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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잘 생긴 배우 내세운 광고보다, 이젠 스토리 담아야 먹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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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세계 1위 PR회사 ‘에델만’ 이끄는 에델만 회장

“세상이 소통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는데 정부와 기업이 못 따라오고 있습니다. 현명한 정부, 똑똑한 기업이라면 국민과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공개해 그들끼리 서로서로 그 사안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고 보태어 가도록 할 겁니다. 예전처럼 비밀을 지키려고 애쓰고 사람들이 뭔가를 알게 될까 봐 병적으로 두려워하는(paranoid) 대신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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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에델만 회장은 “디지털 시대에는 정보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는 매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8개 매체를 정독하고, 주말에는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등 잡지를 읽는다”고 말했다. [사진 임현동 기자]

세계 1위 홍보(PR) 기업 에델만을 21년째 이끌고 있는 리처드 에델만(62) 회장은 ‘디지털 시대 소통의 원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18일 서울 소공동 에델만코리아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다. “한국 정부가 점점 커지는 ‘최순실 스캔들’에 대해 ‘무대응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전문가로서 어떻게 보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이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전제했지만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하는 톱 다운(top down) 방식의 소통은 이제 끝났다”고 강조했다.

‘1 대 다수’서 ‘다수 대 1’ 소통시대
정부·기업은 비밀 지키려 하지 말고
정보 공개, 국민들 의견 나누게 해야

정부·기업·민간단체 불신 심해
대중들은 정부나 CEO의 말보다
평범한 사람 주장 두 배 더 신뢰

민주사회 전통 미디어 역할 중요
신문·TV 뉴스 보는 학생 거의 없어
미래 독자에게 정보 소중함 알려야

그는 “사람들이 미디어의 뉴스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페이스북 등을 통해 주변으로부터 4~5번 이상씩 같은 얘기를 들어야 비로소 믿으려 하는 ‘불신의 시대’가 왔다”며 “에델만 조사 결과 대중은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의 주장을 정부나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말보다 약 두 배 더 믿는다”고 말했다. 특히 ‘정보를 아는 공중(公衆·informed public)’에 비해 ‘일반 대중(mass population)’이 정부나 기업·민간단체(NGO) 등을 불신하는 정도가 해마다 점점 커져 올해는 국가별로 10~19%포인트까지 두 그룹의 불신도가 격차가 났다고 했다. 에델만은 2001년부터 매년 세계 각국에서 ‘신뢰도 지표(Trust Barometer)’를 조사해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다. 대졸 이상 학력에 미디어 뉴스를 정기적으로 접하는 층과 일반 대중을 구분해 집계하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 조사 대상 28개국 중 한국은 기업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나라였다. 에델만 회장은 “정부와 기업에 대한 불신이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았다”고 말했다.

에델만 회장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언론은 민주주의 시민 사회의 정수”라며 “신문·잡지 같은 전통적인 매체를 통해 정보를 더 많이 제대로 얻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어제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했는데 아침에 신문을 읽거나 TV 뉴스를 보고 온 학생이 거의 없더군요. 다들 페이스북·카카오·네이버 등을 봤다고 했습니다. 그럼 뉴스는 어떻게 보느냐고 했더니 ‘뉴스에 대해선 안다’고들 했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이슈를 물어보니 잘 모르더라고요.”

그는 “정보가 없는 대중은 문제 발생의 근원”이라며 “전통적인 미디어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쇠락하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지만 언론이 포기하지 말고 미래 독자인 대학생들에게 가서 정보를 아는 시민(informed citizen)의 중요성을 계속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도 좋지만 정보 습득은 더 좋습니다(Social is good, informed is better)’ ‘지식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제대로 정보를 아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Having knowledge is good, being informed is excellent)’ ‘앞서가고 싶다면, 성공하고 싶다면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으세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거지요.”

