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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아버지, 지지자, 국가에 상처를 준 박근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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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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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로 돌진하고 있다. 아버지 박정희, 보수 지지세력, 그리고 국가가 동반 추락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박근혜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다. 대통령이 된 것도 결정적으론 아버지 덕분이다. 박정희 딸이 아니라면 국회의원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보답해야 했다. 적어도 누를 끼치진 말았어야 했다. 평생 그는 아버지에게 빚만 졌다.

1974년 아내를 잃은 후 박정희는 중요한 시험에 들었다. 고독이었다. 적잖은 이가 재혼을 권했다. 안병훈이 쓴 대화록에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이런 증언을 남겼다. “일본 실력자 세지마 류조가 ‘꼭 재혼하시라’는 간곡한 당부를 전해 달라 했습니다. 전했더니 박 대통령은 잠시 말을 안 해요. 그러고는 ‘근혜 때문에···’라고 말끝을 흐리더군요.”

당시 근혜는 퍼스트레이디를 즐기고 있었다. 새마음봉사단에 얹혀 최태민과 함께 전국을 돌았다. 가는 곳마다 권력자 대접을 받았다. 구름 위 20대 딸은 60대 아버지의 홀아비 사정에 무심했다. 만약 그가 새엄마에게 퍼스트레이디를 양보하려 했다면 아버지는 재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많은 게 달랐을 것이다. 대통령의 허전한 구석을 강경파 경호실장이 차지하지도, 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에서 여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보수세력은 박근혜를 헌신적으로 지원했다. 박정희 딸이어서, 진보·좌파 집권을 막아야 하기에, 김문수·정몽준·이재오보다 훨씬 나아 보여 박근혜를 열정적으로 밀었다. 물론 박근혜의 실적도 컸다. 노무현 정권에서 그는 국가 정체성 투쟁을 이끌었다. 한나라당을 사지(死地)에서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의 지지가 없었다면 그는 등극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근혜는 결국 에베레스트가 됐다.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인 것은 히말라야라는 산맥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후 박근혜는 히말라야를 잊었다. 보수의 원로·지도자·언론인·학자·운동가에게 무심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려 애쓴 이 중에서 “나라 걱정 같이 해보자”는 진득한 전화 한 통 받은 이가 거의 없다.

보수세력은 끊임없이 충고했다. 아버지처럼 부하를 잘 쓰고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듣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상한 사람들을 열심히 챙겼다. 살랑살랑 아부 잘하는 정치인, 전문가도 잘 모르는 무자격자, 연줄로만 연결된 무(無)검증 교수, 대선 캠프에 있었다는 노쇠한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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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에게는 고언(苦言)하는 부하가 거의 없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최순실과 대통령이 절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했다. 이런 허수아비 실장이 정권을 어떻게 지키나. 대통령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충직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원래 미르·K스포츠·최순실 같은 사안은 민정수석이 감시하는 것이다. 무엇이 충직인지 대통령은 모른다.

국가의 상처는 훨씬 심각하다. 지도자에겐 정확한 현실 인식이 생명이다. 박 대통령은 정치인 시절 세상물정을 잘 몰라 이미 국가에 커다란 피해를 입혔다. 다름 아닌 세종시다. 선진국은 통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는 행정부를 멀리 쪼개 놓았다. 국가 행정 기능은 지금 재앙 같은 낭비에 신음하고 있다. 박근혜는 이명박의 세종시 수정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런데 버텼다. “화상 회의를 하면 된다”고 했다.

잘못된 고집불통은 집권 후 더욱 심해졌다. 국민은 활발한 소통을 주문했다. 구중궁궐 본관에서 뛰쳐나오라고, 백악관처럼 대통령·참모가 옹기종기 모이라고, 그래서 국정을 소통하라고, 인사(人事)에도 평판을 챙기라고···모든 이가 요청했다.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실패는 많이 줄었을 것이다. 세월호 7시간, 메르스 혼란, 그리고 최순실 파동 같은 건 걸러졌을지 모른다. 박근혜는 지독히도 거부했다. 혼자 칩거했다. 기자회견도 1년에 한 번이다.

대통령의 실패를 단정하기는 아직 이를지 모른다. 공적도 적지 않다. 원칙적인 대북정책, 한·미 동맹 강화, 기초노인연금과 공무원연금 개혁, 불법파업 해체···. 그리고 그가 이루지 못한 건 상당 부분 반대세력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공적은 특별한 게 아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면 실패는 특이한 것이다. 많은 국민이 목이 쉬어라 “소통”을 외쳤다. 그런데 박근혜는 듣지 않았다. 오만인지 무지인지 꿈쩍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대통령은 이곳저곳에 부딪쳤다. 급기야 최순실 문턱에서 넘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주요 10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위대한 기록이다. 박정희가, 지지자가, 국가가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는 대신 상처를 주고 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청와대 단풍보다 붉다.

김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