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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옷 9점 골라 직물 복원, 한복의 미래를 묻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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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8 면

아름지기 사옥에 전시된 조선시대 복식들. 왼쪽부터 16세기 복식, 19세기 복식, 18세기 복식(신윤복의 ‘미인도’ 재현), 18세기 복식(신윤복의 ‘야금모행’속 여인 복식 재현).

통일신라 복식. 짧은 저고리 위에 긴 치마를 입고 어깨에 표를 두른 모습은 당시 당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유행하던 옷차림이다.

전통 문화의 보존과 활용, 문화유산의 현대적 구현을 추구하고 있는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새 전시를 시작했다. ‘저고리, 그리고 소재를 이야기하다’(10월 8일~11월 4일·월요일 휴관·성인 5000원)다. 아름지기는 2004년부터 매년 번갈아 가며 의·식·주라는 주제에 대해 전시를 하고 있는데, 옷 관련은 ‘전통의 맥,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찾아서-쓰개’(2004) ‘우리 옷, 배자’(2007) ‘유니폼, 전통을 입다’(2010) ‘포(袍), 선비정신을 입다’(2013)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다. 올해는 재단법인 월드컬처오픈 화동문화재단 부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의 옷공방이 힘을 보탰고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도 후원에 나섰다.


사실 저고리는 한복의 기본이다. 기본인 만큼 익숙하고, 그런 만큼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신연균 이사장은 “한류를 통해 한복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특히 고궁 주위에서 한복을 입고 즐기며 자신을 표현하려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났다. 그런 것을 보면서 이제 다음 세대를 위한 한복을 고민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크게 세 섹션으로 구분된다. 현대 기법으로 재탄생한 전통 복식, 전통 복식을 재해석한 현대 디자인, 그리고 안 입는 옷을 재활용한 업사이클링 한복이다. 각 섹션 모두 소재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7일 오후 고궁박물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아름지기 사옥과 길 건너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동시에 열린 전시 개막식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신윤복의 ‘야금모행(夜禁冒行)’, 18세기,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고구려 A라인 치마, 신윤복 ‘미인도’ 옷 재현]


“지난해 DDP에서 열린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에서도 보셨듯 칼 라거펠트는 우리 한복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갔지요. 또 셀린느 같은 명품 브랜드를 보면 그 여유감이나 절제미, 곡선과 직선의 만남 같은 면 분할 방식이 한복의 아름다움과 맥을 같이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정작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2000년 한복의 역사를 총 정리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기 위한 매듭이 바로 이번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전통 복식 재현 부문을 총괄한 조효숙 가천대 부총장은 이를 위해 옛 직물의 복원에 정성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옛날 직기를 이용해 옛 방식대로 복원하는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생산 단가가 비싸서 이번에는 당시 옷감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제직회사들이 현대화할 수 있는 소재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각종 자료를 검토하고 전문가 회의를 거쳐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 9점을 골랐다”며 “마치 미스코리아를 선발하는 느낌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우선 수산리 고분벽화를 근거로 5세기 고구려 여성의 A라인 주름치마를 되살려냈다. 저고리는 베이지색 가죽으로 제작했는데, 저고리의 깃과 섶, 소맷부리 등은 까실까실한 쇠털 느낌을 주는 고동색 송치 가죽으로 처리했다. “당시 고구려인들의 가죽 다루는 솜씨가 좋았다는 문헌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통일신라의 복식 재현을 위해서는 경주 용강동과 황성동 고분, 그리고 당나라 회화와 토우 인형까지 분석했다. 귀족층에서 유행하던 꽃무늬가 가미된 인화문사(印花紋紗)를 만들기 위해 직물회사 ‘Les collages’와 협업, 두께와 투명도가 다른 두 가지 실크에 문양을 날염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대목이 고려시대 옷이다. 조 부총장은 “고려의 직물인 라(羅)는 원나라에서 공물로 요구했을 정도로 품질이 좋았다”며 “온양민속박물관에 소장된 1302년 아미타불 복장직물인 사경교라(四脛交羅)를 연구해 럭키섬유와 함께 현대 니트 제직 기법으로 개발했다”고 말했다. 또 “12세기 봉서리탑에 복장된 고려 보상화 무늬의 금(錦) 직물을 복원하기 위해 세마직물과 수차례에 걸쳐 작업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선보인 고려시대 의상은 세 벌. ‘관경변상도’에 나온 고려 여인의 날렵한 자태는 붉은 색의 ‘라’를 이용해 재현했다. 또 ‘수월관음도’에 그려진 고려 여인은 옅은 도토리색 ‘금’ 저고리 차림으로 21세기에 나타났다.


조선시대의 경우 저고리의 길이가 길었던 16세기 스타일과 상대적으로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진 19세기 스타일, 그리고 신윤복의 풍속화 ‘미인도’와 ‘야금모행’에 나오는 한복을 고스란히 재현한 18세기 스타일을 내놓았다.

