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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인류] 한국 디자이너, 세컨드 브랜드에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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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KN2ND·로클·뉴키즈노앙·Y요하닉스 …. 최근 1~2년 새 좀 뜬다고 소문난 국내 브랜드에는 공통점이 있다. 신진 디자이너들의 세컨드 레이블이라는 점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다져가는 초창기부터 컬렉션 라인과 동시에 세컨드 브랜드를 내놓는 대담한 행보다. 마크 제이콥스나 버버리 등 해외 유수의 패션 하우스들은 오히려 확장했던 브랜드들을 통합시키고 있는데 왜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앞다퉈 세컨드 브랜드를 내놓는 걸까.

대중적 기반 넓히려는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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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용의 ‘캠페인 레이블’에서 내놓은 개 패치워크 스웨트셔츠와 후드티셔츠,스태디움 재킷.

#데뷔 10년 차인 고태용 디자이너에겐 진태옥의 화이트 셔츠, 우영미의 피코트처럼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표 아이템이 있다. 다름아닌 ‘개 티셔츠’다. 흔히 맨투맨 티셔츠라 불리는 스웨트셔츠에 개를 패치워크한 디자인인데, 처음 출시한 이후 6년 간 국내외를 통틀어 100만 벌이나 팔았다. 이 효자 아이템은 고씨의 메인 컬렉션 라인(‘비욘드클로젯’)이 아니라 세컨드 브랜드 (‘캠페인 레이블’)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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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이 특징인 노앙의 세컨드 브랜드 ‘뉴키즈 노앙’의 론칭 행사장 내부. 첫 협업 파트너인 배우 유아인과 함께 알파벳·한글자모음을 조합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디자이너 노앙이 데뷔 직후 이름을 알린 계기도 세컨드 브랜드(‘뉴키즈 노앙’)에서 만든 티셔츠 한 장이었다. 한글 자모음과 영어 알파벳을 접목시킨 독특한 글자 디자인으로 파리·밀라노·서울 등 패션 도시를 표기한 디자인이었다. 이 서체가 화제가 되면서 이제는 매 시즌 등장하는 뉴키즈노앙이 아니라 노앙의 시그너처가 됐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왜 세컨드 브랜드를 만드느냐는 물음의 답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그에 따른 수익을 얻기 위해서다. 가령 신진 디자이너 한 명이 데뷔했다고 치자. 제아무리 패션쇼에서 주목을 받더라도 일반인에게까지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특히 컬렉션 라인은 브랜드의 색깔을 보여주려다보니 실험적인 디자인이 많고, 공들인 옷이니만큼 가격대도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디자인과 가격 모두 부담 없는 세컨드 브랜드가 대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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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수의 ‘MSKN2ND’의 체크 셔츠.

권문수 디자이너도 이런 이유로 올 초 MSKN2ND를 론칭했다. ‘문수권’이라는 컬렉션으로 이미 미국 뉴욕과 이탈리아에 진출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카디건 한 벌에 40만원이 넘다보니 정작 국내 고객층을 잡을 수가 없었단다. 권씨는 “내 옷을 좋아하는 10~20대가 용돈을 조금 모으면 살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한 번에 몇 천만원씩 드는 컬렉션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바로 들어오는 세컨드 브랜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고 말했다.

온라인 편집몰 입점이 목적
한꺼풀 더 속내를 드러내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만들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다. 신진 디자이너에겐 국내의 유통 채널은 바늘 구멍보다 작다. 백화점에 들어가는 건 언감생심이고 서울 청담동·가로수길의 대형 편집숍은 미리 옷을 사다 팔지 않기에 재고 물량을 디자이너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그러던 차에 디자이너 브랜드를 취급하는 온라인 편집숍이 속속 등장했다. 힙합퍼·W컨셉·29㎝·무신샤 등이 대표적이다. 디자이너 입장에선 매장을 꾸리는 비용이 들지 않는 데다 인터넷 구매가 익숙한 젊은 고객의 증가세를 고려할 때 매력적인 시장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온라인 쇼핑’이라는 성격에 맞는 제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주요 고객인 10~20대의 눈높에 맞는 옷, 그러면서도 H&M·자라 등 패스트 패션과의 가격 경쟁력도 고려해야 한다. 스웨트셔츠나 후드티셔츠, 캡모자처럼 유니섹스 품목을 위주로 가격 역시 컬렉션 라인의 30~50% 수준으로 떨어뜨린 새로운 레이블이 필요한 이유다.

온라인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10여 개의 디자이너 세컨드 브랜드를 입점시킨 ‘힙합퍼’ 측은 “스누어(윤춘호)·베이비센토르(예란지) 등 어느정도 알려진 디자이너들이라서인지 입점 초기부터 안정적”이라며 “인기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우리가 먼저 세컨드 브랜드 론칭을 권유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세컨드의 퍼스트 조건은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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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J 앤드 요니P가 만든 ‘SJYP’의 가로수길 매장.

세컨드 브랜드 전성시대라지만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디자이너들이 한결같이 꼽는 성공 키워드는 ‘차별화’다. 한정된 품목과 가격대를 유지하면서도 이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따라 성패가 나뉜다는 이야기다. 가령 부부 디자이너인 스티브 J 앤드 요니 P가 2014년 만든 SJYP의 성공 비결도 차별화다. 이들은 컬렉션 라인 중 데님 아이템이 주목받자 아예 데님으로만 특화된 세컨드 라인을 만들었다. 론칭 쇼를 서울 한남동 리움 미술관에서 열었고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단독 매장을 냈다. 그 덕인지 컬렉션 라인으로는 못 뚫던 런던 리버티·셀프리지 백화점과 파리 콜레트 편집숍에 SJYP로 입점할 수 있었다. 현재 매출 역시 국내외 모두 세컨드 브랜드가 우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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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YP’는 데님 소재의 다양한 아이템을 내놓는 세컨드 브랜드다. 올 봄·여름컬렉션의 한 장면.

노앙의 ‘뉴키즈 노앙’의 경우 1년에 한 번씩 주제를 정해 협업 상품을 내놓고,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컨셉트를 유지한다. 지금까지 배우 유아인·이천희 등이 파트너였다. 노앙의 이충환 대표는 “신상품을 소개하면서도 브랜드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이슈 메이킹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라고 말했다.

세컨드 브랜드의 성공에는 ‘그늘’도 존재한다. 세컨드 브랜드가 잘 되는만큼 원래 브랜드의 입지가 축소되기 쉽다는 것이다. 요니 P 디자이너는 “두 브랜드가 시너지를 내기도 하지만 시장에서는 일단 잘 팔리는 세컨드 브랜드 위주로 관심을 쏟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컬렉션 브랜드가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우산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1년 만에 세컨드 브랜드를 접은 ‘자니 헤이츠 재즈’의 최지형 디자이너는 제작 시스템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두 브랜드를 만드는 ‘원소스 멀티 유즈’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씨는 “기획부터 원단 구매, 유통까지 각 브랜드의 성격이 다르다”면서 “이를 전담할 인력이 없으면 에너지가 분산되면서 장기적으로 컬렉션 브랜드를 지켜갈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글=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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