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작가전] 알 수도 있는 사람 #11. 흔적 (1)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방조제를 따라 반듯하게 달린 도로는 노란색의 가로등 불빛에 젖어 뱀의 혀처럼 검붉게 번들거렸다. 두 대의 자동차가 제한 속도에 두 배는 족히 넘을 스피드로 굉음을 내지르며 방파제 입구에서부터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도시 쪽의 방조제가 시작되는 지점으로부터 시작해 1km가 되는 지점을 통과한 후 차는 속도를 줄였다. 그 지점에 서있는 기록자로부터 기성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7632, 승, 11초 23.’

문자가 들어온 뒤 7632는 결승에서 승리한 것처럼 요란하게 경적을 울렸다. 누군가는 11초 사이에 20만 원을 날렸고 누군가는 최종 승자에 다가섰다. 순간 폭발력과 순발력 그리고 힘이 필요한 레이싱이었다. 새로 출발한 두 대의 차는 방조제 중간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차는 도로 끝 휘어진 부분에서 빨간 차폭등만 남기고 사라졌다. 차폭등도 이내 가로등 불빛에 젖어버렸다. 잠시 후 유턴해서 출발점으로 돌아올 터였다. 새벽 1시가 넘고 있었다.

기성은 참가자들이 사인한 서약서에서 방금 결과를 낸 두 대의 차량 운전자를 찾았다. 승자의 이름 위에는 ‘O’표와 함께 기록이 남았고 패자의 이름 위엔 ‘X’표가 그려졌다. 마흔여덟 명 중 서른 명이 레이싱을 끝냈다. 15명의 승자가 나왔고 15명의 패자가 나왔다. 승자들은 물론 패자들 역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패자들은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운전조작의 미숙을 한탄하기도 했고, 차량의 상태를 비난하기도 했으며 혹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엑셀 대신 브레이크를 밟았다며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출발 신호를 늦게 봤다며 변명하기도 하면서 경기에 참여할 차량들과 이미 경기가 끝난 차량 그리고 구경 나온 차량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며 주차장을 더 뜨겁게 달구었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이루어진 레이싱이었다. 최종적으로 세 명이 남는 레이싱이었다. 최종 승자 세 명은 기록경기로 마무리 짓기로 결정이 되었다.
다시 31번과 32번 차량이 출발했다. 레이싱 진행은 빨랐다. 출발선에 서고 레이싱이 끝나는 데까지 불과 1분이면 족했다. 레이싱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방조제 길이 총 8km. 방조제의 중간 지점이 90도로 휘어졌지만 그곳까지 달려갈 일이 없으니 방조제의 길이는 상관없었다. 이번 레이싱에 필요한 거리는 1km였다. 방조제 왼편엔 소금기를 잃어버린 담수가 고여 있었고 오른편엔 소금을 머금은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바람은 바다 쪽에서 간척지가 되어가는 쪽으로 불었다. 바람엔 소금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기성은 거칠고 짠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가로등 불빛이 출렁거리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의 불빛은 어서 뛰어 들어오라는 사이렌의 유혹처럼 쉬지 않고 꾸물거렸다. 39번 차량과 40번 차량이 출발했다.

기성은 수인과 자신에게 맡긴 서약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종이 윗부분이 바닷바람에 펄럭거렸다. 참가자들의 이름, 차종,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사인이 꿈틀거리며 살아났다. 열 명쯤 참가할 것이라는 기성의 예상에 수인은 피식 웃었다. 레이싱에 참가하겠다고 돈을 낸 운전자는 모두 48명이었다. 그나마 수인이 나름대로 선발한 운전자들이었다. 저녁 8시에 공지를 띄웠다는데 수인에게 참여 의사를 밝힌 회원만 200명이 넘었다. 그중 48명만 수인의 선택을 받았다. 기성은 수인에게 어떤 기준으로 참가자를 선발하냐고 물었다. 차량의 연식과 최근의 정비 이력, 운전 경력, 사고 경력 등을 바탕으로 선별한다고 말했다. 간혹 레이싱에 꼭 참여하고 싶다며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참가자의 수를 조절할 뿐이에요. 너무 적으면 흥미를 잃게 되고 너무 많으면 통제가 어려워져요. 어느 땐 참가자가 많아야 흥이 나고 어느 땐 참가자가 적어야 더 스릴을 느낄 수 있거든요.’

