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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유니폼에 나이키 로고 새기고 1조2550억원 확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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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25면


영국 런던을 연고로 하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클럽 첼시는 지난 14일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새로운 유니폼 스폰서십 계약을 맺었다. 2017~2018시즌부터 선수단이 입을 유니폼과 용품을 독점 공급 받는 조건으로 오는 2032년까지 매년 6000만 파운드(836억원)를 받기로 했다. 기존 후원사 아디다스와의 결별을 선택한 대가로 첼시가 향후 15년간 확보한 수입의 총액은 9억파운드(1조2550억원)에 이른다.


스폰서십(sponsorship)은 사전적인 의미로 ‘행사 또는 자선 사업에 기부금을 내어 돕는 일’을 뜻한다. 유럽 축구에서는 스폰서십 기업들이 구단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유럽의 명문 축구팀들은 유니폼 제작과 관련한 스폰서십은 물론, 유니폼에 기업명 또는 브랜드를 집어넣는 조건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계약을 맺어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다. ‘움직이는 광고판’으로서 유니폼이 갖는 기능과 가치를 기업과 구단이 함께 인정하기에 가능한 결과다.


유럽 축구판에는 유니폼 스폰서십을 통해 첼시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클럽이 세 팀이나 있다. 스페인 프로축구의 양대 거인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다. 바르셀로나는 나이키로부터 연간 1억2000만파운드(1673억원), 레알 마드리드는 아디다스로부터 1억600만파운드(1477억원)를 받는다.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아디다스와 매년 9800만유로(1224억원)를 받는 계약을 맺었다.


유니폼 상의 가슴 부위에 새기는 메인 스폰서십 금액도 천문학적이다. 맨유는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쉐보레의 로고를 유니폼 상의 한복판에 큼지막하게 새겨주고 매년 7100만유로(887억원)를 벌어들인다. 유럽 구단을 통틀어 전체 1위다. 첼시가 일본의 타이어회사 요코하마 타이어로부터 연간 5500만유로(687억원)를 받아 2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중동 지역 항공사들이 유럽 축구 클럽의 주요 ‘물주’로 나서는 분위기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근거로 하는 에미레이트 항공이 선두주자다. 아스널과 후원 계약을 맺고 매년 4000만유로(499억원)를 지급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3200만유로·399억원),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2800만유로·349억원), 이탈리아의 AC 밀란(1200만유로·150억원), 독일의 함부르크(650만유로·81억원)와도 손을 잡았다. 유럽 지역에 자사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글로벌 허브로서 두바이 국제공항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이에 자극 받은 카타르 국영 카타르항공은 바르셀로나에 매년 3500만유로(437억원)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파트너십을 맺었다.


글로벌 기업의 후원은 대부분 EPL로 향한다.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모이는 무대인 만큼 홍보 효과도 클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의 올 시즌 유니폼 스폰서십 총액은 2억1865만파운드(3043억원)에 이른다. 지난 시즌 대비 14%가 증가해 사상 최초로 2억 파운드를 넘었다.


EPL 구단들은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TV 중계권료 수익 뿐만 아니라 유니폼 스폰서십과 메인 스폰서십으로 벌어들인 돈을 검증된 스타 영입에 재투자한다. 이를 통해 경기력과 인기를 함께 끌어올려 리그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추구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은 근래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간 연평균 175만장씩 팔렸다.


삼성과 첼시는 유럽 축구 유니폼 마케팅의 대표적 윈-윈(win-win) 사례다. 삼성은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첼시를 후원하며 연평균 1800만파운드(250억원)를 투자했다. 계약 당시 EPL 중위권이던 첼시는 삼성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전력 보강에 투자해 2009~2010시즌 EPL 정상에 올랐다. 그 해 시즌 삼성은 영국 안에서만 1억달러(1144억원)에 달하는 브랜드 노출 효과를 얻었다.

첼시의 상승세와 맞물려 삼성에 대한 유럽 내 이미지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삼성 영국 법인의 매출은 지난 2004년 14억8000만달러(1조6942억원)에서 2009년 36억5000만달러(4조1759억원)로 껑충 뛰었다. 브랜드 인지도 역시 같은 기간 19.7%에서 49.6%로 수직 상승했다. 2013년에는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삼성’이 1위에 올랐다. 첼시와의 스폰서십 계약에 참여한 삼성 관계자는 “EPL 중위권 클럽이던 첼시가 차츰 순위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삼성 전자제품의 유럽 내 입지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면서 “푸른색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삼성과 첼시가 동반 성장하며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 이미지를 공유하기까지의 과정은 스포츠 마케팅의 바람직한 예로 업계에 회자된다”고 말했다.축구에서 유니폼을 활용한 스폰서십의 역사는 40여 년에 불과하다. 1973년 독일 클럽 아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가 지역 후원사의 로고를 유니폼에 부착한 게 시초다. 이후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빠르게 전파되며 축구팀의 재정적 젖줄로 자리매김했다.


1899년 창단 이후 100년 넘게 유니폼 스폰서십을 거부하던 바르셀로나도 지난 2006년 결국 가슴팍 한가운데를 활짝 열었다. 구단측은 “기업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는 건 클럽의 영혼을 파는 일”이라는 일부 팬들의 반발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잠재웠다. “유니세프(Unicef·국제연합아동기구)의 로고를 유니폼에 달고 매년 150만달러(17억원)를 유니세프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해 메인 스폰서십에 대한 거부감부터 없앤 뒤 4년 만인 2010년 카타르 재단과 상업적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현재는 유니폼 스폰서십과 메인 스폰서십을 합쳐 한 시즌에 2113억원을 버는 ‘스폰서십 공룡’이 됐다.


최근에는 변형된 형태의 유니폼 관련 스폰서십 계약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인 공격수 손흥민(24)이 활약 중인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는 2014년까지 정규리그와 컵 대회의 유니폼 메인 스폰서십을 별도로 운영했다. 홈 경기와 원정경기의 스폰서십을 달리하거나 경기복과 훈련복의 스폰서십을 차별화하는 구단도 점점 느는 추세다.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은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경우 1억명이 넘는 축구팬들이 지켜본다. 주요 경기 장면들은 셀 수 없이 반복 재생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광고 콘텐트”라고 설명했다. 한 위원은 “유니폼 관련 마케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구단은 천문학적인 투자를 받고 기업은 브랜드 파워를 높이니 누이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앞으로 더욱 규모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지훈·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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