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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최순실 수사, 성역도 가이드라인도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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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저의 퇴임 후를 대비해 만들어졌다는데 그럴 이유도 없고 사실도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어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며 “더 이상의 의혹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감독 기관이 감사를 철저히 하고 모든 것이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지도·감독해 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인 데다 국민정서와는 여전히 거리가 먼 안이한 언급이다.

박 대통령 국민에게 직접 소상히 밝히고
검찰엔 엄정·철저한 진상 규명 지시해야
국민 의혹 안 풀리면 정국 혼란 돌파 못해

대기업들이 순식간에 800억원 가까운 돈을 출연한 미르·K스포츠재단은 곰곰이 따져 보지 않아도 의심받을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국민적 의혹으로 떠오른 지 오래전인데도 무슨 일인지 청와대와 정부는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 전경련은 대기업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둘러댔다. 박 대통령은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고 한마디 한 뒤 지금까지 말이 없었다. 여당은 최순실씨의 국감 증인 채택에 무조건 결사 반대였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오랜 비선(秘線) 실세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인사가 대기업과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 사익을 취했다면 청와대, 나아가 대통령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만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두 재단 의혹은 시민단체 고발로 검찰에 넘겨진 상태다. 검찰은 부동산 비리를 담당하는 형사 8부 막내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검사 한 명을 추가로 지원했다. 그러니 검찰도 청와대 눈치를 본다는 얘기가 나오고 의혹이 의혹을 낳으면서 사건이 게이트 수준으로 번져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두 재단 설립 배후에 최씨가 있다는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경련이 대기업으로부터 모금한 돈이 K스포츠재단을 통해 최씨 모녀에게 유입된 정황도 드러났다. 최씨가 한국과 독일에 개인 회사를 설립해 재단은 물론 별개로 개별 기업과 거래하려 했다는 등의 사실도 공개됐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권력형 게이트’의 형체가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정황만 놓고 보면 K스포츠재단은 말이 공익 재단이지 실제론 최씨 모녀 뒷바라지를 위한 조직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는 전경련의 해명을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의혹을 어물쩍 넘길 단계는 지났다. 여당 중진 의원들조차 “빨리 털고 갈수록 대통령 부담도 덜고 남은 임기를 정상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마당이다. 박 대통령은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철저한 진상 규명 의지를 밝혀야 한다. 검찰은 청와대 눈치를 보지 말고 제대로 실상을 파헤쳐야 한다. 의혹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필요하다면 특검도 국정조사도 동원해야 한다. 대통령이 지적한 자금 유용의 문제만이 아니다. 모금 과정엔 어떤 영향력이 있었고, 누가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 등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국민 상식선에서 이런 점이 납득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국민 마음이 모아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