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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재인, 더 이상 침묵하면 대권 후보 자격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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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07년 11월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북한의 의중을 물어보고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 대응방향을 결정키로 결론 내렸다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을 놓고 여야가 엿새째 진실게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해법은 간단하다. 문 전 대표 입에 달렸다. 그랬으면 그랬다, 안 했으면 안 했다고 한마디만 하면 끝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과 대화로 비핵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매달렸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 총리회담을 서울에서 열었다. 그 와중에 결의안에 찬성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 전 대표는 그런 사정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 비판은 비판대로 경청하면서 당시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는 노력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이다. 제1야당 유력 대선주자라면 이런 시험대를 결코 피해선 안 된다.

 송 전 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이 100% 사실이며 이를 입증할 “기록이 있다”고 했다. 장관을 지낸 사람이 이 정도까지 얘기했다면 문 전 대표가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기억이 안 난다”며 언급을 피하더니 “그 문제는 얘기 않기로 했지 않느냐”고 받아치기까지 했다. ‘선택적 기억상실증’부터 마이동풍 화법까지 그 자신이 그토록 비난해 온 현 정부의 행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문 전 대표는 청와대 회의를 주도하는 비서실장을 지냈다. 나흘 넘게 격론이 벌어진 현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기억을 못한다면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해야 한다.

 ‘부자 몸조심’ 식으로 변죽만 울리는 어법으로는 의심만 부추길 뿐이다. 국민은 그의 대북관보다는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눈여겨보고 있다. 9년 전 일에 대해서조차 책임 있는 답변을 피한다면 집권 뒤 국가의 핵심 현안에 대해 제대로 결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만 커질 것이다. “대권 후보 자격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기 전에 문 전 대표는 속히 진실을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