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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집단대출이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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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Q. 집단대출이 까다로워진다는 뉴스를 봤어요. 집값이나 가계부채와도 관계가 깊다고 하는데. 도대체 집단대출이 뭔가요. 정부가 왜 이걸 관리하는지도 궁금해요.

아파트 분양 후 함께 받는 금리 싸고 빌리기 쉬운 대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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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틴틴 여러분 공동구매를 해본 적 있나요. 공동구매는 여러 사람이 물건을 같은 물건을 사면서 대신 싼 가격에 물건을 구매하는 걸 말하죠. 집단대출은 ‘대출판 공동구매’ 같은 거라고 보면 돼요.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를 사면서 같은 아파트를 사려는 여러 사람이 함께 돈을 빌리고, 대신 비교적 덜 까다로운 요건과 저렴한 금리로 큰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준 대출상품이랍니다.

상환능력 크게 안 따지고 대출
투기세력 가세 땐 부동산 과열
아파트 가격 떨어지면 문제
구매자 대부분 빚더미에 앉아

집단대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우선 우리나라에서 새로 짓는 아파트를 어떻게 파는지부터 알아볼게요. 국내에서 아파트를 살 때는 대부분 분양을 먼저 한답니다. 아파트를 지을 건설회사가 땅만 먼저 구해놓고 ‘이 땅에 이런 아파트를 지을 건데 살 사람 오세요’라며 입주자를 모으는 거죠. 이때 견본주택을 만들어서 어떻게 지을 건지 자세히 보여주기도 하고요.

입주 희망자가 모이면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계약을 하고 아파트값을 내요. 건설회사는 사실상 자기 돈이 아니라 이 돈을 받아서 아파트를 짓는 셈이죠. 집값을 한 번에 다 내는 건 아니에요. 맨 처음 계약을 하면서 10% 정도의 ‘계약금’을 내고 이후 공사가 진행되는 2~3년간 6번 정도로 나눠 ‘중도금’을 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이 완공돼 실제로 그 집으로 들어갈 때 나머지 돈을 내는데, 이걸 ‘잔금을 치른다’고 합니다. 틴틴 친구들도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나눠서 내더라도 매번 내야 하는 중도금이나 잔금은 적은 금액이 아니에요. 서울 아파트의 경우 한 번에 내는 중도금만 억대에 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중도금과 잔금을 내요. 바로 이때 많이 활용하는 게 ‘집단대출’이랍니다. 같은 아파트를 사려는 계약자 여럿이서 단체로 비슷한 조건의 대출을 받는 거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중도금을 내기 위해 받는 대출을 ‘중도금 대출’, 잔금 낼 때 받는 대출을 ‘잔금 대출’이라고 나눠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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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대출은 다른 일반 대출에 비해 금리가 싼 편이에요. 은행 입장에서는 공동구매처럼 한꺼번에 대규모 고객 확보가 가능한 장점이 있어 금리를 싸게 주는 거죠. 해당 아파트의 집단대출 은행으로 지정된 2~3군데의 은행들이 고객유치를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기 때문에 금리가 낮아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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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집단대출은 다른 대출에 비해 돈을 빌리기가 쉬워요. 대출자 개인에 대한 개별 대출심사가 따로 없거든요. 즉 돈을 빌리려는 사람의 월급이 얼마인지, 재산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다른 빚은 없는지 따지지 않는다는 거죠. 중도금 대출과 잔금 대출이 조금 다르긴 해요. 중도금 대출의 경우 별다른 담보가 필요 없어요. 그렇게 새 아파트 가격의 60%를 빌려주죠. 잔금대출은 집을 담보로 잡는 대신 집값의 70%까지 빌려주고요. 둘 다 총부채상환비율(DTI)도 적용되지 않아요. 쉽게 말해 부모님의 월급과 관계없이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얘기에요.