자정 무렵에 나타난 운전자들은 구경꾼들까지 포함해 100여 명이 넘었다. 배기량 2,000cc 아래의 차라면 어떤 차라도 참가할 수 있게 했다. 무게를 줄이는 것은 허용하되 4기통 이하의 실린더만 가진 차로 제한했다. 도로에 흔히 굴러다니는 준중형급의 차만 참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레이싱에 참가하는 차량의 조건은 수인이 정한다고 했다. 참가자를 선별하는 것은 물론 그녀가 정한 조건에 토를 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39번 차량과 40번 차량의 레이싱에서 승자에 대한 기록이 들어왔다. 대기선에 41번 차량과 42번 차량이 섰다. 42번 차량은 용주였다. 용주는 기성에게 안개 속의 레이싱에서 우승했던 여자도 참석했다고 말해주었다.

기성은 용주가 가르쳐준 여자를 눈여겨보았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깔깔거리고 있었다. 안개 속의 레이싱에서 우승을 하고도 죽을 뻔했다며 수인의 뺨을 후려쳤다던 여자. 그녀는 빨간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서서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녀는 흰색 레이싱 수트 차림이었다. 기성은 그녀에게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영미라는 이름의 여자. 남자와 여자, 우정과 사랑, 진실과 거짓 같은 것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놓고 사는 사람 같았다. 불만과 뭔지 알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만은 시간을 분절한 시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쾌활해 보이지만 우울하고 매사 정확해 보이지만 어딘가 빈 듯한 여자. 여자의 눈이 기성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는 자신의 시선을 이내 남자들 속에 묻었다. 여자는 이미 첫 번째 토너먼트에서 승자로 기록되었다.

시발점 기수의 신호를 받고 두 대의 차가 맹렬하게 출발했다. 구경꾼들의 환호성으로 주차장이 들썩였다. 어떤 이들은 운전석 창문을 열어놓고 경적을 울려댔다. 출발선으로 이동하는 차들의 엔진음과 브레이크 밟는 소리, 출발선에 선 차들이 브레이크를 건 채 엑셀을 밟아 일으키는 공회전 굉음,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차가 울려대는 경적 소리. 소음은 잠들어 있던 담수를 깨웠고 잔잔하던 파도를 일어서게 만들었다. 이들의 차가 한꺼번에 달리면 5,000마력의 소음과 위력을 뿜어댈 터였다. 급기야 방조제 관리소가 불을 밝혔다. 방조제 관리소의 관리인 인듯한 사람이 건물 안에 서서 유리창 너머로 소란스러운 주차장을 내다보고 있었다. 남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는 모습이 기성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남자를 유심히 관찰한 사람은 기성과 수인뿐이었다.

기사 이미지

“저 남자도 실은 우리처럼 도로를 질주하고 싶어 안달이 나지 않았을까요?”

수인이 눈으로 남자를 가리켰다. 기성은 만화영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빨간색 가죽옷을 입고 서 있는 수인을 쳐다봤다. 가로등 불빛에 반짝거리는 그녀의 몸은 희극적이었다. 어떻게 변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여자였다. 그래서 깊이도 알 수 없었다. 선뜻 다가갈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여자. 그녀가 기른 비밀의 늪은 깊고 깊어서 한번 그 늪에 빠지면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레이싱에 참가한 대다수의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 역시 그녀 주위를 빙빙 돌 뿐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모든 남자들이 질주를 갈망하진 않습니다.”

수인이 피식 웃었다.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없었다. 수인은 기성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기성이 먼저 수인의 눈길을 피했다.
기성은 수인의 부탁으로 레이싱에 참가한 차들의 정비 상태를 봐주고 경주 기록을 위해 참가했다. 기성은 배기량 2000cc 아래의 차에선 엔진 튜닝 따위가 별 의미가 없다고 사양했지만 수인은 끈질기게 부탁했다. 레이싱의 모양새라도 갖추고 싶다는 말에 기성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39번 차량은 6기통 엔진이었던 것 같은데 왜 모른 척하셨죠?”

수인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1km 안에서 승부 내는 레이싱엔 4기통이든 6기통이든 별로 상관없습니다. 흡기나 배기 쿨링 시스템 관리만 잘한 차라면 이런 레이싱에서는 당신의 차보다 4기통 차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거든요. 4기통 차가 순간적인 폭발력이 더 뛰어나기도 해요. 엔진이 부드럽고 소음이 적다뿐이지 사실 2000cc 아래에서 기통은 짧은 레이싱에 있어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39번 차량 운전자는 자신의 차가 4기통인지 6기통인지도 모르더라고요.”

