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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환자의 심리적 신뢰, 치료 결과에도 영향 미친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진료를 보러 73세 된 환자분이 오셨다. 위내시경 검사 등 제반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소화도 안 되며 입맛도 없고 의욕이 없다는 분이셨다.

"몹시 예민해져 있고, 우울해 보이시는데 뭐 크게 신경을 쓰시는 일이 있으세요?" 하고 물었다.

"아, 마누라쟁이가 종알종알하고 잔소리를 퍼부어요.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아무 일도 없는데 마누라는 건강에 나쁜 것만 먹고 다닌다고 야단이에요. 아, 선생님 앞이니까 말이지 이런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하겠어요. 이제 좀 속이 시원하네요"라며 한참 하소연을 하였다.

이처럼 환자분들이 속마음을 의사에게 털어놓는 분들은 의사와 라포가 잘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라포(RAPPORT)는 의사-환자의 심리적 신뢰를 말한다.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는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실제로 환자들은 소위 의사들의 ‘스펙’보다, ‘라포’를 ‘명의’의 판단 기준으로 꼽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의료가 상업화되면서 진료시간이 줄고 있어 문제다. 또한 많은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이 환자의 얼굴보다 컴퓨터 화면을 더 많이 보기도 하고, 환자와의 대화시간을 줄이고 우선 검사를 받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CTㆍMRI 등 고가의 의료검사장비는 환자의 몸에 나타난 현상을 읽는 것이지 증상을 보는 것은 아니며, 환자의 증상을 알기 위해선 자세히 묻고(문진) 만지는(촉진) 일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문진과 촉진을 통해 병의 80% 정도는 짐작이 가능하다. 최대한 환자의 증상을 최대한 세밀하게 알아내 의심질환을 선별한 후 최소한의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위 ‘3분진료’는 지양해야 하며, 진료를 받으러 온 분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환자와의 스킨십이 부족하면 치료 효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플라시보 효과도 떨어진다.

플라시보 효과란 가짜를 진짜 약처럼 속여서 투여하면 환자의 병세가 회복되는 치료 효과를 말한다. 원래 '플라시보'란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만족시킬 것이다'라는 뜻이다. 1785년 발간된 <신의학사전>에 기타 의료행위 항목에 수록되었고, 의학문헌에 처음 플라시보 효과란 말이 실린 것은 1794년이었다.

게르비라는 이탈리안 의사가 치통 환자의 아픈 치아에 어떤 벌레의 분비물을 발랐더니 1년간 치통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현대 의학으로는 벌레 분비물과 치통 치료는 별 관계가 없다. 그러나 환자의 대부분이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에 실제로 치통이 가라앉았다. 이런 현상이 바로 플라시보다.

환자와 의사의 라포가 이렇게 큰 역할을 하는 만큼 환자는 의사에게 마음을 열고, 의사도 의사가 되려면 가장 먼저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와 인간 대 인간으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인성을 키워야 한다.

☞ 민영일 원장은...

우리나라 내시경 역사의 산 증인이다. 전 아산병원 소화기센터장으로 정년 퇴임한 후 현재 비에비스 나무병원 대표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자 내시경 시술을 처음 시행하고 전파한 의사이자 내시경 관련 다섯개 학회 모두 학회장을 역임한 유일한 의사이다. 서울대 의대 내과 졸업 후 아산병원에서 오랜 교수 생활을 하며 의사들이 뽑은 '위장 질환 관련 베스트 닥터'로도 선정된 바 있다. 특히 환자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 친절한 설명을 해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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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일 기자 webmaster@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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