이렇게 은행이 집단대출을 쉽게 해주는 이유는 정부가 주인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을 받는 데다 집을 짓는 건설사가 연대보증을 하기 때문이에요. 혹시나 대출자가 돈을 못 갚으면 보증기관을 통해 받을 수 있어요. 은행 입장에서는 빌려준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 데다 쉽게 다수의 대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 좋은 겁니다.

이처럼 대출의 문턱이 낮아지면 사람들이 새 아파트를 사는 게 쉬워지겠죠. 예컨대 분양가 5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는 30%인 1억5000만원만 마련하고 나머지 3억5000만원은 별다른 심사나 요건 없이 은행에서 집단대출로 충당할 수 있으니까요. 여윳돈이 많지 않은 서민도 새 집을 장만할 기회가 생기는 효과도 있어요.

그런데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좋아서 이렇게 분양받은 아파트가 6억원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면 어떨까요. 예컨대 틴틴 친구가 20만원짜리 유명 운동화를 산다고 생각해봐요. 당장은 용돈이 5만원 밖에 없어요. 친구가 15만원을 빌려준다고 하는데 대신 하루에 1000원씩 이자를 줘야 돼요. 하지만 이 운동화가 한정판이라 한 달 뒤 30만원에 되팔 수 있다면, 돈을 빌려서라도 운동화를 사는 게 이득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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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칫 분양 시장이 과열될 수도 있어요. 실제로 아파트에 거주하려는 게 아니라 분양을 받은 뒤 나중에 더 비싼 값에 팔아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투기세력도 등장합니다. 이런 사람이 늘어나면 청약 경쟁이 치열해져 아파트 가격은 자꾸 올라가고 진짜 살집이 필요한 이들은 원래 가격보다 비싸게 집을 사야만 하는 부작용이 생겨요.

이렇게 오른 아파트 가격이 유지된다면 괜찮지만 한 순간 떨어지면 문제는 더 심각해져요. 30만원에 되팔 생각으로 20만원에 산 한정판 운동화가 예상보다 인기가 없어서 중고 사이트에서 반값에도 안 팔린다고 생각해봐요. 내 돈 5만원도 날아가고 빌린 돈 15만원과 이자로 하루 1000원씩을 꼬박꼬박 갚아야 할 걸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해지죠. 특히 경기가 안 좋아 집을 사려는 수요가 뚝 끊기면 이런 일이 발생하곤 해요.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낭패를 봅니다.

정부가 우려하는 것도 이 부분이에요. 대부분이 집단대출을 통해 아파트 중도금이나 잔금을 납부하는데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빚더미를 떠안게 됩니다. 사회도 불안해지고 국가경제적으로도 큰 손해죠. 그래서 정부는 분양시장이 과열된 것 같거나 가계에서 진 빚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대출규제, 즉 빚을 내는 것을 까다롭게 만들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하는 거랍니다.

요즘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집단대출이 늘고 있어요. 은행들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중도금 집단대출 잔액이 9월 말 41조6000억원이라고 해요. 지난해 말 32조5000억원에서 9조1000억원이 증가했어요. 그만큼 가계부채가 늘었다는 거죠. 집단대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에요.

정부는 시장 충격을 감안해 아직은 집단대출에 직접적인 규제를 하지 않았어요. 대신 우회 전략을 쓰고 있죠. 집단대출 중에서도 중도금 대출이 대상이에요. 대표적으로 이달부터 HUG와 주택금융공사의 중도금 대출의 보증비율을 100%에서 90%로 낮추기로 했죠. 중도금 대출을 받은 분양자가 돈을 갚지 못했을 때 기존에는 은행에 전액을 갚아줬는데 이제는 90%만 준다는 거예요.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금의 10%를 떼일 위험이 생긴 거죠. 또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보증 건수도 4건에서 2건으로 축소했어요.

이에 은행은 규제와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중도금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하려는 분위기에요. 이 과정에서 금리가 올라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와요.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투기수요 억제, 가계부채 관리 효과보다 실수요자에 대한 금리 부담만 커질 거라는 지적도 있고요. 이처럼 집단대출 규제는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큰 미칠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답니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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