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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 향 솔솔~ 맛있는 ‘히말라야 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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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구 창신동 네팔·인도 음식점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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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힌두·불교 소품들로 꾸며져 있어 현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네팔·인도 음식점 ‘에베레스트’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로 나가면 서너 집 걸러 하나꼴로 낯선 꼬부랑 글씨 간판이 눈에 띈다. 힌두어·산스크리트어 등을 표기하는 데바나갈리 문자다. 여기서 창신 골목시장 방향으로 더 꺾어 들어가면 ‘낭로’ ‘데우랄리’ ‘에베레스트’라고 영어·한글이 병기된 식당 간판이 연이어 나온다. ‘데우랄리’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거점인 해발 3000m 산간마을 이름이고, ‘낭로’는 산골에서 짐 운반 때 쓰는 대나무 바구니를 뜻한다. 모두 네팔인이 운영하는 ‘네팔·인도 음식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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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라도 여행 온 듯한 기분이 드는 이 거리는 행정구역상 종로구 창신동이다. 포털의 지도에는 ‘네팔 음식거리’라고 표기돼 있다. 이곳부터 동묘앞 역까지 약 1㎞ 길이에 네팔·인도 레스토랑이 줄잡아 15곳에 이른다. 대부분 건물 2·3층에 있다.

이 가운데 터주대감 격인 ‘에베레스트’의 털커만 구룽(41) 사장은 칸첸중가 출신으로 카트만두에서 한국 업체를 상대로 산악 장비 무역을 했다. 자연스레 엄홍길·오은선 등 산악인과 친해지면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게 됐다. 1999년 한국 무역운송업체에 취직해 취업비자로 서울에 정착, 네팔인 아내도 데려왔고 2002년 지금의 레스토랑을 열면서 투자비자로 바꿔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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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의 대표 메뉴인 치킨 머커니(커리의 일종)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커리란 걸 몰랐어요. 다들 ‘3분 카레’만 알았어요. 메뉴 설명에만 30분씩 걸렸어요. 강남사람들은 좀더 일찍 알았겠지만 강북만 해도 이 무렵에서야 겨우 ‘강가’(무교동 파이낸스센터) 같은 인도 음식점이 처음 생겼거든요. ‘강가’나 지금은 없어진 아트선재센터 ‘달’같은 식당보다 값은 싸고 현지 분위기는 더 난다며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보증금 2500만원에 월세 130만원으로 시작한 식당은 14년이 지난 현재 보증금 1억원에 월세 300만원을 낼 정도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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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창신동 ‘네팔 음식 거리’에선 네팔어로 표기된 간판을 흔히 만나볼 수 있다.

평일 손님은 90%가 한국인이다. 이 근처 직장인·상인 뿐 아니라 네팔 현지식을 맛보러 일부러 찾아오는 미식가까지 다양하다. 휴일엔 주로 네팔·인도인이 좌석을 메운다. 인천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네팔 포카라 출신 어르준(28)은 “안산이나 가리봉동 등에 흩어져 일하는 친구들과 주말에 만나 고향 음식 먹는 게 낙”이라고 말했다. 색색의 전통의상을 입은채 가족 단위로 찾는 이들도 많은데, 식사 후엔 근처 ‘수베치아 마트’ 등 네팔 잡화점에서 일용품을 사서 귀가한다. 인근에 ‘히말라야’ 등 네팔인이 경영하는 여행사도 있다.

초기엔 외국인, 요즘은 한국인 손님 많아

이 일대의 네팔 식당 1호점은 동묘앞 역 쪽 ‘나마스테’다. 현재는 한국인으로 귀화한 민성욱씨(본명 나주쿠마르 보가티)가 2000년 한국인 아내와 함께 열었다. 이 일대가 평화시장 등 재래시장 뿐 아니라 밀리오레(97년 개장)·두타(99년 개장) 등 대형 의류쇼핑몰과 인접해서 외국 바이어들이 자주 찾던 때다. 민씨는 한국을 오가며 원단 무역을 하던 삼촌 일을 돕다가 99년에 지금의 한국인 아내를 만났다. ‘나마스테’ 사업자 등록은 아내 이름으로 했고, 그 자신은 2006년 한국 국적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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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사(튀김만두)

“인도 바이어 중에는 채식주의자가 많아서 기름진 한국 음식을 입에 안 맞아 하는 사람이 많은데, 동대문 쪽엔 먹을 데가 없었거든요. 사람들이 네팔음식은 잘 모르니까 ‘힌두·인도’를 앞세웠죠.”

