇는 기득권층이었다. 그들은 대단히 현세적이었다. 신은 믿었지만 육신의 부활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였다.

바리사이파는 달랐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다. 사두가이파에 비하면 바리사이파는 다수였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땅 속에 묻힌 육신이 일정 기간 썩다가 다시 본래의 몸으로 되살아난다고 믿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그게 ‘상식적인 사후(死後) 세계관’이었다. 그러니 갈릴리 호수에서 예수의 설교를 듣던 바리새인들도 부활을 믿고 있었다. 올리브산에서, 광야에서,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설교를 듣던 숱한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부활’ 이전에 이미 육신의 부활을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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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숨진 예수의 육신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내리고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피가 흐르는 예수의 손을 뺨에 댄 채 슬퍼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음부론’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몸이 썩는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며 땅이 유해를 받아 보존하는 것이다. 몸은 종자(seed)와 같아서 비옥한 땅에 들어가면 잘 자란다. 뿌려진 것은 단지 낟알에 불과하나,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음성에 싹이 터서 몸을 입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일으킴을 받을 것이다.” 부활에 대한 요세푸스의 관점은 바리새인의 관점을 대변한다. 그들은 죽어서 땅에 묻힌 몸이 씨앗처럼 자란다고 믿었다. 육신이 썩는다고 해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골고다 언덕에는 지금도 유해들이 묻혀져 있다. 땅 속에는 2000년 전의 유해들도 있을 터이다. 그중에는 예수를 직접 만나고, 예수의 설교를 직접 듣고,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이들도 있지 않을까. 나는 골고다 언덕에 섰다. 참혹한 처형의 땅, 서글픈 죽음의 땅. 그런 곳이 어떻게 부활의 땅, 생명의 땅이 됐을까. 골고다 언덕의 좁은 길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있었다. 저마다 예수의 부활, 그 수수께끼를 안고 묵상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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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반 오우워터의 1678년 작 ‘나자로의 부활’.

성경에는 죽은 나자로를 예수가 되살리는 대목이 나온다. 위독한 상태의 나자로가 아니다. 이미 죽어서 온몸에 천을 두르고 무덤 속에 누워있던 나자로다. 그런 그가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장면이 성경에 있다. 과학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이 불가사의한 대목에 강한 물음을 제기한다. 그리스도교인들 조차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게 신의 섭리에 맞는가?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더구나 지독한 냄새를 풍길 정도로 주검이 부패한 상태라면 더더욱 믿기지 않는다”고 따진다.

그럼 예수 당대에는 어땠을까. 바리새인도 그렇게 봤을까. 아니다. 그들에게 ‘죽음 후의 부활’은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죽은 이를 되살린 예수의 일화도 그렇고, 죽은 후에 몸소 되살아난 예수의 이적 역시 바리새인의 ‘사후관(死後觀)’과 충돌하지 않았다. ‘죽음 후 부활’은 지금만 뜨거운 감자가 아니다. 예수 당시에도 ‘부활’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성경에는 그 장면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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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1632~33년 작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사두가이파는 부활이란 건 없다고 여겼다. 그들이 예수에게 와서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마가복음 12장18~23절)

풀리지 않는 퍼즐이다. 적어도 사두가이파에게는 그랬다. 만약 부활이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두가이파의 눈에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단순히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물음만은 아니었다. 사두가이파에게는 절박한 문제였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활에 대한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친 물음들, 사두가이파는 그걸 예수에게 내밀었다.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마가복음 12장24~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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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을 그린 카를 하인리히 블로흐 작품.

예수는 사두가이들의 안목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했다. 당시 사두가이들은 성경을 뚫지 못했다. 이 세상을 보는 눈으로 그들은 죽음 후의 세상도 보려고 했다. 예수는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니라고 했다. 부활할 때에는 장가갈 일도 없고, 시집갈 일도 없다고 했다. 왜 그럴까. ‘존재의 방식과 차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걸 예수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표현했다. 누가복음의 예수는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누가복음 20장36절)고 덧붙였다. 그러니 부활한 뒤에 우리는 ‘천사의 속성’과 같아진다.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

‘예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종종 논쟁의 대상이다. 주된 쟁점은 ‘예수의 부활이 육신의 부활인가, 아니면 영혼의 부활인가’이다. 예수의 부활이 육신의 부활이라면 2000년 전 바리새인들의 믿음과 통하는 셈이다. 반면 예수의 부활이 영혼의 부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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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은 육신의 부활일까, 아니면 영혼의 부활일까.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종종 논쟁의 대상이다.