정미선 디자이너의 ‘향-01’. 울 혼방 니트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에서 안 입는 한복과 재고 의류로 만든 남녀 혼례복

정미선 디자이너의 ‘향’ 시리즈

‘래코드’가 만든 재활용품 한복 ‘100’

[여성복 디자이너 2명이 현대적으로 재해석]


아름지기는 정구호 디자이너로부터 한복을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할 수 있는 디자이너 10명을 추천받아 이중 3곳과 함께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PartspARTs’의 임선옥, ‘NOHKE J’의 정미선, 그리고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다.


임선옥 디자이너는 “한복의 본질을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뼈대를 찾고 날 것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여분을 최소화하고 무채색으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네오프렌(Neoprene)이라는 소재에 집중하고 있는 임 디자이너는 봉제선 없이 접착으로 이음매를 처리할 수 있는 이 소재의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특히 병풍으로 그려져 궁궐 내 임금의 어좌 뒷편에 항상 놓여있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서 착안한 ‘오봉드레스’가 눈길을 끌었다. 해와 달, 다섯 산봉우리 그림을 진한 남색으로 간결하게 프린트했는데, 해와 달을 도자기로 표현한 것이 독특했다. 파티의 호스트가 입으면 대번에 눈길을 끌 정도였다.


임 디자이너는 “한복을 연구하다 보니 저고리는 스펜서 재킷과 비슷해 여러 스타일로 응용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치마속 속바지를 밖으로 끌어낸 듯, 치마 양 옆을 봉긋하게 처리한 치마도 특이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걸으면 항아리처럼 둥그런 스타일이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동정깃을 미니멀 양식의 액세서리처럼 장식한 것도 포인트였다.


정미선 디자이너는 “한국 여성은 예전에는 강인한 어머니상이었지만 이제는 여기에 여러가지가 덧붙여져 ‘한국적 우아함’으로 이해되고 있다”며 “그런 여성들이 입는 만큼 실용적인 면을 강화하기 위해 니트나 저지 소재를 중심으로 울이나 면 같은 모던한 소재를 섞었다”고 디자인 의도를 설명했다.


정 디자이너는 특히 여밈이라는 스타일을 통해 우아함을 강조했다. 자크도 거의 없이 필요한 부분만 살짝 물어주는 식이다. 또 고름의 역할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 가슴 가운데로 올리거나 소매 끝에 매달아 포인트를 주는 식으로 다채롭게 처리했다. 특히 실용적인 기본 니트 톱 형태에 살랑살랑한 오간자 적삼을 얹어낸 디자인은 상큼한 느낌을 더했다. 정 디자이너는 이번 전시의 화두를 ‘향’이라고 붙였는데, 이는 ‘좋은 냄새’이면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 입는 한복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옷 만들어]


코오롱의 5년차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가 기획한 전시는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아름지기는 옷장 속에 숨어있는, 안 입는 한복 기증 캠페인을 벌였고 코오롱은 폐기처분 직전의 재고분에서 질 좋은 원단 제품을 골라냈다. 이 두 가지가 1년여의 기간을 통해 서로 만나고 합쳐져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한복이 탄생했다. 옷 하나를 입더라도 환경을 생각하고 전통을 생각하자는 두 가지 컨셉트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다.


래코드는 출생-관례(성인식)-혼례-회갑례-상례-제례라는 6가지 의례에 맞춰, 한국인 삶과 함께 하는 한복이라는 컨셉트로 전시장을 꾸몄다. 코오롱 패션2본부 한경애 상무는 “이세이 미야케가 주름을 떠올리게 한다면 우리에게는 ‘누빔’ 기법이 있다”며 “이를 적절히 활용해 이번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점퍼를 이용한 아기 솜 저고리와 화이트 여성 블라우스로 만든 아기 솜 바지는 모두 누빔 기법을 적용했다. 자투리 원단과 부자재를 이용해 만든 아기 촉각책과 아기 모빌은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마고자가 블라우스가 됐고 남성 바지가 랩 스커트가 됐다. 남성용 재킷을 이용해 만든 여성 혼례용 원피스도 독특했는데, 한 상무는 “넥타이 심지로 만든 것”이라고 귀띔했다.


회갑례의 경우 전통적으로 따뜻한 옷을 만들어 부모님께 드렸던 만큼, 모피나 오리털 다운 점퍼 등의 소재를 최대한 활용했다. 정인기 작가는 남은 자투리 소재를 이용해 까치·도둑고양이 인형을 만들어 이상의 집 기와 지붕 위에 설치했는데, 이 역시 관람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이날 개막식에서 신연균 이사장은 “한복이 갖는 심미적 아름다움에 소재의 특정성을 더했다”며 “한복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와 국내에서는 물론 당당하게 세계 속을 걸을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고 기원했다.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아름지기·ⓒ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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