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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접시마다 흐르는 미각의 절창…광화문에 판 벌린 박찬일의 ‘몽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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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몽로’ 개업 날인 9월19일, 요즘 몸이 열이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는 이연복 사부가 축하하러 왔다. 주방을 둘러보고 완성된 음식이 나오는 창구 앞에서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음식 주문표를 손에 쥔 장신의 박찬일씨가 키를 살짝 낮췄다. 형제처럼 가까운 두 사람인데, 아우가 형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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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과정이 참으로 힘들고 더뎠다. 글이든, 음식이든 나보다 훨씬 고수에 대한 얘기를 하자니 머리도 손가락도 굳어버렸다. 그는 당대의 명인이고, 나는 남보다 경험이 조금 많은 구경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여전히 ‘부장’이라고 부른다. 부장이면 얼마나 좋을까. 일할 수 있는 날이 제법 남았다는 뜻이니 말이다. 젊어지는 느낌이어서 그 호칭이 좋다. 내가 부장으로 불리던 시기는 2006년 1월 20일부터 5년 10개월 동안이다. 부장 마지막 직책인 중앙일보 People·week&(레저·트렌드 섹션) 데스크를 맡고 있던 2011년, 그는 우리 지면에 칼럼을 연재했다. 그때 인연으로 ‘부장의 젊음’을 변함없이 누리고 있다. 호칭 하나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그에게서 나는 ‘선비’를 느낀다.

한때 문청(문학청년)이자 잘 나가는 잡지사 기자였고, 지금은 최고의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가장 창조적인 요리사라는 평을 듣는 박찬일(51)씨. 그는 단어의 정의에 대해 대단히 엄정하다. 플로베르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의 실천가를 자임한 듯하다. 그 덕에 그를 이해하기 쉬울 때도 있다. 핵심어 몇 개를 따라가면 뭔가 윤곽이 보인다. 그가 거부하는 ‘셰프’라는 말, 현재 운영하는 음식점 ‘무국적 술집 로칸다 몽로’. 이게 우선 잡히는 핵심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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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주방 한가운데 선 ‘주방장’ 박찬일. 그는 요리사 모자인 토크(Toque) 대신 헌팅캡을 작업모자로 쓴다. 주방의 다른 직원들도 모두 헌팅캡을 착용했다.

그가 지난달 19일 ‘광화문 몽로’(서울 중구 세종대로21길 40 TV조선 빌딩 1층/전화 02-722-8767)를 개업했다. 매장은 280㎡(85평)에 바·테이블·별실·데크까지 모두 100석을 갖춘 대규모다. 서교동 ‘로칸다 몽로’(서울 마포구 잔다리로7길 18 문학과지성사 지하 1층/전화 02-3144-8767)가 약 40석인데 비하면 엄청 크다. 다루는 음식도 50가지쯤 된다. 실내에는 1960~80년대 대중가요가 그들 시대의 암울과 고난을 호소하듯 흐른다. 서교동과 다르게 점심에도 문을 연다. ‘박찬일’ 이름이 연상시키는 ‘전통에 기초한 새로운 파스타’로 점심식사를 할 수 있으니 희소식이다.

업종이 술집인 만큼 술 선택의 폭은 넓다. 국산 증류주(문배술·화요)부터 수입맥주까지, 와인도 3만9000원부터 50여 종이 준비돼있다. 와인 값은 비교적 싼 편이다. 직원은 12명(주방 7, 홀 5). 투자회사를 경영하는 고교동기 ‘절친’과 손을 잡고 큰 판을 벌렸다.

“직원이 12명이나 되니 이제 셰프라고 불러도 되는 겁니까”라고 물으며 말문을 열었다. 언젠가 ‘셰프’ 호칭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그가 시니컬하게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방에 사람도 몇 안 되는데 셰프는 무슨... 실력도 안 되고요.” 세상은 그를 실력 있는 셰프로 알고 있고 애호가들은 ‘셰프들의 셰프’라는 찬사까지 바쳤지만 정작 당사자는 ‘셰프’라는 호칭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유가 분명하다. 그래서 이 글도 그의 직함 없이 흘러가고 있다.

