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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고배 마신 후보들의 이색 '낙선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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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 미국의 뮤지션 밥 딜런에게 돌아가자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됐던 작가들의 트윗은 각양각색의 반응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루키는 '초연', 루시디·캐럴 오츠는 '옹호'
어빈 웰시 "음악과 문학 다르다" 맹비난
스웨덴 한림원, '귀를 위한 시' 의미 부여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에 대해 작가들은 저마다 문학적 소양을 한껏 발휘한 트윗으로 옹호하거나 비난했다.

우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반응은 '초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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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됐던 3명의 작가들. 왼쪽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어빈 웰시, 살만 루시디.

하루키는 수상자 발표 직후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노르웨이의 숲'의 한 구절을 올렸다.

"자신을 동정하지마. 그건 질이 좋지 않은 놈들이나 하는 일이야"라는 구절이다.

노벨상 수상에 연연해하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하루키에 대한 헌정 트위터인 '하루키 에세이'에 올라온 글들은 이런 하루키의 심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대변한다.

하루키 에세이 트윗은 공식 계정은 아니지만 평소 하루키의 수필과 소고(小考)들을 꾸준히 올린다. 노벨상 발표를 전후해 이 트윗에 올라온 하루키의 짧은 에세이들은 하루키가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한 구절과 맞물려 그의 심경을 엿볼 수 있는 힌트를 준다.

이 계정에 수상자 발표 직후 올라온 트윗에는 "참된 작가에게는 문학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주 많다"고 운을 뗐다. "하나는 자신이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실감이고, 또 하나는 그 의미를 정당하게 평가해주는 독자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실감"이라고 풀었다.

자신을 동정하지 마. 그건 질 나쁜 놈들이나 하는 거야" (하루키)

"그 두 가지 확실한 실감만 있다면 작가에게 상이라는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것"이라고 했다. 문학상이란 게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혹은 문단적인 형식상의 추인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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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뮤지션 밥 딜런.

음악과 시는 매우 가까이 연결돼 있다" (살만 루시디)

인도 출신의 영국 소설가 살만 루시디는 밥 딜런을 "음유시인 전통의 뛰어난 후계자"라고 극찬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오르페우스(그리스 신화의 음유시인)부터 파이즈(파키스탄 가수)까지 음악과 시는 매우 가까이 연결돼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밥 딜런 음악의 시적 표현(가사)을 문학의 전통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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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풍미한 밥 딜런의 대표 앨범들. 위줄 왼쪽부터 The Freewheelin` (1963), Times They`re A-Changin`(1964) Bringin` All Back Home(1965). 아랫줄 왼쪽부터 Highway 61 Revisited(1965), Blonde on Blonde(1966) , Nashville Skyline (1969).

딜런의 음악은 '문학적'" (조이스 캐럴 오츠)

미국의 여성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생각도 루시디와 다르지 않다. 캐럴 오츠는 수상자 발표 직후 올린 트윗을 통해 "딜런의 음악은 아주 깊은 의미에서 '문학적'이었다"고 밥 딜런을 옹호했다.

그러나 이번 수상 결과를 맹비난한 이도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 소설가 어빈 웰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어빈 웰시는 밥 딜런의 수상 소식에 화를 버럭 내며 비난했다고 한다.

그의 트윗 글은 매우 '문학적'이고 심오하다.

썩은 내 나는 '노스탤지어 상'…사전 펴서 '음악'과 '문학' 비교해 보라" (어빈 웰시)

웰시는 "나는 딜런 팬이지만, 이것은 노쇠하고 영문 모를 말을 지껄이는 히피의 썩은 내 나는 전립선에서 짜낸 노스탤지어 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음악 팬이라면 사전을 펴놓고 '음악'과 '문학'을 차례로 찾아서 비교하고 대조해 보라"고도 했다.

웰시의 서운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구분 지으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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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보컬그룹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그룹 이름을 웰시의 소설(Ecstasy: Three Tales of Chemical Romance)에서 따왔다. 웰시의 작품이 그들에게 음악적 영감을 불어넣었지만 웰시가 이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거나 경계를 그은 적은 없었다.

한편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을 수상자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위대한 미국 노래 전통 내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며 밥 딜런의 노래를 "귀를 위한 시"라고 평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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