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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내비게이션] 디자이너 양성소? 직물학·유통 등 ‘옷의 모든 것’ 배우는 종합 학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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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학과
청소년의 관심이 높은 학과를 소개합니다.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이 늘면서 진학을 희망하는 학과에 대한 탐구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은 여전히 대학의 명성,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곤 합니다. ‘열려라 공부’에서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돕기 위해 학과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관련 진로가 무엇이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3회는 의상학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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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2시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623호 강의실에서 이도연 의상디자인학과 조교가 1학년 학생들에게 바지 주머니의 도안 그리는 법을 지도하고 있다.

옷은 인류와 함께 발전했다. 추위로부터 체온을 지키는 방어수단에서 비롯된 옷은 이제 입는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는 심미적 수단이 됐다. 의상학과는 이처럼 인간의 필수품이자 미적 가치를 가진 옷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는 곳이다. ‘디자이너 양성소’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옷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 만큼 연구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의상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이를 바탕으로 어떤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의복구성·마케팅 등 다방면의 커리큘럼 구성
디자인실무·경영학 등 실습과 이론 함께 익혀
과제 많아 성적 아닌 적성 맞춰 진학 결정해야

14일 오후 2시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623호 강의실. 20명의 학생이 널찍한 책상 위에 바지 모양으로 자른 기름 종이를 올려놓고 서 있었다. ‘의복구성2’ 강의를 맡은 이소영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가 “바지를 본 뜬 종이에 주머니를 제도해 디자인하자”고 말했다.

학생들 모두 연필과 곡선자를 들고 주머니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주머니는 너무 깊게 판 것이냐”고 묻자 이 교수가 “그건 디자인적 요소로 볼 수 있어 상관없다”고 답했다. 1학년 채이슬(19·여)씨는 “우선 실측 사이즈에 맞게 기름종이에 바지 본을 뜨고 오린 다음 이걸 천에 대고 자른다. 1학기 때는 스커트를 그려서 천을 자르고 실제 재봉까지 했고 2학기 때는 좀 더 어려운 바지와 스커트를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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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학과의 교육 목표는 의류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인재의 양성이다. 의상학과에 발을 내딛은 학생들은 의류 산업계의 이해를 시작으로 해서 진로를 찾고, 진로에 따라 학습을 심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소영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는 “의상디자인학과는 인문·사회·자연·예술 등 다각적인 관점에서 의상에 접근하는 동시에 졸업 후 의류계에 진출해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가르치는 패션 전문인 양성소”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구상하는 패션 디자이너만을 양성하는 건 아니다. 황진숙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유통·판매, 무역, 패션 정보 업계 등 다방면에 걸쳐서 진출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한태균(29)씨는 “의상 디자인은 생각보다 공정이 복잡하고, 거기에 따른 업무도 세분화 돼 있었다. 마케팅 분야만 해도 재판매를 위해 의류를 직접 사오는 바이어(buyer)나 판매할 의류의 컨셉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머천다이저(MD)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교육과정은 기초 과정과 심화 과정으로 나뉜다. 기초과정은 ‘의복구성’ ‘표현연습(패션일러스트레이션)’ ‘패션비즈니스의 이해(탐색)’ ‘의류소재의 이해’ 등 강의를 통해 의상을 이해하고 만들기 위한 기초 능력을 숙달하는 과정이다. 의복구성(의복구성기초)의 경우 ‘재봉틀’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재봉틀을 통해 난도가 낮은 치마 등 의상을 만들어보며 감각을 숙달한다. 표현연습 수업은 구상하고 있는 디자인을 실제 도면에 표현해낼 때의 기술, 미술적 능력을 키우는 과목이다. 패션비즈니스 수업은 전공과 관련된 진로 진출 분야들을 파악해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2학년 이후 이같은 과정이 심화된다. 재봉틀과 기본 의류를 만들던 ‘의복구성’은 치마·스커트의 제작 및 테일러링(대상에 맞게 크기를 늘리고 줄이는 일)을 하는 등 난도를 높여간다. 표현연습의 경우에도 패션드로잉이나 디지털패션일러스트레이션 등을 통해 난도 높은 색채 표현법이나 컴퓨터프로그램을 활용한 그리기를 배운다. ‘창작의상’이나 ‘어패럴디자인’ 등과 같이 주어진 테마나 소재에 따라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보며 창의성을 키워주는 강의도 늘어난다. 이론 수업도 늘어난다. 의류 산업계의 흐름을 짚는 것에서 나아가 동양·서양의 의복 역사를 알아보거나(동양·서양 복식사) 옷의 재료가 되는 직물에 대해 배우고(직물학), 패션상품 판매를 위한 소매과정의 경영과 전략도 배운다(패션 리테일링).