기성은 이미 레이싱을 끝낸 차들의 기록을 훑으며 말했다.
배기량이 같은 차에서 기통 수의 의미는 순간적인 출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4기통의 경우 500cc짜리 실린더를 네 개 달았다는 뜻이고 6기통의 경우 330cc짜리 실린더를 여섯 개 달았다는 뜻이었다. 6기통 실린더를 단 차의 경우 엔진 소음이나 떨림을 완화시켜줄 뿐 힘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수인은 기성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 그녀의 눈길은 어느새 주차장에서 서성거리는 누군가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녀의 눈길이 닿는 곳에 영미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파묻혀 수다를 떨고 있었다.

“42번 스쿠프와는 친구시죠?”

수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41번과 42번의 기록이 들어왔다. 용주의 승리였다. 8초 11. 기성은 휴대폰에 들어온 기록을 새삼 확인했다. 다른 차들의 기록에 비해 3초 이상 앞선 기록이었다.

“용주란 친구 매사 필사적이죠.”

용주의 차는 운전석을 제외한 모든 좌석을 떼어내 차 안이 휑해 보였다. 참가한 차들 중에 운전석을 제외한 나머지 좌석을 떼어낸 사람은 용주가 유일했다. 그는 차량 무게를 줄여도 된다는 레이싱 조건을 유일하게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지킨 사람이었다. 그건 기성의 예상 밖이었다. 운전자들은 대부분 아주 사소한 무게가 스피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가속력이 그다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 극도로 짧은 레이싱에서 승리의 관건은 무게였다. 마흔여덟 대 차의 엔진룸을 확인하면서 본 다른 차들은 처음 양산된 그대로의 모양으로 출전했다. 단 1리터의 물만으로도 수초 간의 차이가 난다는 걸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무시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이 무모한 레이싱을 즐기러 나온 것에 불과했다.

용주는 스페어타이어, 심지어 카 매트까지 모두 빼놓고 출전했다. 그동안 42번과 43번 차량의 기록이 휴대폰으로 들어왔다. 용주는 어느새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용주는 기성과 수인 앞을 지나가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용주가 먼저 미소를 지었고 수인이 이를 드러내며 화답했다.

마지막 레이싱에 참가할 운전자들에 대한 호출이 있었다. 48번인 수인의 차례였다.

“용주라는 사람 보면 볼수록 재미있어요. 어디까지 쫓아올지는 모르겠지만…….”

기성은 용주에 대해 새로운 점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일에 의기소침해 있는 그였다. 거리에 나온 후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용주는 변했다. 딱히 어떤 방향으로 변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수인처럼 그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인은 가로등 불빛에 젖어 보라색으로 빛나는 몸을 끌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녀가 이번에 끌고 나온 차는 아벨라였다. 친구의 차를 빌려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주차장에 모인 사람들이 마지막 레이싱을 구경하기 위해 출발선으로 몰려드는 사이 두 대의 차는 이미 출발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대부분 수인을 응원하는 환호성이었다.
그들의 환호성 덕이었는지 몰라도 500m 지점을 지나면서 승부가 결정 났다. 수인의 차는 47번 차를 20m 정도 앞섰다. 도착점을 지나자마자 수인의 기록이 기성의 휴대폰으로 들어왔다. 9초 15였다. 현재까지 최고의 기록은 용주가 낸 기록이었다.

수인이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레이싱 모델이라도 보려는 듯 여자들과 남자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그들은 다양했다. 회사에서 퇴근한 양복 차림 그대로인 남자들도 있었고 동네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나온 듯 허름한 반바지 차림의 남자도 있었다. 하이힐에 치마를 입고 참여한 여자도 있었으며 레이싱 모델처럼 짧은 팬츠 차림의 여자도 있었다. 그들은 10초의 레이싱에서 얻은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해 쉼 없이 주절거렸다. 기성은 그들의 얼굴을 일일이 살폈다. 풀리지 않은 긴장이 그들의 얼굴 위에 노을처럼 물들어 있었다. 그들은 이 순간만큼은 이성이나 영혼마저 마비시켜버리는 순간의 스피드에 미쳐있었다. 그들은 병적으로 반복되는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무수한 타협으로 이루어진 삶에서 타협이라고는 없는 순간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토너먼트가 모두 끝나자 주차장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2차전에 나올 운전자들한테 통보하셨지요?”

출발점으로 돌아온 수인은 용주를 힐끔 쳐다본 후 기성에게 물었다. 기성이 대기선에 선 두 대의 차량을 가리켰다.

기사 이미지


작가 소개
· 추계예술대학교 문예 창작학과 졸업
· 상명대 대학원 소설 창작학과 재학 중
· 2012년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그 외의 작품
·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불의 기억’
· ‘13월’
· ‘9일의 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