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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함께 만들어 세계로 가져갑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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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6 면

창극이 발벗고 세계로 나간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트로이의 여인들’(11월 11~2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을 통해서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연출가로 꼽히는 옹켕센(王景生·53)이 지휘봉을 잡고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싱가포르예술축제와 공동으로 제작되는 작품이다. 창극이 해외 페스티벌과 공동제작되는 첫 사례다.


내년 열리는 싱가포르예술축제에는 벌써부터 세계 공연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외 유수 극장들이 몰려드는 페스티벌이 제작에 참여한데다 옹켕센이 직접 연출에 나섰기 때문이다. 24일 제작발표회에서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이 작품의 성공여부가 우리 예술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싱가포르 출신의 옹켕센은 경극·가부키의 양식미를 활용한 ‘리어’ ‘리처드 3세’ 등으로 동서양의 고른 주목을 받았다. 세계를 돌며 각국의 다양한 무대예술 전통을 아카이빙해 동시대와 소통 가능한 새로운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이 장기다. 한국에는 1998년 신진 연출가 시절 처음 와서 황병기 가야금과 강권순 정가, 김금화 굿판 등을 접했다. 특히 명창 안숙선이 출연한 국립창극단의 ‘춘향전’에 깊은 인상을 받고 창극 연출의 꿈을 품었는데, 세계적인 연출가로 성장한 2014년 국립창극단에 공동제작을 먼저 제안해 2년 여의 준비 끝에 꿈을 이루게 됐다.


“현대 예술가로서 전통예술의 동시대적 해석에 관심이 많습니다. 몇백, 몇천 년이 지나서도 우리를 매료시키는 작품을 보면서 놀라곤 하죠. ‘트로이의 여인들’을 통해서도 판소리라는 오래된 형식과 동시대 관객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출가로서 ‘극단적인 것의 통합’에 관심이 많다는 그가 ‘트로이의 여인들’을 택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고대 서양에도 서사극 형식이 있었고, 판소리도 그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1만 년쯤 된 역사를 3천 년 전 에우리피데스가 쓴 서사시를 토대로 배삼식 작가가 다시 대본을 써서 안숙선 선생의 작창으로 이어진 결과물을 보게 되는 거죠. 전쟁 중의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제 숙소가 일본대사관 근처라 위안부 소녀상을 목격했어요. 이런 이야기가 한국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껏 창극이 너무 많은 악기 반주와 연출 요소로 인해 본질이 흐려졌다며 판소리와 창극이 가진 본령을 살리기 위한 ‘미니멀리즘’을 컨셉트로 내걸었다. 명창 안숙선에게 작창을, 전방위 뮤지션 정재일에게 작곡을 맡겨 절제된 음향 속 판소리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 것이다.


“이 작품은 음악과 함께 가는 극이 아니라 드라마가 붙은 콘서트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판소리의 깊이에 집중했죠. 특히 고수와 창자가 한 명씩 함께하는 판소리의 형식을 살리기 위해 고민한 결과, 아리아를 부를 때마다 창자와 하나의 악기를 결합하기로 했습니다. 왕비인 헤큐바가 노래할 땐 거문고가, 사제 카산드라가 노래할 땐 대금이 반주하는 식이죠.”


또 다른 관전포인트는 절세 미녀 헬레네를 연기하는 김준수. 최근 창극계 아이돌로 떠오른 그가 여장남자의 파격적인 비주얼로 등장을 예고해 화제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노래할지는 개막 전까지 극비라고 했다. “헬레네는 굉장히 신비로운 수수께끼의 인물인데, 구글에 검색해보면 금발에 푸른 눈이 등장하죠. 아름다움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싶었구요. 또 그녀는 전쟁의 원인이기에 그리스도, 트로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죠. 그래서 제3의 성을 도입하고 싶었는데 창극단에서 좋은 인물을 만나게 됐어요. 그의 창법은 개막 전 공개할 수 없지만 안숙선 선생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애써 여자가 되려 하지 마라, 네가 춘향가를 부를 때처럼 하면 된다고. 오히려 창극에서는 이런 연기가 매우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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