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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뮤지컬 ‘록키’ 개막 전날 취소…곪은 게 터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40억원 규모의 해외뮤지컬 ‘록키’가 개막 전날 전격 취소됐다. 제작사인 엠뮤지컬아트(대표 김선미)는 28일 “29일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올라갈 예정이던 뮤지컬 ‘록키’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취소됐다”고 발표했다. 대형 뮤지컬이 개막 전날 취소된 건 전례가 없다. 제작사측은 “이미 티켓을 구입한 관객에겐 전액 환불하겠다”고 덧붙였다. 뮤지컬은 1976년 실버스터 스탤론 주연 영화 ‘록키’ 시리즈가 원작이다. 2012년 독일에서 초연됐고 2년뒤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올랐다.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으로 신구·신성우·송창의 등이 캐스팅됐다. 29일 개막해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공연장측 “6억 대관료 안 내 불허”
빚 돌려막기, 주먹구구 제작 못 고쳐
제작사 “김영란법 영향 투자사 없어”

“뮤지컬 ‘록키’가 엎어질지 모른다”는 소리가 외부로 퍼지기 시작한 건 이달 중순께부터였다. 공연장에서 무대 장비의 극장 진입을 가로막았다. 디큐브아트센터 관계자는 “어떻게 대관료 6억원을 한 푼도 안 내고 무작정 들어오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공연 준비를 막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직전 공연인 ‘잭더리퍼’의 대관료 4억5000만원도 아직 안 들어왔다. 누가 신뢰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공연장 불허 소식에 60여 명의 배우·스태프는 술렁거렸다. 이미 2개월 넘게 연습해 온 상태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단역 배우는 공연장 옆에 원룸을 구해 지냈고, 주연인 신성우는 작품을 위해 10㎏ 이상 감량하며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노우성 연출가는 “제작사가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다들 개런티 지급이 안 돼도 우선 공연을 올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텼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엠뮤지컬아트는 2004년 설립된 중견 제작사다. 창작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비롯, ‘햄릿’ ‘삼총사’ 등을 만들었다. 특히 2012년엔 일본 도쿄에서 ‘잭더리퍼’를 공연해 11억원의 수익을 올리며 K-뮤지컬의 선두주자로 알려졌다. 엠뮤지컬아트는 내년 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뮤지컬 ‘신데렐라’도 올릴 예정이었으나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태다. 엠뮤지컬아트 관계자는 “기본적인 재정 상태가 안 좋았고, 이번 공연엔 김영란법의 영향인지 투자사들이 꿈쩍도 안 했다. 티켓 판매도 예상보다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공연계 고질적인 병폐인 ‘돌려막기’가 터졌다는 지적이다. 돌려막기란 A공연이 망해도 다른 B공연을 부랴부랴 올려 우선 빚을 갚는 뮤지컬계의 해묵은 관행이다. 지금껏 국내 뮤지컬계는 수익을 못 내면서도 계속해서 공연을 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원종원 뮤지컬평론가는 “작품 수만 늘어났을 뿐 주먹구구식 제작 환경은 여전하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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