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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의 ‘0원 등록금’ 약속…달갑지 않은 서울시립대 학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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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시립대 4학년 박모(24)씨는 매 학기 수강 신청을 할 때마다 진땀을 뺀다. 2011학년도 입학 이후 이수하지 않은 과목을 찾기 힘들어서다. 그는 “2012년 반값 등록금이 시행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학교 측에 ‘수업을 다양하게 늘려 달라’고 했더니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예산 모자라 강의 줄고 연구비 삭감
학생들 “반값 등록금의 역설 체감”
총학 “강행 땐 실력행사 나설수도”

이 대학은 2012년부터 5년째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2011년 서울시장이 되면서 선거 공약이었던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을 실현했다. 최근엔 박 시장이 한발 더 나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전액 면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대학 총학생회는 지난 15일부터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재학생 등을 대상으로 ‘0원 등록금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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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인 총학생회장은 “전면 철회를 요구할지, 시기를 미룰지 정한 건 없다. 서울시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강행한다면 실력 행사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등록금이 반값 또는 면제가 된다면 학생 모두가 환영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반값 등록금 시행 이후 교육의 질이 떨어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학교가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시간강사를 줄이고 수업 규모를 키웠다. 서울시립대의 자체 수입금은 2011년 498억1300만원에서 2015년 306억3700만원으로 감소했고, 시간강사는 같은 기간 712명에서 408명으로 43% 가까이 줄었다. 100명 이상이 수강하는 대형 강의는 57개(2011년)에서 112개(2015년)로 늘었다.

교수와 학생들도 반값 등록금의 역설을 수업 중 체감하고 있다. 도시과학대학 A교수는 “소수정예로 해야 하는 실습 위주 수업도 반을 합쳐 40~50명을 앉혀 놓고 하니 강의 질이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11년에 입학한 4학년 송모씨는 “대규모 강의를 수강하면 교수님 목소리도 잘 안 들릴 때가 많다. 강의실 뒤쪽에 앉으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 시장의 등록금 전액 면제 발언을 달가워하지 않는 건 교수와 대학원생도 마찬가지다. 교수 등에게 돌아가는 연구비가 반값 등록금 시행 이후 뚝 떨어졌다. 2011년도엔 50억원이 넘는 대학 자체 연구비가 교수와 대학원생에게 돌아갔으나 2014년도엔 자체 연구비 규모가 33억원 정도로 40% 가까이 줄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교수는 “연구에 대한 투자가 대학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학교에 대한 지원을 보장하지 않은 채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건 학교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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