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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의혹, 개헌의 동력이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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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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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경제부 부데스크

박근혜 대통령이 들고 나온 개헌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인 줄 알았는데 위력이 확 줄었다. 진짜 초대형 태풍은 최순실 의혹이다. 한국 경제는 살얼음판을 걷는데 현 정권은 대부분의 동력을 상실한 것 같다.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은 심해질 것이다.

요즘 나오는 의혹을 보자니 2000년대 초 법조 기자(법원·검찰) 시절이 기억났다. DJ 정부 말기에 일어난 다양한 게이트엔 등장 인물이 너무 많아 어디에 걸리는 사람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친·인척과 측근 비리 문제는 반복됐다.

이쯤 되면 임기 말 비리는 권력 집단의 탐욕과 일탈 행위만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결론을 내야 한다. 국정 농단과 비리 조짐이 있을 때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개헌은 필요하다.

한국 경제는 몇 년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5년 단임의 정치 체제는 정부 정책의 수명을 3~4년으로 제한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창조경제’는 이제 곧 MB 정부가 내세웠던 ‘녹색성장’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만든 것이라도 잘 골라서 이어갈 정책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정권을 상징하는 대표 정책을 없애려고 한다. 대개 이런 정책은 대통령의 관심사라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 분야에 따라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때를 잘못 만나면 폐기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낙하산 논란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권력을 잡는 방식은 벤처와 비슷하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선 사람을 규합해야 한다. 투자자를 모으는 것과 똑같다. 선거에 이겨 정권을 잡으면 대박이 난다. 정권 획득 뒤엔 수익금 분배와 같은 ‘논공행상’이 이뤄진다. 이런 것이 과도하면 부적합한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가고 해당 기관을 망친다. 권력과 자리가 분배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최순실 의혹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정치권에서도 개헌 목소리가 솔솔 나온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고문은 27일 “이런(최순실 의혹) 사태가 6공화국에 종언을 고하고 7공화국을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얼마나 가능성이 있을까. 대학교수인 한 선배에게 물었더니 재미있는 답이 돌아왔다. “누가 알아? 세월호 참사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잖아. 최순실 의혹도 개헌을 성사시키는 동력이 될지 몰라.”

비리는 철저하게 규명하되 개헌의 불씨는 살리길 바란다. 물론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이다. 하지만 개헌은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구조개혁의 시발점도 돼야 한다. 개헌을 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이를 기반으로 사회 각 분야에 필요한 개혁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 경제가 산다.

김원배 경제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