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트렌드

[라이프 트렌드] 동네 책방이 달라졌다 책 읽는 아늑한 공간

중앙일보

입력 2016.10.18 00:01

업데이트 2016.10.1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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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있는 자연·생태·환경 분야 전문 1인 출판사 겸 책방 ‘목수책방’. 작은 공간이지만 서점 안에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누구나 들어와 책을 읽고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동네 책방이 힐링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온라인·대형서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아늑한 분위기에서 가족이 함께 책을 읽거나 늦은 시간까지 관심 분야의 책을 보며 혼자만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한곳으로 모이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작가·주인과 책 얘기
한 주제 전문서적 구비
밤 늦게까지 문 열어

지난 10일 오후 8시 서울 서교동 한 골목에 있는 서점 ‘북티크’. 주부·직장인·대학생 등 10여 명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한쪽에선 한 주부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소곤소곤 읽어주고 있다. 조용한 분위기여서 일반 카페같이 보이지만 동네 책방이다. 주부 김윤선(45·서울 성산동)씨는 “아이와 함께 오거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혼자 찾기도 한다”며 “집이나 도서관과는 다른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병득(50·서울 도곡동)씨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서울 대현동에 있는 추리소설 전문 책방 ‘미스터리 유니온’을 찾는다. 지난 7월 문을 연 이곳엔 추리·미스터리 관련 1600여 권의 책이 진열돼 있다. 1970~80년대를 연상시키는 나무 책장과 형광등 인테리어로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씨는 “고등학교 때 뤼팽, 셜록 홈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 등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온다. 온라인에선 책을 검색해 구할 수 있지만 이곳은 신간부터 주인장이 추천하는 도서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서점 수 줄어도 동네 테마 책방은 증가

동네 책방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거나 작가와 만날 수 있는 ‘열린 책방’, 한 가지 주제의 전문서적이나 특정 장르만 취급하는 ‘테마 책방’ 등이 골목 곳곳에 생기고 있다. 최근엔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는 ‘심야 책방’도 등장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3년 1625곳이던 서점은 2015년 1559곳으로 줄었지만 테마가 있는 동네 책방은 늘고 있다. 올해엔 서울 60여 곳을 포함해 전국에 100여 곳이 생겼다.

특색 있는 동네 책방이 인기를 끄는 것은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서점과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편안한 공간에서 직접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 등을 마시며 혼자 독서를 즐기거나 같은 취향의 사람이 모여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사람을 불러모으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대형서점의 가격 할인이 제한되면서 동네 책방이 책을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점도 원인이다. 책방을 디자인하는 양이랑(32) 아트디렉터는 “책을 통해 어려운 정보나 지식만 얻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책을 읽으며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책방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건축·디자인 같은 전문 분야를 다루는 책방이 유독 많다. 한 분야의 서적만을 취급해 마니아층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연남동에 있는 책방 ‘사이에’는 여행서적을 전문으로 판매한다. ‘나 혼자 여행’‘청춘 여행’‘음식 여행’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분류된 책이 즐비하다.

해외 건축 서적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서울 논현동 ‘심지(SIMJI)’는 세계의 건축·인테리어·디자인 관련 서적을 갖췄다. 서울 통의동 ‘더북소사이어티’ 역시 건축·디자인 서적을 파는데 새로운 콘셉트의 디자인 서적이 많아 현직 디자이너와 지망생에게 인기다.

시집이나 그림책만 모아놓은 책방도 있다. 서울 문래동 ‘청색종이’에는 김태형 시인이 모은 1000여 권의 시집이 있다. 서울 대신동 ‘초방책방’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 전문 서점으로 작가의 개성이 넘치는 책 500여 권이 진열돼 있다. 서울 성수동 ‘책방이곶’에선 시집과 예술 잡지를 비롯해 컬래버레이션 표지 등을 볼 수 있다. 서울 서교동 ‘유어마인드’는 20~30대 젊은 작가들이 출간한 책 위주로 꾸며져 있다.

가족이 함께 찾을 수 있는 책방도 눈길을 끈다. 서울 중화2동 ‘상상하는 삐삐’는 가족이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린 책방이다. 170여㎡ 매장에 1000여 권의 책이 비치돼 있다. 단순히 책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부모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쓰기 교육도 받을 수 있다. 직장인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심야 책방도 인기다. 서울 서교동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에는 출판사 다산북스가 2004년부터 출간한 도서 1200여 권이 비치돼 있다. 바 형식의 책상에서 책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낮에는 커피와 차, 저녁에는 맥주를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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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교동 심야 책방 ‘북티크’에서 직장인이 퇴근 후 독서를 즐기고 있다.

주류 판매·이벤트 치우치면 독자 외면

책방에서 다양한 문화 활동도 이뤄진다. 영화 상영회, 독서 모임, 번역 모임, 작가와의 만남, 음악회, 독립출판물 만들기 등 책을 매개로 독자와 소통한다. 서울 용산동 ‘고요서사’는 단편소설을 함께 읽고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즐기는 모임을 한다. 서울 망원동 ‘책방만일’은 정기적으로 독서 모임과 낭독회를 한다. 트위터에 신청하면 장소를 빌려준다. 서울 상수동 ‘정원이 있는 국민책방’은 정원 같은 분위기에서 독서 모임을 할 수 있다. 주인이 직접 기획한 미술품 전시나 음악 공연도 열린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동네 책방이 특색 있는 콘셉트로 다양한 독자를 불러모으는 건 좋지만 책을 읽고 판매하는 것보다 주류 판매, 문화공간 제공, 이벤트 위주로 운영하게 되면 책방이 가진 본래의 목적을 잃을 수 있다”며 “독자층이 크게 늘지 않는 이상 책방만 많아지게 되면 출혈경쟁으로 도산하는 등의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강태우·라예진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임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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