에델만 회장은 “미디어·기업·정부 등이 수많은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일 대 다수(one to many)’ 소통의 시대가 끝나고 쏟아지는 정보들이 한 사람에게 도달하기 위해 경쟁하는 ‘다수 대 일(many to one)’ 소통의 시대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정보의 홍수 속에 대중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쏙쏙 골라 선택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언론이 더 이상 광고에 기대지 말고 콘텐트 판매를 통해 주요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미디어의 특성을 살린 콘텐트를 제공하는 ‘광고 같지 않은 광고’인 ‘네이티브 애드(native ad)’도 대안”이라며 “기업 역시 전통적인 광고나 홍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잘생긴 배우를 내세워 광고하는 건 소비자들이 광고 차단 기능을 쓰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지금 같은 시대엔 효과가 없습니다.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시대엔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직접 그 스토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퍼뜨리도록 해야 합니다. 해당 브랜드를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자발적으로 나서서 브랜드를 홍보하고 브랜드 편을 듭니다. 브랜드에 대한 멋진 스토리로 소비자들을 모으고, 수많은 소비자들이 거기에 자기들의 스토리를 올려 이야기를 더하고 서로 나누게 하는 겁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는 전통적인 미디어 광고 비용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드는 트위터 홍보만으로 미국 대통령선거의 공화당 후보가 됐다”며 “이런 시대 변화에 따라 에델만 역시 2013년부터 PR 회사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회사를 표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00여 개의 브랜드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등을 대신 운영하면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죠. 지난해에만 동영상과 콘텐트를 제작하는 광고 인력 및 디지털 전문가 1000여 명을 충원한 이유입니다.”

캘리포니아 아몬드를 홍보한다면 마치 광고 회사나 언론사처럼 멋진 스토리를 담은 동영상 등을 에델만이 직접 제작해 온라인 페이지에 올리고 ‘여러분의 아몬드 스토리를 함께 공유해요’하는 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에델만은 이런 소셜 미디어 마케팅과 PR 분야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다. PR 시장이 주춤한 가운데에도 2013년 4500명이던 직원이 올해 6500명으로 크게 는 것은 에델만 회장부터 디지털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결과다. 그는 블로그 초창기인 2004년부터 개인 블로그인 ‘6 A.M’을 운영해 화제를 모았다.

에델만은 최근 여성 간부 비중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체 여성 인력 비중은 65%인데 2011년 당시 중간 간부 이상 급에서 여성 비중은 15%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현재는 중간 간부급 이상 800명 가운데 여성 비중이 40%를 넘었습니다. 뉴욕 본사 책임자를 비롯해 주요 보직에도 여성이 포진했습니다. 2018년까지 절반을 넘기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성 간부를 전략적으로 늘린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에델만 회장은 “여성에게도 성공과 실패의 기회를 남성과 똑같이 준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근무지를 쉽게 바꿀 수 있게 하고 ▶아이를 돌볼 시간을 확보해주고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하는 등 여성이 가정과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했더니 5년 만에 여성 간부 비중이 약 3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광고 회사와 언론이 하던 일에 뛰어들고 PR 비전문가 비중을 30%까지 높이려고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에델만 회장은 “새롭게 도전하고, 최선을 다해 장애물을 정면 돌파하는 것이 에델만의 65년 생존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S BOX] “담배·석탄·총기회사와 독재정권 홍보 꺼려 상장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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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에델만 회장은 “아버지(창업주 대니얼 에델만 회장)가 늘 내 어깨 위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지켜봐 주시는 것 같다”면서 선친의 사진을 들어 보였다.

에델만은 미국의 대형 PR 회사 중 유일한 비상장사다. 2013년 93세로 별세한 창업주 대니얼 에델만이 리처드 에델만 현 회장의 선친이다. ‘KFC 할아버지’ 마케팅, 여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피임약 모델로 내세우는 등 화제를 모으는 마케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리처드 에델만 회장은 지난 18일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상장할 계획은 전혀 없다”며 “나 다음은 세 딸이 물려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적과 매출을 중시하는 주주들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는 비상장 가족기업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델만 회장은 “담배회사, 석탄회사, 총기회사나 독재정권의 홍보 등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비상장회사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CEO가 된 지 2년 후인 1998년 담배회사 홍보사업을 중단했고, 2014년 미국 최대의 편의점 기업인 CVS가 담배 판매를 중단하도록 컨설팅했다. 그는 “무조건 기업을 홍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조언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역할”이라며 “CVS가 연간 20억 달러(약 2조원)의 매출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익을 중시하는 기업으로 인정받아 주가도 오르고 건강 사업 부문이 크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에델만 회장은 “돈이 목적이었으면 상장했을 것”이라며 “나는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우리 딸들도 아무도 차가 없다. 오냐오냐하지 않고 키운 것이 자랑이다. 회장실도 따로 없고 직원들과 똑같이 칸막이 쳐진 작은 책상에서 일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1위 홍보회사 에델만은

●설립: 1952년
●본사: 미국 뉴욕, 시카고
●사무소: 67개국
●임직원: 6500여 명
●주요 고객: 마이크로소프트·스타벅스·유니레버·삼성전자·현대차그룹 등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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