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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과 여체로 한국미추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창조,「민족화가」란 이름이 붙었던 최영임화백의 1주기추모전이 11월4일부터 15일까지 서울관훈동 나화랑에서 열린다.
이번 추모전은 최화백의 작품 변화과정을 한눈에 볼수있게 대작중심으로 30여점을 골라 내놓는다.
최화백은 1950년에 월남, 피란지 부산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부산시절의 그의 작품은 생활의 밑바닥에서 생존에 허덕이고 고난에 찬 시기여서 인지 작품의 표정도 어두웠다.
이 시대 그는 흑색을 바탕으로한 유동적인 공간에서 야수파적인 격정을 그려냈다.
최화백이 한국화단에 처음 등단했을때는 물질적 궁핍때문에 우선 나무와 종이와 먹만 있으면 제작이 가능한 목판화부터 손댔다. 일본유학시절 판화계 거성「무나가다·시코」에게 배운 밀교적이 교육감적인 판화솜씨를 유감없이 발휘, 한국판화계외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최화백은 60년대부터 부산시절의·흑색세계를 벗어나 토속적인 황갈색으로 변모했다. 그가 한국적인것에 충실하려고 할때 가장 먼저 만난것이 바로 토속적인 황토였다.
이런 바탕위에서 최화백은 두가지 작품성격을 만들어 냈다.
하나는 한국의 민간신앙이된 토속종교, 즉 샤머니즘적인 성격의 정착과 또 하나는 그의 예술의 본질이된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 내감세계의 긍정이었다.
여체를 극대화하고 감각적인 표현으로 「왜곡」 시키면서 독특한 관능의 세계로 끌어들인것도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또하나의 마력이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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