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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걱정해야 하는 국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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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수석
고수석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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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청와대가 어떤 곳인가? 국민 다수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과 참모진이 24시간 국민이 편안하게 살도록 고민해야 하는 곳이다. 국민들이 그렇게 하라고 그들에게 권력을 주었다. 그래서 청와대가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먹고살기 힘든 삶을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 시정잡배 같은 사람들에게 휘둘렸고 국민들보다 그들의 뱃속을 채워주느라 바쁘게 뛰어다녔다. 총수 리스크가 있는 대기업들을 골라 등골을 빼먹는 데도 일조했다. 국민들이 나쁜 놈들을 혼내주라고 준 권력을 나쁜 놈들을 위해 휘둘렀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들은 신성한 청와대에 앉아 국민들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그렇게 만만한가.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줄행랑을 쳤던 임금을 대신해 나라를 지켰고,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로 나라를 구한 국민들이다. 청와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성난 국민은 지난 29일 서울·울산·제주 등지에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서강대·이화여대·성균관대 등에서 시작된 교수와 학생들의 시국선언도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가 국민을 걱정해 주기를 기대하기는 틀렸고, 국민이 청와대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가뜩이나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1533~1603)이 롤모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그 이유로 “관용의 정신을 갖고 합리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파산 직전의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영국 역사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엘리자베스 1세 같은 지도자를 꿈꾼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박 대통령은 2012년 12월 마지막 유세에서 감동적인 말을 던졌다. 그는 “저는 돌봐야 할 가족도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다. 오로지 국민 여러분이 저의 가족이고, 국민의 행복만이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다른 어떤 말보다도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을 것이다. 5년 단임제 이후 역대 5명의 대통령이 정권 말기에 친인척의 구속으로 곤경에 처했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이를 끊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은 공염불이 됐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이번에는 친인척 대신에 저잣거리 아녀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청와대는 흔들림 없이 국정을 수행하겠다고 했지만 14% 지지율에서 보여주듯이 정치적 회복은 어려워 보인다. 취임사에서 밝힌 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 등은 껍데기만 남았다.

박 대통령은 어제 국정 쇄신 차원에서 참모진 인사를 단행했다. 1년 정도 남은 정권에 새로 들어가는 참모진은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이 청와대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북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