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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서민용’이라던 보금자리론이 투기에 이용됐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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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대 고정금리로 최장 30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보금자리론 운영이 뒤죽박죽이다. 수요예측 실패로 갑자기 대출 규정을 바꿔 이용자를 당혹스럽게 만들면서다. 지난해 보금자리론 공급액은 14조7496억원으로 당초 목표 6조원을 크게 초과했다. 올해도 10월 현재 공급량이 이미 13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결과는 당초 도입 취지에서 벗어난 탓이 크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2004년 보금자리론을 처음 도입할 때는 서민금융 상품이었다. 하지만 2009년 침체된 주택시장을 띄우기 위해 담보 주택 가격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확대했다. 최근 강남 재건축발 주택시장 과열 현상에도 주택금융공사는 이 기준을 유지했다. 그 여파는 상당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찬대 의원이 보금자리론 이용자들의 현황을 살펴보니 당초 취지와 다르게 다주택자 비중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2주택자에 대한 대출 금액은 2조2739억원으로 연간 판매 금액의 15%에 달했다. 보금자리론은 3년 내 기존 주택을 처분한다는 조건으로 일시적 2주택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3년 내 대출을 상환할 경우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주택 구매에 보금자리론이 활용됐고 최근 주택시장 과열과 투기에 기름을 부었다는 얘기다.

불을 끄는 과정에서도 파행이 빚어졌다. 주택금융공사는 지난 14일 대출 요건을 기습적으로 변경했다. 변경안의 골자는 19일부터 연말까지 담보 주택 가격과 대출 한도를 각각 최대 9억원에서 3억원으로,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고 부부 합산 소득을 연 6000만원 이하 가구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고삐 풀린 대출 러시에 건 긴급 제동이다. 주택금융공사는 시장 과열 양상을 반영해 진작에 기준을 손질했어야 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한시 운용이 끝나는 올 연말에는 그동안 드러난 부작용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 기준을 내놓아야 한다. 당초 서민금융이라는 도입 취지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개선하면 바람직한 대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