김흥호(1919~2012) 목사는 다석 (多夕) 유영모(1890~1981)의 제자였다. 김 목사는 그리스도교는 물론 유불선(儒佛仙)에도 두루 눈이 밝았다. 그래서 별명이 ‘기독교 도인’이었다. 생전의 김 목사에게 나는 이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예수의 부활은 육신의 부활입니까, 아니면 영혼의 부활입니까?”

김 목사는 오히려 이렇게 되물었다. “2000년 전에 숨을 거둔 예수의 육신이 무덤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하자.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걸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예수의 부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걸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답을 찾아야 한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보다 그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는 ‘과거의 부활’이 아니라 ‘현재의 부활’에 밑줄을 그었다. ‘예수의 부활’이 아니라 ‘나의 부활’에 방점을 찍었다. 이어서 김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나의 십자가가 돼야 한다. 예수의 부활이 아니라 나의 부활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성숙해진다. 성숙해지면 예수와 내가 하나가 되고 만다. 예수 안에 거하라고 하지 않나. 그게 진정으로 거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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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주검을 돌 위에 눕혔다. 골고다 언덕의 성묘교회에는 지금도 그 돌이 놓여져 있다.

어떤 사람에게 예수의 부활은 물리적 부활이다. 그들은 예수의 육신이 죽었다가 되살아났다고 믿는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수의 부활’이라고 여긴다. 골고다 언덕에 서서 나는 눈을 감았다. 왜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을까. 영혼이 아닌 육신이 되살아났다고 믿고 싶을까. 어쩌면 거기에는 ‘나의 욕망’이 숨어있는 건 아닐까. 이 몸뚱이를 가지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은밀한 기대. 예수의 육신이 부활하였으니 예수를 믿는 나의 육신도 부활할 것이라는 은밀한 욕망 말이다. 그게 우리의 믿음, 그 아득한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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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주검을 동굴 무덤으로 옮기고 있다. 예수는 이 무덤에서 사흘만에 부활했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

예수는 달리 말했다. 그는 하늘나라가 욕망의 통로로 오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자기 십자가’를 통해서 온다고 했다. 십자가는 욕망의 소멸을 뜻한다. 그래서 각자의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했다.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무너뜨리라고 했다. 그렇게 영적으로 가난해지라고 했다. 그럴 때 비로소 ‘영원’ 안에 거한다고 했다. 태초부터 우리 안에 깃들어 있던 ‘신의 속성’ 속으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바리새인을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바리새인들은 ‘육신의 부활’을 믿었다. 그들은 땅에 묻힌 육신이 되살아나는 거라 여겼다. 사두가이들은 육신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도 ‘육신의 부활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부활 논쟁을 벌였다. 예수는 그들 모두에게 말했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른다”. 예수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된 생각”(마가복음 12장24절)이라고 꾸짖었다.

왜 그랬을까. 부활은 죽음이 불가피한 ‘육신의 속성’이 아니라 ‘천사의 속성’, 더 나아가 ‘신의 속성’과 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게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백 번, 아니 천 번 죽었던 육신이 다시 살아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육신은 결국 소멸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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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교회 안에는 예수의 주검을 눕혔던 돌판이 남아 있다. 한 순례객이 그 돌판에 뺨을 댄 채 기도하고 있다.

예수는 분명하게 말했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 20장36~38절)

왜 아브라함의 하느님이 이삭의 하느님일까. 또 이삭의 하느님이 야곱의 하느님일까. 또 야곱의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하느님일까. 왜 그들 모두의 하느님이 하나의 하느님일까. 속성이 같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신의 속성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안에 있는 신의 속성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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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토가 1305년경에 그린 ‘그리스도를 애도함’. 예수의 죽음을 천사들이 슬퍼하고 있다.

신의 속성은 생명이다. 그래서 그 자체가 부활이다. 그러니 ‘죽은 이들의 하느님’은 있을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신의 속성 자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 이들의 하느님’이 될 수밖에 없다.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가 ‘육신의 부활’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 예수는 그들을 꾸짖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부활 속에 담긴 ‘신의 속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부활의 속성’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골고다 언덕에 섰다. 멀리 서편으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노을이 졌다. 그 노을 속으로 나는 물음을 던졌다. 예수가 부활하는 곳은 진정 어디일까. 온갖 고고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찾아가는 이 언덕의 땅속 어디쯤일까. 아니면 골고다 언덕의 꼭대기일까. 그런 유적지 속일까. 아니다. 예수가 부활했던 곳, 지금도 부활하는 곳, 앞으로도 부활할 곳은 거기가 아니다. 그건 바로 우리의 내면이다. 나의 고집이 무너진 자리로 신의 속성이 드러나는 곳. ‘나의 십자가’야말로 우리가 찾는 진정한 ‘골고다’가 아닐까.

<35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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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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