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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도와준 인연” “최순실, 대통령을 언니라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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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순실 총체적 국정개입 의혹 42년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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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979년에 새마음봉사단 총재 자격으로 축사를 했던 ‘제1회 새마음제전’. 이날 행사 개회 선언을 한 최순실 당시 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단국대 대학원 1년)이 한양대 운동장에서 박 대통령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27세, 최순실은 23세였다. [사진 JTBC 화면 캡처]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대국민사과에서 최순실(60)씨와의 관계를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언급했다. 무슨 뜻일까.

박 대통령과 최순실 어떤 관계
최태민, 육 여사 서거 뒤 위로편지
5녀 최순실 말벗 해주며 가까워져
1979년엔 새마음제전 밀착수행도

10·26 이후 18년 은둔시절 동안
아버지 측근, 만나도 모른 척할 때
곁에 남아준 최씨와 긴밀 관계 유지

1997년 국회의원 당선 정계 입문 때
최씨 남편 정윤회 ‘비서실장’ 역할

1979년 10·26 사태 이후 박 대통령은 97년 말 정계에 나오기 전까지 18년간 긴 은둔 생활을 했다. 박 대통령은 이 시기에 쓴 일기에서 “지금 상냥하고 친절했던 사람이 나중에 이(利)에 기가 막히게 밝은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덧없는 인간 사이다”고 적었다. 서울의 한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장관을 지낸 한 인사가 박 대통령과 마주치고도 모른 척 한 날 쓴 것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의 언급은 18년간의 은둔기에 최씨와 특별하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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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많은 대학 시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그분을 처음 만났다.”(87년 잡지에 실린 최씨의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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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어느날 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대한구국선교단의 야간진료센터를 찾아가 최태민 선교단 총재(오른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당시 선교단 명예총재인 박근혜 대통령. [중앙포토]

박 대통령과 최씨의 인연은 육영수 여사가 서거(74년)한 이후 2~3년 새 맺어진 것으로 보인다. 40년 가까이 됐다는 것이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최씨보다 최씨의 아버지 최태민씨 를 먼저 알았다. 『김형욱 회고록』에는 육 여사가 피살된 뒤 최태민씨가 영애인 박 대통령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나온다. 편지를 계기로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최태민씨는 꿈에 나타난 육 여사의 메시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 주기 위해 길을 비켜 주었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1912년 황해도 출신으로 일제시대 경찰 업무를 했다는 최태민씨는 해방 이후 승려가 됐다고 한다. 70년대 초 불교·기독교·천도교를 종합했다며 ‘영생교’를 세우고 교주가 됐다. 영생교 간판을 내린 뒤인 75년 4월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해 다음달 개최한 ‘구국기도회’, 6월 ‘대한구국십자군’ 창군식 등에 박 대통령이 참석한다. 76년 박 대통령은 최태민씨가 여러 단체를 통합해 만든 ‘새마음봉사단’의 총재가 됐다. 그러나 최태민씨는 77년 9월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보고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에게 비위 혐의 등으로 직접 신문을 당했으나 사법 처리는 면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0·26 사태 뒤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보충서에 포함된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영애의 문제’라는 문서에서 “이 문제가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지만 중요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태민씨의 5녀인 최순실씨는 새마음봉사단 대학생 회장으로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최근 한 인터넷 매체는 새마음봉사단이 주최한 79년 ‘제1회 새마음제전’ 행사에서 최씨가 박 대통령을 밀착 수행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79년 독일 유학을 떠났다가 85년 귀국해 교육 사업을 하면서 육영재단 이사장이던 박 대통령과 재회했다. 당시 최씨는 네 살 위인 박 대통령의 말벗을 해주며 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9월 카니발 차량 안에서 최씨가 박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스스럼없이 ‘언니’라 불렀다”고 주장했다.

최태민씨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전두환 정권 때인 86년 이후 육영재단 운영을 둘러싸고 박 대통령과 동생 박근령씨가 마찰을 빚으면서다. 근령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최태민·최순실씨의 전횡을 문제 삼았고 근령씨는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태민에게 포위당한 언니 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 보호 차원에서 구출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최태민씨는 94년 만성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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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씨. [중앙포토]

박 대통령은 97년 말 정계에 입문했고 이듬해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당선했다. 이때 최순실씨의 남편 정윤회씨가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비서실장’으로까지 불리던 정씨는 2004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당 대표가 된 지 2년 만에 뒷선으로 물러났다. 이후 2006년 박 대통령이 유세 도중 커터칼 테러를 당했을 때엔 최씨의 언니가 병간호를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최씨 모친의 팔순 잔치에 참석해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가족여행도 같이 간 것으로 알려진다. 또 박 대통령 당선 후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보좌관도 최씨 부부가 추천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엔 청와대를 자주 드나들며 박 대통령을 만났으며 박 대통령의 옷과 액세서리, 순방 일정 등을 챙기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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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측근인 여권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여성인 만큼 남에게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 의상·건강·미용 등의 상담과 부탁을 하는 과정에서 최씨에게 점점 더 밀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태민씨는 목사 안수를 정식으로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목사라는 호칭은 쓰지 않고 씨로 표기합니다.

특별취재팀 임장혁·문희철·채윤경·정아람·정진우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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