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10월에만 문 엽니다 ‘비밀의 황금 숲’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 반짝 공개 단풍 비경 6선

기사 이미지

유난히 덥고 길었던 여름 탓에 단풍도 늦어졌다. 강원도 산골도 이제야 알록달록 물들고 있다. 강원도 홍천 은행나무숲을 찾았다. 10월 한 달만 공개되는 시한부 가을 비경이다. 은행나무숲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안호균·박도영씨의 모습은 지난 4일 촬영했다.

서울 사람 유기춘(73)은 1985년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를 찾았다. 광원리에 있는 한국 3대 약수 삼봉약수가 위장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유씨의 아내는 오랜 세월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 부부는 광원리에 정착했고 약 5만㎡에 달하는 밭에 은행나무 묘목 2000여 수를 심었다.

세월이 흘렀다. 아내의 병은 나았고 은행나무는 훌쩍 커버렸다. 수확이 신통치 않았지만 은행나무는 가을마다 황금빛 풍광으로 부부를 위로했다. 2010년 부부는 결심했다. 10월 한 달만 은행나무숲 문을 열기로 한 것이다. 유씨의 집 앞마당이 홍천, 아니 한국의 가을을 대표하는 진풍경으로 자리 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관련 기사

전국에는 유씨의 은행나무숲처럼 가을에만 반짝 공개되는 단풍 비경이 곳곳에 있다. 이른바 시한부 단풍 비경이다. 이들 비경 중에서 week&이 6곳을 엄선했다. 자연이 주는 위안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리게 하자는 마음이 느껴지는 6곳이다.

세종시에 있는 베어트리파크는 2009년 개장한 젊은 수목원이다. 이 수목원에 안내 지도에도 없는 비밀의 길이 있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 2㎞ 길이의 작업로이지만 가을에는 ‘단풍낙엽 산책길’로 변신한다. 올해는 오는 15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20일간 개방한다. 베어트리파크 이재연(85) 회장은 “수목원을 조성하기 전부터 은행나무·느티나무가 우거졌던 곳이어서 그대로 남겨놓았고 단풍이 좋아 개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경북 청도 호거산 운문사에는 늙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산다. 수령 450년이 넘는 은행나무는 사찰의 가장 깊숙한 운문승가대학 마당 한가운데 있다. 스님의 수행공간이어서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이 신성한 수행공간이 가을에만 문을 연다. 은행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날을 골라서다. 지난해엔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 개방했고, 올해도 단풍이 절정을 이룰 주말을 골라 개방할 예정이다. 2005년 청도군이 은행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하자 운문사가 은행나무 공개행사를 시작했다. 불법을 설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행나무를 보고 중생이 힘을 얻었으면 하는 취지에서였다. 주지 진광스님의 설명이다.

“운문사는 비구니 사찰이고 승가대학을 운영하다 보니 대중과 접점이 적은 게 사실입니다. 템플스테이도 안 하고 있지요. 그래서 은행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저희에게도 더없이 소중한 날이지요.”

기사 이미지

설악산 망경대에서 바라본 만물상.

올 가을 전국 산꾼의 이목이 설악산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 1일 남설악의 망경대가 46년 만에 개방됐기 때문이다. 망경대(望景臺)는 ‘1만 가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에서 만경대(萬景臺)라 불리기도 하지만, 설악산 국립공원은 내설악과 외설악에도 있는 만경대와 구별하기 위해 망경대라 이름 붙였다. 망경대 개방과 관련해 아직 많은 산꾼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망경대 구간은 다음달 15일까지만 열린다. 설악산 국립공원 측은 내년에도 개방할지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번 가을이 망경대의 절경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계절일 수 있다는 뜻이다.

단풍에는 애초에 시한부라는 조건이 있다. 가을이 와야 단풍이 들고 가을이 가면 단풍도 지난다. 우리가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달포 정도다. 가을만 오면 수많은 사람이 단풍을 찾아 떠나는 이유도 아무 때나 단풍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가을은 언제나 짧고 우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홍천 은행나무숲 유기춘씨의 말을 전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 누린다고 12월까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울 때 나누어야죠.”

글=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