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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로 용감하게 간다고 노벨상 받고 취직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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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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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사회1부 기자

올해도 과학 부문 노벨상 주인공은 우리가 아닌 일본이었다. 자가포식(생물이 세포에 쌓인 불필요한 물질을 분해해 재이용하는 현상) 연구에 천착한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가 3일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국내 언론은 부러움과 탄식을 쏟아냈다.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즐겁다.” 수많은 기사를 읽다 눈에 들어온 오스미 교수의 말이다.

문과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한국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는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됐다. 취직 잘되고 대학 입시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부터 이과 선택이 급증한다. 서울 강남구 모 고교는 전교 등수 상위 100명 중 87명이 이과를 택했다고 한다. 수학·과학이 두렵고, 이공계는 출세가 어려웠던 분위기 탓에 문과를 택했던 학생들이 공대·의대생이 되겠다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이들이 크면 우리도 ‘제2의 오스미’를 배출할 수 있을까. 사립대 공대생인 사촌동생은 요즘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주변에 5급, 7급 준비하는 친구가 태반이다. 연구실에 남고 싶어도 월급이 적은 데다 교수들 ‘갑질’도 심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기업 입사도 녹록지 않다. 석사생이 자기소개서에 최종 학력을 학사로 낮춰 쓴다고도 했다. 석사 출신에겐 월급을 더 줘야 하는 회사 측 부담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다.

수의대를 졸업한 친동생도 정부 부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로 향했던 진로는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급선회했다. ‘면허’를 받는 전문직을 포기한 이유는 안정된 미래였다. 동생 친구들도 불안감 때문에 행정고시, 입법고시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동생은 “문과가 망한다고 겁주면서 억지로 이공계로 내모는 대신 확실한 당근을 약속하고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문과를 나오든 이과를 나오든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다. ‘문과→공무원’ 공식이 ‘문·이과→공무원’으로 살짝 바뀌었을 뿐이다. 정부도 다를 바 없다. 12일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최하등급 평가를 받으면 기관장 성과연봉이 ‘0’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원하는 실적이 안 나오면 위부터 책임을 묻겠다는 일종의 ‘경고장’. 공대 석사 출신인 친구는 “정부부터 기간 내 성과를 내라고 쪼아대는데 백년지대계가 있겠느냐”고 푸념했다.

지난해 청년 실업과 관련해 ‘중동으로 가보라’는 대통령 발언으로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요즘 ‘이과로 가보라’는 말도 비슷하게 쓰인다. 문과생이 이과로 가는 용기만 있으면 노벨상이든 취직이든 해결될 수 있을까. 문과 형에게 이과 동생이 카톡을 보냈다. “뭘 하든 먹고살긴 똑같이 어려워.”

정종훈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