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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사극 보고 흥미 느꼈다면 어디까지 진짜인가 알아보세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사극과 실제 역사 - 최태성 역사 선생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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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한글 창제를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왼쪽)와 이순신의 생애를 그린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한 장면.

‘명량’, ‘육룡이 나르샤’, ‘암살’에 이어 ‘덕혜옹주’, ‘구르미 그린 달빛’, ‘달의 연인’ 등 역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릅니다.

학교서 역사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 5학년
세종대왕 만나러 영릉 놀러가고
드넓은 황룡사지에서 뛰노는 경험하는 게
연도 외우는 것보다 중요하답니다

하지만 큰 인기만큼 역사 왜곡에 대한 논란도 끊임없죠. 지난 10월 10일 이제 막 한국사를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소년중앙 학생기자들이 KBS 1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로 활동하는 최태성 역사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판타지 요소가 섞인 역사 드라마·영화를 어떻게 봐야할지 묻기 위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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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소년중앙 학생기자들(왼쪽부터 김송아린·윤현성·장현서·김성훈)과 최태성 선생님.

―(김송아린) 최근 한국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왜 중요한 건가요.

“한국사가 수능에서 필수 과목이 됐어요. 모든 학생이 한국사를 필수로 공부해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서 중요해진 부분이 있죠. 또 역사를 다루는 영화·드라마가 인기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교육 제도라는 측면과 문화현상이 결합되면서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진 것이죠. 제가 볼 때, 한국사에 대한 관심은 단군 이래 최고가 아닐까 싶어요(웃음).”

―(장현서) 왜 최근에 더 인기가 있나요.

“역사를 다루는 드라마·영화가 예전에 비해 많아졌고, 또 잘 만들어요. 단순히 과거 사실을 고증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감되는 캐릭터를 만들고 영화 기법을 사용해 배경을 멋지게 꾸며 재미있고 볼 만한 거죠. 또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에 관한 관심이에요. 우리에겐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가 있어요. 영화는 아팠던 역사 속에서 뭔가 해결하는 통쾌한 모습,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알려주죠. 그래서 큰 호응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윤현성) 임진왜란 드라마를 봤는데요. 해상 전투 중에 칼싸움이 많은데 정말 그렇게 칼싸움을 했는지, 또 어떻게 당시 전투 상황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옛날에 칼과 활은 무기의 기본이었어요. 그러니 전쟁 장면에 칼싸움이 많을 수밖에 없죠. 두 번째 질문의 답은 기록이에요.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를 통해 전투 상황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묘사했어요. 그래서 당시를 재현하는 영화·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죠.”

―(장현서) 저도 달의 연인을 보다 궁금한 점이 있었어요. 일체형 원피스 한복을 봤는데, 실제 그런 한복이 있었는지, 또 옛날 복장까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해요.

“그 드라마를 보지 못해서 뭐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일체형 원피스 한복은 저고리가 아닐까 싶어요. 긴 저고리를 끈으로 묶으면 원피스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일본·중국에는 일체형 원피스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어요. 전통적인 한복 양식은 기본적으로 위·아래가 구별된 옷이거든요. 만약 드라마에 그런 복장이 나왔다면 판타지적 요소를 보여주려고 그런 게 아닐까요. 또 앞서 설명한 대로 한복의 옛날 모습이 남아있는 이유는 우리 선조들이 기록을 많이 했기 때문이에요. 선조들은 행사 때마다 그 내용을 기록하는 의궤를 만들었어요. 의궤는 당시 행사에 사용했던 걸레 개수까지 적을 정도로 매우 상세했죠.”

―(윤현성)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후 조선 건국을 알렸을 때, 드라마에선 백성들이 환호하고 반기는데 정말 그랬을까 궁금합니다. 고려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

“오… 그렇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죠. 그런 측면에서 조선을 건국한 사람들이 승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할 수 있죠. 그런데 진짜 그랬을까, 그건 고민해봐야죠. 하지만 당시 이성계는 왜구와 북방민족의 침략을 막아내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요.”

―(김송아린) 역사 드라마·영화를 보는 것이 한국사 공부에 도움이 될까요.

“영화·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지나치게 고증을 강요하고 다르게 표현했다고 공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죠. 그러면 작가의 상상력은 갇혀버리고 역사를 다루는 영화·드라마들은 더 발전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작가의 상상이 더해져 재밌어진 드라마·영화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보면서 그 시대에 관심이 생기면 조금 더 사실에 근거한 자료를 찾아보면 되거든요. 하지만 인물 평가에 있어서 사실을 완전히 뒤집어 표현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만약 영화 ‘덕혜옹주’에서 덕혜옹주를 독립투사로 그렸다면 문제가 있죠. 왜곡이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독립투사로 그리진 않았어요. 시대의 비극 앞에서 힘없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그 정도면 문화예술 측면에서 얼마든지 묘사가 가능할 수 있다고 봐요. 어느 정도 선만 지킨다면 작가의 상상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재밌잖아요.”

