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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에 떠난 천재 권혁주…정경화 “황망하고 비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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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 음악 영재 1세대로 통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31·사진)씨가 12일 부산에서 타고 가던 택시 안에서 급성 심정지로 사망했다. 세계 무대에 한국 젊은 음악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촉망받는 연주자였다. 온라인에서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추모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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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음은 이날 0시30분쯤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의 한 호텔 앞에서 택시 승객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되면서 알려졌다. 택시기사 김모(58)씨는 “목적지에 왔는데도 손님이 일어나지 않아 깨웠는데 숨을 쉬지 않아 신고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권씨는 이날 오후 부산문화회관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었다. 전날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지인 집에서 술을 마신 뒤 택시를 타고 숙소인 호텔로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검안의가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밝혀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할 예정”이라며 “유족 등을 상대로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씨의 바이올린 케이스 안에는 평소 복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정맥 관련 약이 발견됐다.

어제 부산 공연 앞두고 택시서 사망
소지품에 부정맥 치료약…부검 예정
한예종 예비학교 7세 입학한 신동
19세 세계적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
고 박성용 회장이 늘 기립박수 격려

손열음·조성진·김선욱씨 등과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 단원이었던 권씨는 7세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입학한 ‘음악 신동’이었다. 이후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와 차이콥스키 음악원 등에서 수학했다. 11세 때 차이콥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2위를 차지했다. 부친이 평범한 회사원이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적잖았고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았다. 특히 2005년 작고한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은 권씨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악기를 마련해 주고 연주회마다 기립박수를 보내곤 했다. 19세 때인 2004년 권씨는 덴마크 카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같은 해 러시아 볼쇼이홀에서 파가니니 ‘24개 카프리스’ 전곡을 연주하며 “레오니트 코간 이래 최고의 연주”라는 찬사를 받았다. 세계 무대에 유망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러시아 작곡가 티혼 흐레니코프는 그를 “하이페츠·오이스트라흐·코간·크레머·레핀에 이어 러시아 음악 계보를 이을 차세대 주자”라고 평하며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초연을 맡기기도 했다.

2011년 유학에서 돌아온 그는 서울대·한예종에 출강하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이어 갔다. 늘 자가운전으로 이동하며 바쁜 연주 스케줄을 소화했다. 지난 9월 건초염·건막염·퇴행성관절염 등으로 팔꿈치 수술을 받고도 2주 회복기간 후 여느 때처럼 연주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죽음에 클래식 음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그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음악을 지독히도 사랑한 청년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씨는 “네 음악이 세상에 남긴 위로와 감동은 영원히 기억될 거야. 늘 과로에 시달렸던 너, 이제는 편히 쉬렴”이라고 추모했다. 권씨의 마지막 연주가 된 5일 예술의전당 ‘후고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 공연을 함께했던 소프라노 임선혜씨는 “앞으로 혁주씨 생각 없이 이 노래를 하긴 힘들 것 같네요”라고 애도했다.

빈소는 13일 서울 보라매병원에 마련된다. 발인은 15일, 장지는 미정이다.

부산=강승우 기자, 류태형 객원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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