대부분 강의가 선택 과목이기 때문에 진로에 따라 선택해 본인의 능력을 특화시킬 수 있다. 건국대의 경우 입학 후 1년간 8개 지정교양을 들은 후 나머지는 모두 전공 선택 과목으로 운영된다. 이소영 교수는 “전공은 교과목 특성에 따라 임의로 디자인 쪽과 의복구성 쪽, 패션마케팅 쪽으로 나눌 수 있다”며 “디자인과 의복구성에 관심있는 학생은 실제도 의복을 디자인해보는 실습 수업을, 마케팅 쪽은 20세기 패션사나 패션마케팅, 패션리테일링 등 패션업계에서 트렌드 감각과 실무능력을 키울 수 있는 이론 수업을 특히 많이 듣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MD 등 마케팅 업계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은 경영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하기도 한다. 현대백화점에서 입점 브랜드를 관리하는 MD로 일하고 있는 김천응(35)씨는 “패션 마케팅 쪽으로 강의를 들으면서 동시에 경영학을 복수전공해 안목을 넓혔다”고 말했다.

의상학과엔 실습이 많지만 이론 학습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기초적인 드로잉, 현장실습 등 실습 중심 수업과 의상사나 직물, 패션마케팅 등에 대한 이론 중심 수업이 2대 1 비율로 편성된다. 경희대 의상학과 2학년인 구도연(22·여)씨는 “막연히 그림을 그리거나 옷을 만드는 것이 중심이 될 줄 알았는데 염색 소재에 관한 이론이나 경영 관련 이론, 패션 역사도 배워서 의상에 관한 포괄적인 지식을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실습 강의도 이론 과정을 선행하는 경우가 많다. 경희대의 경우 실습이 위주가 되는 ‘색채와 디자인’ ‘패션과 염색’ ‘패션디자인’ 등도 이론과 실습 배정 시간이 똑같다. 김미숙 경희대 의상학과 교수는 “실습 수업이라고 할지라도 학문적 이해가 바탕에 있어야 습득력이 높기 때문에 이론 수업을 거치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중심은 실습 수업이다. 송화경 경희대 의상학과 교수는 “패션 마케팅이나 패션 경영 쪽으로 진로를 정하더라도 졸업 요건을 정해 ‘디자인발상’ ‘의복구성기초’ 등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강의는 꼭 듣게 하고 있다. 기획을 하든 재판매를 하든 의상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습이 많다보니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가 다른 학과에 비해 친밀한 편이다. 고현진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는 “실습 과목의 경우 1:1 학습이 원칙이라서 교수가 학생의 성향과 능력을 파악하기가 쉽다”며 “취업이나 진로 결정시 학생에 맞는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졸업 패션쇼는 의상학과 학생에겐 ‘실습의 꽃’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졸업을 위해선 졸업 패션쇼가 필수다. 졸업 패션쇼는 3학년 2학기나 4학년 1학기때부터 시작해 1년간 준비한다. 학생들은 조를 나눠 자료 조사를 통해 주제를 정하고, 정해진 주제에 맞게 디자인을 구상한다. 구상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실제로 원단을 뜨고 직접 염색한다. 이 과정을 통해 3~4벌의 옷을 생산해야 한다.

고현진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는 “졸업 패션쇼를 통해 기획에서부터 제작, 패션쇼에 이르는 과정, 즉 실제 실무 현장에서 컬렉션을 제안하기 위한 전 과정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다”며 “4년간 배웠던 지식과 능력을 집약해 발현하면서 마지막으로 진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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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학과에 맞는 학생들은 어떤 이들일까. 의상학과 학생과 교수들은 ‘성적 맞춰서 들어오는 학과’는 아니라고 답했다.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에 재학중인 이영훈(23)씨는 “그저 성적에 맞춰 온 학생 중엔 과를 옮기거나 반수를 하는 사례가 많다. 실습도 많고 과제도 엄청난 편이라 정말 옷을 좋아해야지만 즐기면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상과 패션에 대한 관심은 기본이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창의성도 갖춰야 한다. 형체가 없는 컨셉이나 주제를 실물인 의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창의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자질로는 성실함이 꼽혔다. 김효숙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는 “지금 당장 준비돼 있지 않아도 노력과 의지에 따라 창조적인 능력과 미적 감각이 키워져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술을 배우지 않은 학생도 따라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입학 후 전공 기초 수업을 통해 기초적인 표현법이나 그리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때문에 교수들은 표현 능력보다 창의력이 더 중요한 자질이라고 입을 모았다.