영어 Chef를 옥스퍼드 사전은 Cook과 같은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A chef is a cook in a restaurant or hotel). 1930년대까지 영국 사전에 이 말은 외래어로 올라 있었다. 프랑스에서 건너간 말이기 때문이다. 라틴어 caput(머리)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Chef는 고대에는 신체의 일부로서 ‘머리’를 뜻했다. 1300년대 영국으로 건너가 Chief(우두머리)로 귀화했고, 1800년대에 다시 도버해협을 건너면서 ‘부엌의 우두머리’라는 단어가 됐다. 프랑스에서 주방의 우두머리, 즉 주방장을 ‘Chef de cuisine’이라 불렀는데, 영국으로 가면서 거두절미하고 Chef 하나로 경력과 실력을 갖춘 요리사, 주방장을 일컫는 말이 된 것이다. 프랑스어 Chef는 요리와는 상관없이 상사, 우두머리, 단체의 최고위자를 뜻할 뿐이다(‘한국번역연구소’ 공식 블로그 참조). 다시 미국에 가서 팀이 아닌 1인 주방의 요리사도 일컫는 말로 바뀌었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셰프=요리사’로 굳어졌다. 어원을 따져보면 흔히 쓰는 헤드 셰프(head chef)라는 말은 웃음이 나오는 조어(造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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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식 닭튀김

박찬일씨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세프라는 호칭을 거부하는 맥락은 ‘용어 인플레이션’에 따른 허명(虛名)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 겁니다. 셰프다운가, 종사자들이 그 말의 원래 뜻에 맞게 하고 있는가, 과연 그 이름이 온당한가, 상기시켜보는 겁니다. 직무와 직책을 구분 못하는 혼돈을 지적하는 겁니다. 미국식 몰가치와 일방적 일반화가 싫습니다. 유럽에서 체계화된 주방 시스템과 문화가 미국 실용주의에 의해 변질, 왜곡됐습니다. 또 완전한 우리말은 아니지만 ‘셰프’와 뜻도 같고 오래 써서 익숙한 ‘주방장’이라는 말이 있는데 굳이 셰프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요즘처럼 셰프라는 호칭을 쓴다면 전문성 갖고 오래 한 길거리 떡볶이 할머니도 셰프고, 김밥 20년 만 아주머니도 셰프 아니겠습니까. 셰프보다는 주방장이 더 맞다고 봅니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그가 내세운 말 속에서 그의 생각을 읽으면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매장 간판은 ‘무국적 술집 몽로’를 공동으로 쓰고 서교동은 ‘로칸다 몽로’, 광화문은 ‘광화문 몽로’라는 대표 상호를 내걸었다.

‘무국적 술집’은 술 좋아하는 요리사로서 그가 여태 해오던 음식점이 아니라 술과 안주가 중심인 주점을 열었다고 선언한 매장 독트린(doctrine)이다. 이탈리아 요리사로 알려진 명성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박찬일답게 국적을 넘어 새로운 음식, 창의적인 요리를 해보겠다는 회심의 한 마디이다. 술도 종류나 생산지 제한 없이 구비하겠다는 개방성을 담았다.

로칸다(Locanda)는 포르투갈어 사전을 보면 ‘작은 요리점, 값싼 식당, 선술집’이라고 설명한다. 이탈리아어 사전을 찾으면 ‘여인숙, 여관’이다. 박찬일씨 설명에 따르면, 현대 이탈리아에서는 ‘가족끼리 운영하는 지역의 작은 식당’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탈리아 로칸다, 그의 겸손이 녹아 든 업(業)의 좌표다.

