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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한바퀴 돈 태양광 비행기, 배터리는 우리 제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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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 7월26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의 공항에 ‘솔라임펄스2’라는 이름의 비행기가 착륙했다.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오로지 태양 에너지로만 나는 비행기였다. 아부다비를 떠난 지 1년4개월 만에 돌아온 총 비행거리 3만8000㎞의 여정이었다. 17개 구간으로 나눠 한번에 짧게는 하루, 길게는 3~4일을 날았다. 세계 최초로 태양 에너지에만 의지해 지구 한 바퀴를 돈 것이다.

배터리 세계 강자 홍지준 코캄 회장
18년 전 리튬폴리머 전지 자체개발
미·영 해군 제품 알아보고 찾아와
“중소기업이 믿을 건 기술력 뿐이죠”

이 때 한국 땅에서 감격과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가 있었다. 중소기업 코캄의 홍지준(60) 회장이었다. 솔라임펄스2에 탑재된 배터리가 바로 코캄의 리튬폴리머 배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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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준 코캄 회장이 경기도 수원 본사에서 군수용으로 공급되는 자사 대용량배터리(ESS) 제품과 함께 했다. 회사명 코캄은 한국(Korea)과 전투(Kampf)를 뜻하는 독일어를 합성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한국 중소기업이 만든 배터리가 어떻게 세계 최초로 지구 한 바퀴를 돈 태양광 비행기에 장착됐을까. 시장조사업체 내비건트리서치가 지난해 6월 내놓은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 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힌트가 보인다. 1위 LG화학에 이어 삼성SDI-비야디(중국) 다음으로 ‘코캄’이 4위다. 시장진출 전략과 생산전략·기술력·판매력·마케팅·유통·품질·신뢰도·가격 등 12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다.

홍 회장은 “마케팅·판매력 등이 뒤지는 중기가 4위를 한 건 오로지 기술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코캄은 리튬폴리머 전지의 원조 격이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대부분이던 1998년, 차세대 2차 전지인 리튬폴리머 전지를 독자 기술로 개발하고 특허도 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액체 상태의 전해액을 단단한 금속 재질로 감싼 형태다. 전해액이 흐르거나 폭발할 위험이 있다.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전해질을 젤 형태의 고분자로 바꾸고, 단단한 금속 대신 과자봉지 같은 파우치를 쓴다. 홍 회장은 “덕분에 리튬이온보다 안전하고, 에너지 효율도 더 높다.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제조가 가능하고 무게도 더 가볍다”고 설명했다.

코캄의 리튬폴리머는 외국, 그것도 군에서 먼저 찾아 썼다. 2008년 이미 미·영·독 등의 해군이 잠수함용 등으로 쓰기 시작했다. 한국군도 이내 따라왔다. 2008년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장거리 대잠어뢰 ‘홍상어’에 코캄 배터리가 들어갔다. 홍 회장은 “2012년에는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잠수정 코캄 배터리가 탑재된 ‘딥시 챌린저’로 깊이 1만863m의 해구 바닥까지 내려갔다”고 소개했다. 그는 1979년 서울대 화학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전자 등을 거쳐 89년 산업용 기계를 수출·입하는 무역회사 코캄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98년 다들 외환위기로 정신이 없을 때, 시장 전망을 읽고 리튬폴리머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시작은 리모트 콘트롤(RC) 비행기용 배터리였다. 마니아들 사이에 코캄 배터리 소문이 쫙 퍼졌다. 3년 만에 RC비행기 시장에서 기존 엔진이 사라지고 코캄 배터리가 그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홍 회장은 “외국 RC비행기 매니어 중에는 전문 엔지니어들이 많았다”며“이들이 소문을 내니 세계 곳곳에서 대리점을 내겠다는 이들이 코캄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코캄은 현재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지난해엔 800억원 매출에 38억원의 당기순익을 올렸다. 홍 회장은 “ 고효율의 안전한 대용량 배터리 개발에 계속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글=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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