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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만대마을, 기름 유출 딛고 강강술래 공연 명소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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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호 20면

1 경남 합천군 양떡메 마을을 찾은 학생들이 떡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가늘고 길게 바다를 따라 뻗어있는 충남 태안군 이원면 만대마을. 밀물과 썰물 차이가 큰 바다에서 나는 ‘깜장굴’이 특산물이다. 이영희 전 만대마을 이장은 2007년 12월 7일을 잊지 못한다.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이 난 날이다. “바다며 바위며 할 것 없이 까만 기름으로 뒤덮였다. 딸과 함께 매일 바다로 나가서 구역질을 참아가며 바위를 닦고 기름을 퍼내도 끝이 없었다. 굴에선 기름 냄새가 나고 먹을 수가 없었다. 마을은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었다.”


사고 전까지 만대마을 주민의 일상은 단순했다. 바다로 아침 일찍 나가서 굴을 캐거나 다듬고 밤늦게 집으로 오고. 마을 축제나 가꾸기 행사를 열어도 생업을 이유로 참여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이 전 이장은 “사고 후 주민들이 바뀌었다”며 “마을이 단순히 먹고 사는 곳이 아니라 평생 아끼고 가꾸고 누려야 할 곳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태안사고 이후 마을 주민들이 문화활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마을 출신 도예가 양승호씨가 시작해 태안의 대표 축제 중 하나로 성장한 ‘나오리 생태문화 예술제’, 주민 24명이 스스로 나서 창작한 ‘만대 강강술래 공연’이 그 결실이다. 마을 주민의 손으로 직접 가꾼 ‘솔향기길’은 이제 한 해 7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주민과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청정 바다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문화 명소로 마을 이름을 새로 알리게 됐다.

2 지난달 31일 대전시 KT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행복마을 콘테스트에서 충남 태안군 만대마을 주민들이 강강술래 공연을 하는 모습.

만대마을이 지난달 31일 대전시 KT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제3회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문화 복지 분야 1위인 금상을 수상했다. 중앙일보와 농림축산식품부가 공동 주최하는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는 ‘함께 만들어요. 행복한 우리 마을’을 슬로건으로 2014년 출발했다. 한국농어촌공사,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도 함께 주관한다. 1회 때 1891개였던 콘테스트 신청 마을은 2회째인 지난해 2017개로 2000개를 넘어섰다. 올해 참여 마을은 2664개로 1년 만에 32.1% 급증하며 해마다 열기를 더하고 있다. 예선 경쟁을 뚫고 본선에 오른 30개팀 1700여 명 마을 주민, 공무원이 이날 콘테스트에서 경연을 벌였다. 금상은 2600여 개 신청팀 가운데 4개 마을, 1개 읍면, 1개 시군에만 돌아갔다.


마을 소득 체험 분야 금상은 경남 합천군 초계면 양떡메마을이 받았다. 이 마을 역시 고난을 성공으로 바꾼 사례다. 2004년 양파 대란이 일었다. 양파 도매 가격이 4㎏당 1000원 안팎으로 내려앉았다. 밀려드는 수입 양파, 늘어난 생산량에 보통 2000~3000원 하던 양파 시세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양파 농사로 한해 벌이를 하던 하남마을(현 양떡메 마을)은 위기에 빠졌다. 주민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마을 특산물인 양파·쌀·콩을 직접 가공해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양파즙과 메주, 떡 등을 만드는 가공 공장을 마을 안에 하나 둘 세워나갔다. 바로 다음해인 2005년 양파의 ‘양’, 쌀로 만드는 ‘떡’, 콩으로 만든 메주의 ‘메’ 한 글자씩 따서 마을 이름도 양떡메 마을로 바꿨다. 특산품을 마을 이름을 통해 좀더 알리고 싶다는 주민들의 바람이 담겼다. 양떡메 마을 성영수 운영위원장은 “마을에서 난 작물을 마을 안 가공 공장에서 농협보다 훨씬 좋은 가격으로 사주고 있고, 공장에서 나가는 인건비도 마을 주민의 소득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은 이 마을 농산물 가공품을 직거래로 사들이는 도시 고객이 1만 명에 달한다. 성 위원장은 “2004년 양파 파동 이전과 비교해 소득은 물론 마을의 문화·복지도 비교할 수 없게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이익을 마을로 환원하자는 주민 간의 합의가 있어 가능했다. 주민 누구나 와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 무료 공동 급식소, 마을이 주최하는 노인의 날 행사, 댄스·풍물 동아리 활동. 모두 마을 가공사업에서 올린 수익으로 운영하고 있다.

자료: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어촌공사

올해 마을 경관 환경 분야 금상은 경남 하동군 매계마을이 수상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매화 산책로, 주민이 직접 목수 교육을 받아가며 만든 ‘맷골 민박’,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로 차린 ‘잭살할매밥상’이 이 마을 자랑이다.

3 제주 서귀포시 신도2리 주민들이 꽃길을 가꾸고 있다. [사진 한국농어촌공사]

제주 서귀포시 신도2리 마을은 마을 농촌 운동 분야 금상을 차지했다. 제주 특유의 품앗이 ‘수눌음’으로 마을 복사꽃길을 가꿨고 ‘모드락 축제’도 만들어냈다. 해안 쓰레기와 가로수 주변 잡초도 마을 주민이 직접 나서 없애고 있다.


시군 분야 마을 만들기 금상은 경남 거창군, 읍면 분야 농촌 운동 금상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 돌아갔다. 본선에 오른 나머지 16개 마을, 4개 시군, 4개 읍면도 은상과 동상, 입선을 각각 나눠가졌다.


콘테스트 심사위원장을 맡은 최수명 전남대 교수는 “수상 마을의 형태는 농촌 환경을 함께 가꾸거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운영으로 소득을 증대시키는 등 다양하지만 모든 마을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것은 주민의 참여와 열정”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그동안 콘테스트로 발굴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마을 만들기 활동 사례를 더 적극적으로 전파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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