‘몽로’는 그가 좋아하는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에서 ‘목로’를 따와 소리 나는 대로 읽어서 만든 상호(商號)이다. 목로(기사 이미지)는 술잔을 놓기 위해 판자로 길게 만든 상을 말한다. 그런 상에서 술을 파는 집이 목로주점이다. 당초 한자로 꿈 몽(夢), 이슬 로(露)라고 정하고 네온사인 제작을 맡겼는데, 이슬 로(露) 한자의 획이 많아 그랬는지 길 로(路) 자로 만들어 왔더란다. 운명이라 여기고 꿈길이라는 뜻의 ‘몽로(夢路)’라고 바꿨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일 때 페이스북에 올라온 소식을 보고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로 시작하는 황진이의 시를 떠올렸는데 빗나가고 말았다. 그래도 몽로에 갈 때면 나는 황진이가 쓴 한시 ‘상사몽(想思夢)’을 소월의 스승인 안서 김억이 번역해 김성태가 곡을 붙인 가곡 ‘꿈’을 흥얼거린다.

그의 음식은 깎은 밤톨처럼 단아하고 맛있다. 일각에선 값에 비해 양이 적다는 불만의 소리도 나온다. 양이 적다는 말은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서양음식의 특성상 국물 없고, 반찬도 없다 보니 한식에 비해 포만감이 덜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가는 길에 노점에서 어묵꼬치 두어 개 먹고 가라’고 권한다. 값 문제도 그렇다. 식재료에 ‘까다로운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그의 음식 원가를 따져보면 한 접시에 2만원 대가 주류인 안주 값이 그렇게 비싼 게 아니다. 식당이 아닌 ‘술집’임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접근성 좋은 시내 요지에서 좋은 재료로 맛있게 만든 음식을 싸게 팔길 바라는 건 요리하는 사람에겐 가혹한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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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볼살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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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챠(직접 만든 이태리식 생 소시지와 5곡 샐러드, 요거트 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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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과 소힘줄(스지)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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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에 구운 립아이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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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란 스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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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토마토 스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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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 소시지를 올린 꽈란타 스파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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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돼지등심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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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염명란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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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라(절인 대구 살을 발라 감자와 함께 으깬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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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코 하몽과 감자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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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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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샐러드

그는 1999년부터 3년간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와인 공부를 했다. 피에몬테에 있는 요리학교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의 ‘요리와 양조’ 과정을 수학하고, 로마의 소믈리에 코스와 슬로푸드 로마지부 와인과정에서 공부했다. 이탈리아 음식과 술을 제대로 공부한 셈이다. 그 후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가 2002년 귀국해 한국산 식재료로 만드는 이탈리아 요리로 바람을 일으켰다. 수입품보다 신선한 한국 재료로 만든 서양요리는 금세 화제가 됐다. 음식 이름은 주재료·산지를 함께 넣어 지었다. 동해안·남원·지리산·제주도 ··· OOO 어머니가 담근 김치까지. 이런 스타일의 이름은 이후 많은 사람들이 따라 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박찬일식 닭튀김’(2만3000원)이다. 개업 날에는 오후 7시40분쯤 재료가 동났다. 주방장은 그들의 언어로 ‘더 이상 주문을 받지 말라’는 지령을 내렸다. 음식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넣을 만큼 애정과 자신감이 뭉쳐진 음식이다.

닭다리 살에 밑간을 하고 반죽에 버무린 다음 라이스페이퍼로 감싸서 튀긴다. 겉은 바삭하다. ‘바삭’이 아니고 첫 입에 ‘바사삭’ 소리가 들린다. 속은 고기즙이 뚝뚝 들을 정도로 윤기가 넘친다. 풍부한 고기 맛과 바삭함이 씹어서 삼킬 때까지 입 안에 회오리친다. 쌀가루로 만든 ‘페이퍼’로 감싸 튀기기 때문에 닭고기 즙을 가두면서 튀김 전체에 바삭함을 입혀 그런 맛의 조화가 구축됐다. 감싸고 남은 라이스페이퍼 자투리 부분은 튀길 때 하얗게 부풀어 백합꽃잎 같기도 하고 천사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식을 하지 않아도 접시가 화사하다. 요기도 되고 안주로도 훌륭해 닭튀김으로 빈 속을 약간 채우고 술자리를 이어가면 안주 값 부담을 덜어주는 고마운 메뉴다. 안주용이어서 간은 약간 센 편이다.
[※라이스페이퍼(Rice Paper)의 사전 풀이는 ‘권련·사전 등을 만드는 얇은 고급지’이다. 근래 한국에서는 베트남 음식에 쓰는 반짱(bánh tráng)을 라이스페이퍼라고 부른다. ‘쌀종이’라고 직역해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이 말이 외려 낯설다. 쌀가루로 묽은 풀을 쑤어 종이처럼 얇게 펴 말린 것이다. 이 ‘라이스페이퍼’는 사전에 올라있지 않다. 대안이 없어 관습적 쓰임대로 ‘라이스페이퍼’라고 쓴다.]

