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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백남기 상황속보' 은폐 논란, 경찰청장은 진상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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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故) 백남기 농민이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경찰 물대포에 맞아 부상당한 상황이 기록된 경찰 보고서가 공개됐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파기됐다”고 했던 보고서가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은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터넷매체 ‘민중의 소리’가 입수해 그제 보도한 민중총궐기 대회 관련 상황속보에 따르면 당일 저녁 70대 노인이 뇌진탕으로 바닥에 쓰러져 구급차로 호송 조치됐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이후 상황속보엔 백씨에 대해 ‘19:10경 서린 R(빌딩 앞 버스정류장)에서 물포에 맞아 부상→구급차로 서울대병원으로 후송, 뇌출혈 증세로 산소호흡기 부착, 치료 중’이라고 기재돼 있다. 해당 문건들엔 당시 상황이 시간대별로 자세히 기록돼 있다.

상황속보는 집회·시위 등에서 현장 상황을 경찰 내부에 전파하기 위해 정리한 문서다. 앞서 경찰은 국감 전까지 “대회 당시 상황속보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말해 왔다. 지난 6일 국감에서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이 법원에 상황속보를 냈다”고 지적하자 뒤늦게 제출했으나 핵심 시간대 보고서는 빠져 있었다. 이 경찰청장은 “상황속보는 열람 후 파기가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속보가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경찰이 민감한 보고 내용을 감추려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경찰이 고의적으로 국회와 국민을 속인 중대한 위법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 청장 등이 상황속보의 존재를 알고도 숨겼다면 국회 증언·감정법상 위증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경찰은 왜 사실과 다른 답변을 했는지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

이렇듯 납득하기 힘든 경찰의 행태가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백씨가 병원 치료를 받던 317일간 경찰은 유감 표명을 하지 않은 채 방관해 왔다. 현재 백씨 부검을 놓고 유족과 대치 중인 데는 경찰의 책임이 크다. 경찰은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진상 규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