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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소떼의 귀환, 낭만 넘치는 알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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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작은 도시의 매력

누구나 한번쯤 스위스를 가슴에 품는다. 버킷리스트의 한 항목이자, 오랜 세월 삭힌 꿈의 여행지다. 체르마트(Zermatt)에서 해발 4478m의 마터호른(Marterhorn)을 감상하는 일, 23㎞ 길이의 알레치(Aletsch) 빙하를 걷는 일,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되어 마이엔펠트(Maienfeld) 대초원을 누비는 일, 드넓은 레만(Leman) 호숫가에 앉아 ‘인생사진’을 건지는 일. 여행자가 꿈꾸는 낭만의 순간과 욕망이 스위스라는 이상 세계에 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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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엔 꽃을, 목엔 쇠방울을 단 소떼의 행진. 여름 내내 알프스 목초지를 누빈 목동과 소떼가 마을로 내려오는 소몰이 축제 모습이다. 스위스 서부의 작은 산촌 샤르메에서 만난 스위스의 전통 문화다.

몇 년 사이 스위스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에서 꽤 친숙한 여행지로 변모했다. 한국인 여행자의 스위스 숙박 일수는 5년 전 16만7860일에서 지난해 31만7022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스위스는 숙박일을 기준으로 외국인 관광객 통계를 낸다).

이제 스위스에서 한국인을 마주치는 건 예삿일이 됐다. 다만 여행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융프라우(Jungfrau)·취리히(Zurich)·체르마트 등 대표 관광 도시가 필수 코스다. 비슷한 거리를 걷고 비슷한 자리에서 어디서 본 듯한 인증 사진을 남기고 돌아온다.

스위스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이 많이 찾은 지역은 융프라우가 있는 베르너 오버란트(Berner Oberland) 지역과 루체른·취리히 지역이었다. 성격으로 보면 융프라우·마터호른 같은 고봉을 거느린 산악지역이 대부분이었다. 체류기간에도 차이가 있었다. 한국인은 산악지역에서 18만9831일을 머문 반면, 소도시에서는 5만834일을 보냈다.

궁금했다. 스위스의 소도시는 정령 매력이 떨어지는 여행지일까. 이번 주 week&은 지난달 스위스 서부의 소도시에서 보냈던 며칠간의 이야기다. 익숙한 관광 도시는 일부러 피하고 한적한 소도시를 찾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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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서부의 작은 도시 그뤼에르 마을.

운이 좋았다. 서쪽의 작은 마을 샤르메(Charmey)에서는 1년에 단 한 번 열리는 소몰이 축제를 볼 수 있었다. 알프스 낙농가의 대표적인 전통 축제다. 여름 내내 알프스 고산지대에서 생활한 목동들이 방목한 소떼를 이끌고 귀환하자 마을 사람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져 잔치를 벌였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한 장면이었다. 스위스의 옛 모습을 간직한 소도시에도 들렀다. 주민 110명이 전부인 그뤼에르(Gruyeres) 마을은 웅장한 고성과 소박한 돌집이 어우러진 동화 속 마을이었다. 강줄기에 둘러싸인 프리부르(Fribourg)의 구시가지에는 수백 년을 보낸 건축물이 수두룩했다.

마티니(Martigny) 지역에서는 신기한 철도 구간을 경험했다. 해발 1960m의 에모송(Emosson) 댐을 오르기 위해 놀이기구를 타듯이 열차를 세 번 갈아탔다. 케이블카를 타고 87도 경사의 산중턱에 올랐고, 꼬마열차를 타고 절벽 길을 지났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 댐에 다다랐다. 천천히 산을 오르며 알프스의 장관을 꼬박꼬박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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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전통 의상을 입고 소몰이 축제에 참가한 알프스 소녀들.

스위스는 세계가 인정하는 철도의 나라다. 총연장 5100㎞ 길이의 철도(SBB)가 스위스 구석구석을 잇는다. 국토 면적은 한국의 40%에 불과하지만, 철도 길이는 한국(3900㎞)보다 훨씬 길다. 그만큼 스위스의 철도는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뻗어 있다. 철도에 도로와 뱃길까지 더하면 스위스의 교통망은 2만8382㎞에 이른단다. 이 모든 교통망을 티켓 한 장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정기권 개념의 ‘스위스 트래블 패스(Swiss Travel Pass)’ 한 장이면 열차는 물론이고 버스·유람선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스위스 서부의 소도시가 융프라우나 체르마트처럼 장대한 풍경을 지녔다고 말하진 않겠다. 하나 스위스의 전통 문화, 소도시만의 평화로운 매력은 유명 관광지 못지 않았다. 새로운 스위스를 찾는다면, 당장 기차를 타고 서부 소도시로 떠나시라 권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스위스의 매력이 눈앞에서 열린다.

글·사진=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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