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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나라 위한다면 자진해 수사 받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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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고 나면 터지는 ‘최순실 국정 농단’ 시리즈가 ‘청와대 무단출입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최씨가 청와대 행정관이 운전하는 관용차를 타고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는 의혹이다. 사실인지 여부는 좀 더 파악해 봐야겠지만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최씨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시인했고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기밀정보를 수시로 전달받은 정황도 드러나 있다. 그런 만큼 최씨가 청와대를 자유로이 출입했다는 의혹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더욱이 최씨가 청와대 출입 시 이용했다는 정문은 장관도 신분증을 보이고 얼굴 대조를 거쳐야만 통과가 될 만큼 경호가 엄중한 곳이다. 하지만 최씨는 이런 절차는커녕 출입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채 정문을 드나들었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검찰이 정문에 설치된 CCTV 등 모든 관련 자료를 청와대로부터 넘겨받아 수사해야 할 사항이 추가된 것이다.

최순실, 청와대 제집처럼 드나든 의혹
성역없는 수사로 진상 낱낱이 밝혀져야
책임 총리?거국내각도 논의 가능해질 것

 그러나 검찰은 딴청만 피우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조항을 핑계로 “대통령을 직접 수사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기 문란’에 해당하는 국가적 범죄 혐의에 휩싸인 만큼 기소 전 단계에서 이뤄지는 수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헌법학자 출신의 ‘진박’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조차 저서 『헌법학 원론』에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가능하다”고 썼다. 그런 만큼 검찰의 수사 회피는 법리를 따져서가 아니라 대통령 눈치를 본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박 대통령 본인이 “나부터 수사하라”고 검찰, 아니 온 국민 앞에 선언하고 자료제출과 대면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만일 최씨와 몇몇 청와대 참모만을 희생양 삼아 파문을 덮으려 한다면 하야와 탄핵 요구는 급속도로 증폭될 것이다.

 누차 지적했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 대통령의 국기 문란 의혹’이다. 일개 민간인 최씨가 국가기밀 문건을 마음껏 들여다보고 국정을 전방위적으로 주무르게끔 허용한 사람이 바로 박 대통령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해하며 허탈감과 배신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90초 사과’에 이어 진작 경질했어야 할 비서진의 사표를 받은 것 외에는 침묵만 지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렇게 진상규명을 회피하며 시간을 끈다면 10%대까지 추락한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이다. 대통령과 최씨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씨의 국정 농단에 대통령이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를 철저하고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게 급선무인 이유다. 이것이 전제돼야 책임총리와 거국중립내각을 통한 국정 정상화 논의도 가능해진다. 국정 농단의 실체와 책임자가 규명되지 않은 가운데 임명된 총리나 장관들이 국민의 신임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JTBC의 태블릿PC 문건 보도로 ‘박 대통령의 국기 문란 의혹’ 사태가 개시된 지 1주일이 넘었다. 금주 중에 박 대통령이 직접 진상을 밝히고 성역 없는 수사 의지를 천명하지 않는다면 나라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