주방과 홀 인력은 네팔 사람을 고용했고,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은 시간제로 썼다. 주 고객은 한국에 파견나온 각국의 주재원이나 영어 강사 등 외국인이었다. 이들이 데려온 한국 손님들도 곧 단골이 됐다. 인근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는 잠재 고객이었다. 이들은 이곳에 매일 드나들 형편은 못돼도 가끔씩 주말이나 명절에 찾아오곤 했고 공장이 서울 외곽으로 이전한 이후에는 주말 나들이로 동대문을 찾곤 한다. 민 사장은 “식당 한 두 곳이 잘 되니까 2005년 전후로 여러 곳이 생겼다”며 “지금은 외국인 손님보다 블로그나 맛집 프로그램 보고 찾아오는 한국인 손님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개업 초기엔 향신료 등 식자재를 구하기가 마땅치 않아 네팔에서 직접 보따리로 가져왔다. 현재는 국내 도매 유통상을 통해 수급하는데 주로 인도 수입산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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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전통 가정식 ‘달 밧 탈커리’. 수프와 쌀밥, 각종 커리가 한 쟁반에 담겨나온다.

실제로 메뉴판을 보면 인도 음식점과 큰 차이가 없다. 난·커리·탄두리·라씨 등 비교적 익숙한 메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커민·강황·고수 등 향신료와 생강·마늘을 많이 쓰는 것도 비슷하다. 정통 네팔음식으로는 ‘달 밧 탈카리(dal, bhat, tarkari)’가 대표적이다. ‘달’은 녹두(혹은 렌틸콩)와 향신료를 섞은 수프이고, ‘밧’은 쌀밥, 탈카리는 ‘반찬’이다. 탈카리는 커리가 기본인데, 치킨·야채 등 재료에 따라 수천 가지로 변주된다. 네팔인들은 널찍한 쟁반에 달·밧·탈카리를 한데 담아서 손으로 섞어 먹지만, 한국의 네팔음식점에선 수저를 제공한다.

‘에베레스트’의 구룽 사장은 “네팔이 티베트와 인도 사이에 위치해 있고 힌두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국가라 음식문화도 양쪽 모두에서 영향을 받았다”며 “네팔 북부 음식은 티베트 남부와 비슷하고, 남부는 인도 북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인도 남부가 고온다습 기후에서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칼칼한 매운 고추를 많이 쓰고 국물 음식이 발달한 반면, 북부는 산악지대 특성상 난방과 요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탄두리’ 등의 메뉴가 일반적이다. 음식도 상대적으로 건조한 편이고 매운 것도 덜하다.

강지영 세계음식문화연구가는 “인도 북부와 맞닿은 네팔은 상대적으로 기름기가 적고 향신료가 순한 편”이라며 “양이나 염소로부터 얻은 유제품 등이 발달했고 감자 등 뿌리식물 활용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젊은 층 입소문 나며 대형 쇼핑몰에도 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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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민성욱(귀화 한국인·왼쪽) 대표와 ‘에베레스트’ 탈커만 구룽대표.

한국에 거주하는 네팔인은 현재 3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2010년엔 9000명에 불과했지만 취업비자 완화 등의 정책으로 5년 새 200% 이상 늘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전체 숫자는 136만명으로 총 인구의 2.7%를 차지한다. 2010년 96만명에서 41.6%나 뛰었다(통계청 ‘2015 인구주택총조사’). 길거리에서 네팔·인도 음식점이나 베트남·태국 쌀국수집을 흔히 볼 수 있게 된 데는 이 같은 인구 변화도 한몫한다.

네팔 음식점들 역시 이 같은 변화와 함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나마스테’는 한양대와 용인에 각각 지점이 있고 부산에서도 해운대점·마린시티점·신세계센텀점 등 3곳을 운영 중이다. ‘에베레스트’는 영등포·동대문 굿모닝시티·의정부역점 등 5개 지점을 운영해 오다가 지난달 문 연 하남 스타필드에 입성했다. 하남점은 총 363㎡(110평) 규모에 200석을 갖췄고 네팔인 주방인력 외에 한국인 홀 직원 7명을 두고 있다.

구릉 사장은 “네팔 현지 분위기를 내려고 각종 불상과 조각 등을 들여오는 데만 1억 5000만원이나 썼다”고 말했다. 입점 과정을 담당한 신세계 프러퍼티 임선미 부장은 “예전 같으면 한식·중식·양식 등으로 나눴겠지만 요즘은 ‘아시안 음식점’이 필수일 정도로 한국의 식문화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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