―(김상훈)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진 않잖아요. 기록이 없더라도 작가는 사실에 가깝게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A라는 사실과 B라는 사실이 있는데, 이 사이에 기록이 없어 공백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 거죠? 그러면 A와 B 사이의 개연성을 찾아서 생각해봐야 하죠. ‘구르미 그린 달빛’ 원작 소설을 보면 효명세자(박보검 역)는 일찍 죽어요. 그건 역사적 사실이죠.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의 죽음을 홍라온(김유정 역)과 도망가는 것으로 이야기하죠. 죽음을 다시 환생을 시켜서 사랑이란 스토리로 연결 지어 끌고 가는 것. 이런 것이 작가의 상상이죠. 재밌지 않나요?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작가의 상상력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송아린) 5학년 2학기부터 한국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처음 한국사를 배우는 친구들이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추천하고 싶은 공부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제가 먼저 질문할게요. 김 기자님은 어느 부분이 그렇게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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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 선생님은 대광고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2002년 EBS에서 한국사 강의를 시작해 ‘큰별쌤’ ‘갓태성’이라고 불리며 수험생 언니·오빠에게 큰 인기죠. 최근에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패널로서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김송아린) 연도 외우는 게 어려워요.

“일단 기본적으로 연도를 다 외울 필요는 없어요. 기본적으로 수능 한국사는 쉽습니다. 문제를 하나 내볼게요.”

―(모두) 안 돼요! 제발요….

“맞힐 수 있어요. 몇 개월 전에 실제로 고3 형·누나들이 풀었던 문제예요. 다음 설명하는 전쟁을 맞혀보세요. 이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은 이순신·곽재우, 여러 의병들입니다. 이 전쟁에선 조·명 연합군에 의해 왜군이 격퇴됐죠. 이 전쟁은 무엇일까요? 아직 말하지 말아요. 객관식이에요. 1번 임진왜란, 2번 병자호란, 3번 청일전쟁, 4번 러일전쟁, 5번 만주사변, 정답은 몇 번인가요?”

―(모두) 1번! 1번이요!

“전부 다 1번이라고 하셨네요. 정답은 당연히 1번. 고3 문제지만 초등학생인 여러분도 풀었죠. 이런 문제에 연도를 외울 필요는 없어요. 사건의 흐름만 알면 돼요. 단, 사건의 흐름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요. 어떤 이유에 의해 어떤 일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다음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인과관계를 가지고 흐름을 쭉 따라오면 되는 거죠. 또, 처음 역사를 접하는 여러분에게 추천할 만한 방법이 있어요. 유적지에 자주 놀러 갔으면 좋겠어요. 역사 현장에 관한 기억을 가져가는 것이죠. 공부 말고, 암기 말고, 초등학생들은 현장에 가서 뛰어 노세요. 그럼 돼요. ‘옛날에 거기 다녀왔는데’라는 기억이 중요 포인트거든요. 그런 경험이 나중에 역사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돼요. 기자님들께 질문 하나 드릴게요. 최근 다녀온 유적지가 있나요?”

―(김성훈)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왔어요.

“무엇을 느꼈나요?”

―(김성훈)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바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역사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에요. 좋잖아요. 다음 기자님은 어디 다녀오셨나요?”

―(장현서) 국립중앙박물관과 경주요.

“경주에서 뭘 느꼈어요?”

―(장현서) 혼을 느꼈어요. 황룡사지에서 막 뛰어 놀았거든요.

“오~. 혼이라 멋지네요. 어때요, 넓던가요?”

―(장현서) 네. 엄청 넓어요.

“내가 황룡사지에 갔는데 아주 넓더라. 바로 그 기억, 그 경험이 나중에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그림을 그려가며 역사를 공부할 수 있죠. 다음 기자님은 어디에 갔었나요?”

―(윤현성) 조선왕릉이요.

“느낌이 어떻던가요?”

―(윤현성) 크고 웅장했어요.

“그렇죠? 세종대왕이 계신 릉은 영릉인데, 우리가 그곳에 있다고 생각해 봐요. 책에서 만났던 세종대왕이 내 앞에 누워계신다고 생각하면 너무 놀랍지 않나요? 이처럼 유적지에 가서 그 시대 사람들을 직접 느껴보는 것이 중요해요. 부모님은 유적지를 가면 뭘 알려줘야겠다는 의무감이 있으세요. 그건 욕심이고. 그냥 황룡사지에 갔더니 넓더라, 서대문 갔더니 굉장히 가슴이 아프더라.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충분해요. 즐기세요.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좋은 방법이에요.”

―(김성훈) 마지막으로 소중 독자들에게 하실 말씀 있으시다면.

“역사란 과거의 사실을 외우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사실을 알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유적지에 갈 때, 그 시대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 늘 고민하시길 바랍니다.”

진행·정리=황정옥 기자, 황인철 인턴기자 ok76@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sangjo.woo@joongang.co.kr, 글·취재=김송아린(서울 돈암초 5)·김성훈(서울 충암초 5)·윤현성(고양 정발초 5)·장현서(서울 잠일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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