건국대의 경우 실기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한다. 이순재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교수는 “실기를 전공한 학생들의 표현법이 우수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비실기 학생의 경우 처음 힘들 수는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그리기 뿐 아니라 직관적 창의력과 이성적 사고에 의한 기획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국엔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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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진로
백화점·패션몰 MD 등 진출분야 광범위
패션 디자이너 활동이나 창업도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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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의상학과 학생이 2015년 졸업 패션쇼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 경희대]

의상학과 진출 분야는 의류 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다. 마케팅 분야에서는 머천다이저(MD)로 진출하는 학생이 많다. 백화점·패션몰에 소속된 MD는 어떤 옷을, 어떻게 판매할 지 기획·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소비자를 끌기 위해 매장 디스플레이 등을 비주얼MD(VMD)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백화점 MD로 일하고 있는 김천응(35·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졸업)씨는 “MD는 패션 트렌드는 물론 경영·관리 업무에도 능숙해야 한다. 학과 수업 뿐 아니라 동아리 활동, 공모전 참여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으로 감각을 키웠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로 진출하는 졸업생도 많다. 디자이너의 종류도 다양하다. 디자인을 구상하는 패션 디자이너뿐 아니라 디자인된 패션 도안을 바탕으로 실제 옷의 ‘설계도’를 만들어내는 모델리스트(패턴사), 어떤 직물을 쓸지 정하는 소재 디자이너도 있다. 의류업체 아이디룩에서 모델리스트로 일하는 송원영(31·건국대 졸업)씨는 “흔히 디자이너 한 명이 구상부터 제작까지 다 하는 걸로 오해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디자인 도안에 맞춰 실제 어떻게 만들지 설계도를 짜고, 부자재는 무엇을 쓸 지를 정하는 역할도 훌륭한 옷을 만드는 데 중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직접 창업에 나서는 학생도 적지 않다. 건국대 의상디자인학과 4학년 한태균(29)씨는 현재 창업을 준비 중이다. 한씨는 “졸업 전이지만 이미 작업실과 매장을 마련해뒀고 옷도 생산하고 있다. 예전에는 창업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엔 나처럼 바로 창업에 도전하는 학생도 매년 나온다”고 말했다.

어떤 진로를 택하든 실무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학들도 학생에 이런 기회를 주기위해 노력한다. 경희대는 3학년 2학기 또는 4학년 1학기를 마친 후 방학 기간 중 160시간 이상 의상 디자인업체에서 인턴 과정을 밟은 학생에게 3~6학점을 부여한다. 학교가 사전 면담을 통해 원하는 진로에 따라 업체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건국대는 ‘취업패션실무 1·2’ 강의를 통해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준다. 원하는 학생은 학기 중 이론 수업을 듣고 방학 때 3주 간 인턴으로 활동한다.

의상학과 학생은 졸업 패션쇼를 통해 새로운 옷을 기획·제작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학교에 따라 실무 경험이 많은 현직 디자이너가 직접 조언하기도 한다. 올해 경희대에선 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가면을 제작했던 감선주 디자이너가 졸업 작품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의상·패션업은 경제 상황에 따라 부침을 겪곤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세가 유지되는 ‘꺼지지 않는 시장’이기도 하다. 송화경 경희대 의상학과 교수는 “옷을 통해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는 내면의 기초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꾸준한 산업적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패션과 직접적 연관성이 낮아보였던 산업에서도 디자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프라다폰’과 같이 의류업체와 휴대폰업체가 협업을 하고, 미니쿠페의 일부 모델처럼 의류업체와 자동차업체가 결합하기도 한다. 김미숙 경희대 의상학과 교수는 “의상을 넘어 산업의 전 영역에 걸쳐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됐다. 디자이너의 진출 영역도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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