개업 날 저녁에 찾아가니 중화요리 대가인 진진의 왕육성(62), 목란의 이연복(57) 사부가 보낸 축하 화분이 입구에서 반겼다. 박찬일을 친동생처럼 아끼는 두 사람이 아우의 번창을 축하하고 또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보냈을 테지만 정작 아우의 반응은 딴판이다. “아아~ 이 영감들 참, 구식이야, 구식. 남사스럽게 저런 화분을 다 보내고.”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안다. 그게 박찬일 스타일의 환호라는 사실을.

이연복 사부는 오후 8시쯤 찾아와 주방을 구석구석 둘러보고 한참을 뭔가 대화도 하면서 아우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리고 늦게까지 주흥을 돋우며 축하의 술자리를 이어갔다. 그 자리에는 왕 사부와 중화요리의 또 다른 명장 진생용(55) 사부, 『음식강산』 저자 박정배 작가, 푸드 저널리스트 박준우씨 등이 동석했다. 몽로가 문 닫을 시간, 박찬일씨와 하객 일행은 2차로 자리를 옮겼다. 시간이 이미 늦어 나는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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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몽로’ 내부. 전체 넓이 280㎡(85평)에 좌석은 100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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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이나 칸막이 좌석의 벽은 진귀한 포스터 액자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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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육성·이연복 사부가 보낸 개업 축하 화분. 리본에는 “처음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왕) “돈 세다 날 새게 하소서”(이)라고 각각 씌어 있다.

몽로의 요리는 점심으론 치킨·참치 샐러드(1만3000원~1만6000원), 자가 배합 카레라이스(1만2000원), 스파게티·파스타 4종(1만2000원~1만9000원), 박찬일식 닭튀김(점심엔 양을 조금 줄여 1만9000원), 립아이 스테이크(150g 2만5000원) 등 13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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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광화문 몽로’ 개업 날 야경. 문 닫을 시간인 오후 11시에도 몇 자리 손님들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

저녁은 훨씬 다채롭다. 메뉴판에 적힌 것만 닭튀김부터 디저트까지 36가지다. ▷트러플 감자튀김(1만2000원) ▷등심편채(1만5000원) ▷저염명란구이(1만8000원) ▷몽로식 광어무침(2만2000원) ▷문어샐러드(2만2000원) ▷소볼살찜(200g 2만3000원) ▷살사챠(직접 만든 이태리식 양고기 생 소시지, 5가지 곡물샐러드, 요거트 소스/2만4000원) ▷된장에 입혀 그릴에 구운 스페인산 듀록 돼지 목살 스테이크(방풍나물, 대추소스 곁들임/2만5000원) ▷곱창·소힘줄(스지)찜(3만2000원) ▷그릴에 구운 립아이(등심) 스테이크(300g 4만5000원) ▷명란 파스타(1만9000원)▷한치 먹물 리조또(2만3000원) ▷수제 소시지를 올린 꽈란타(40)스파게티(2만8000원) ▷티라미수(1만2000원).

일요일과 설·추석만 쉰다. 문 여는 시간 낮 12시~밤 11시(마지막 주문 오후 10시 20분/브레이크타임 오후 3시~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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