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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국영TV, 8부작 반부패 다큐를 방영하는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식당에서 계산할 때 국가 정책에 맞춰 더치페이를 합니다. 각자 몇 십 위안이면 충분해요.”

중국중앙방송(CC-TV)의 8부작 반(反)부패 다큐멘터리 ‘영원히 길 위에서’에 나오는 일반 시민의 목소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 공산당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CC-TV와 공동 제작해 17~25일 오후 8시 황금시간대에 방영하고 있다. 중국판 김영란법인 공무원 ‘8항 규정’에 호응해 더치페이를 한다는 것이다.

1편 ‘민심향배’에는 ‘신 4인방’으로 불린 저우융캉(周永康)·보시라이(薄熙來)·쉬차이허우(徐才厚)·링지화(令計劃)가 죄수복을 입고 잘못을 뉘우치는 육성이 보도됐다. 지난해 7월 7000만 허베이(河北)성 1인자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낙마한 저우번순(周本順) 전 서기도 나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을 많이 해 탐관오리를 몹시 증오했는데 내가 부패 관리가 되고 말았다. 헤아릴 수 없는 비애를 느낀다”며 흐느꼈다. 방송은 또 저우 전 서기가 아끼던 거북이가 죽자 직접 불경을 써 거북과 함께 매장했다며 그의 미신 추종 사실도 비판했다.

410억원을 수뢰한 혐의로 최근 사형 유예 선고를 받은 바이언페이(白恩培) 전 윈난(雲南)성 서기도 등장해 “가난한 농민 가정 출신인 내가 호화 주택과 차량, 개인 비행기까지 가진 기업가의 생활을 추구하다가 사상이 변질됐다”며 참회했다. 바이의 둘째 부인 장후이칭(張慧淸)이 1500만 위안(25억원) 상당의 옥팔찌를 뇌물로 요구한 사실도 적발됐다고 감찰관이 밝혔다.

370여 명의 중국 공산당 중앙·후보위원이 모이는 연례 회의 6중전회를 1주일 앞두고 낙마한 ‘부패 호랑이’의 비참한 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자 문화대혁명식 여론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밍(張鳴) 인민대 정치학과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고위 간부에 대한 공개 망신은 문화대혁명 방식”이라며 “공개 참회는 문혁 당시와 무척 비슷하다”고 말했다.

주리자(竹立家) 중국 국가행정학원 교수는 “이번 시리즈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6중전회 성공을 위한 길닦이”라며 “아직도 현직 부패 관리에 대한 경고 사격”이라고 풀이했다. 오는 24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6중전회에서는 가장 엄격한 반부패 규정으로 불리는 ‘당내정치생활준칙’을 확정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40여건의 ‘부패 호랑이’ 사건을 취재했다. 또 70여명의 국내외 학자와 기율위 감찰관 등과 함께 저우번순 전 서기와 리춘청(李春城) 전 쓰촨(四川)성 부서기 등 부패로 낙마한 10여 명의 장관급 이상 고위 관리를 인터뷰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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