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통령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만도 못해…내각제 개헌해야 경제민주화도 가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기사 이미지

선거는 아슬아슬해야 재미있다. 아슬아슬하다는 것은 대등한 세력 간에 피 튀기는 진지한 싸움이 승패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에 휘몰린 더불어민주당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의석수 제1당의 신화를 창조한 사나이, 이 사나이 덕분에 2017년 대선은 묵직한 두 판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스릴감이 생겨났다. 현재 그는 대선의 모든 교차지점에 우뚝 서 있다. 김종인과 결합할 수 있는 자만이 차기 대선에서 승자의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항간의 이야기도 있다. 대선 주자들을 릴레이 인터뷰하는 이 그랜드 프로젝트의 서막으로 대선의 중간지대에서 여야, 진보·보수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김종인을 만나봤다. 그를 만난 곳은 안평대군 이용이 몽유도원도의 꿈을 꾸었다고 전해지는 무계정사터였다.

현재 우리나라 최대 현안은
양극화로 인한 파괴적 갈등 구조
대통령 중심제로는 해결 힘들어

북한 문제 “꽉 막힌 보수” 듣는데
인민경제 외면 북 정권 안타까울 뿐
소련이 핵·미사일이 없어 망했나

야당인데 사드 반대 왜 미온적인가
우린 자력으로 사는 나라 아니다
무조건 반대 땐 한·미 동맹 훼손

헌법에 경제민주화 넣은 장본인인데

▶추천기사 1억 법카, 30세 검사 성관계··· 사고 친 검사 지금은

기사 이미지

지난 9월 26일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왼쪽)와 도올 김용옥이 서울 종로구 전통한옥 무계원에서 차기 대선의 시대정신을 주제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주기중 기자]

월간중앙의 대선 특별기획에 관한 소회나 당부가 있다면.
“인기가 있다고 하는 사실만으로 대통령이 된다고 하는 것은 국가의 불행이 될 수도 있다. 제6공화국 성립 이후 김영삼·김대중은 민주화운동에 기여를 했다는 사실 때문에 대통령이 되는 것이 당연시됐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리더로서의 역량이나 비전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 정책에 실패했고, 그 반사이득으로 이명박은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경제 실적은 노무현 정부보다 더 열악했다. 그래서 또다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결국 박근혜도 분위기에 휩쓸려 대통령이 된 것이고 개인적 자질과 비전에 관한 검증을 거치지는 않았다. 요번 대선 판도는 지금까지의 어떤 선거와도 다르다. 12여 명의 후보가 제각기 자기 색깔과 철학이 있고, 국민에게 어필되는 정책을 제시하려 노력하고 있다. 도올 선생께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치열한 검증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 정치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작업이고, 합리적인 여론의 추이를 만들어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한 검증의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논리를 제시해줄 수 있는가.
“갈등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현안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방면에 만연돼 있는 파괴적 갈등 구조다. 이 갈등 구조의 해결 없이는 사회 통합이 불가능하고 정치가 어떠한 기발한 노력을 해도 무기력·무능에 함몰되고 만다. 그 갈등·분열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냐? 아주 단순하다! 소득 격차, 즉 흔히 말하는 양극화라는 것이다. 앞으로 대통령이 될 사람은 이것을 해결해야만 한다. 747에도 속았고, 474에도 속았다. 국민에게 미래에 대한 허황된 숫자의 꿈을 꾸게 하는 것은 사기꾼이나 하는 짓이다. 미래가 아닌 오늘 당장 우리의 경제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지를 전 국민이 인식하고 같이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2018년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이다. 일흔 살 되는 대통령제 정부는 오직 수직적 명령 체계에 따라서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완고한 늙은이가 돼 버렸다. 경제민주화를 이룩하려면 반드시 개헌이 수반돼야 한다.”
기사 이미지

김종인 전 대표는 도올 김용옥과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주기중 기자]

김 대표님은 1987년 헌법 개정 시 119조 제2항에 ‘경제민주화’라는 조항을 집어넣은 장본인이다. 대기업의 규제에 관해 하시는 말씀도 어떤 좌파적 발언보다 더 좌적이다. 그런데 항상 문제가 되는 건 김 대표님은 경제민주화에 걸맞은 남북 화해 관점이나 이념의 소통성이 결여된 꽉 막힌 보수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민주당 내에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는 항담이 자자하다. 이러한 자신의 사상의 유기적 통일성 결여야말로 갈등 야기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87년 개헌 때 경제민주화 조항을 도입한 것은 미래 한국의 경제 진로를 예견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우리 경제는 압축성장을 하면서 경제·사회 구조의 엄청난 왜곡현상을 가져왔다.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가 지켜지고 경제 활성화를 지속하기 위해 가장 해가 되는 것은 부의 편중이다. 이러한 악폐를 제일 먼저 인식한 정치인이 독일의 비스마르크다. 부를 많이 가진 자들이 그들 스스로의 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양보를 해야만 한다고 선언, 자유주의자와 결별하고 복지주의적 사회입법을 가져왔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자유방임 국가로 보는 것은 난센스다. 링컨도 남북전쟁 후 미국의 제일 큰 우려는 ‘절제 없이 자라난 경제세력’이라고 예견했다. 1890년 해리슨 대통령 때 셔먼독점금지법(Sherman Antitrust Act)이 통과됐어도 10년 동안 제대로 집행을 못했다. 1901년 보수적 공화당의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직위를 승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부의 편중으로 일반 국민이 갈취당하는 이런 시스템으로는 미국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건의 북부증권회사를 해체시키고,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 독점 체제를 때려 부쉈다. 반루스벨트를 외치던 사람들을 모조리 법정에 세웠고, 이른바 혁신주의 시대(The Era of Progressivism)를 개창했다. 이러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신국민주의는 우드로 윌슨의 국가 주도형 혁신주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그리고 존 F 케네디의 뉴프런티어 국내 정책에까지 계승돼 내려갔다. 그것은 60여 년에 걸친 혁명적 사유의 소산이었다. 이 덕분에 오늘의 굳건한 세계 리더로서의 미국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점진적 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지금 확고한 룰을 정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파멸을 맞이하지 않을 수 없다. 도올 선생께서 내가 북한 문제에 관해 보수적이며 통일도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데, 나는 경제학도로서 북한 정권이 인민의 경제를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소련 공산주의는 핵이 없고 미사일이 없어 망한 게 아니라 자기 백성을 먹여 살리지 못해 붕괴된 것이다. 북한 체제의 변화는 벼락같이 올 수도 있다. 그러한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건강한 사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님께서는 암암리에 북한이 일시에 붕괴되기를 바라고, 그때 우리가 통일비용을 댈 수 있을 만큼 돈이 있는 탄탄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북한이 붕괴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통일비용을 최소화하는 첩경이라는 생각은 못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햇볕정책은 위대한 정책이었는데, 왜 햇볕정책을 비난해 일부 민주당원에게 불쾌감을 주는가.
“나는 햇볕정책을 비난한 적이 없다. 평화통일은 전략적(장기) 목표이고 햇볕정책은 전술적(단기) 목표인데, 그 전술적 목표가 김정은 체제하에서 먹히기 어렵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이다. 우리의 문제는 좌우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 대 진보의 문제도 아니다. 오직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갈등의 문제일 뿐이다.”
기사 이미지

1953년 12월 12일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왼쪽).

김정은에게 햇볕정책이 먹힐 수도 있지 않겠는가? 클린턴 대통령은 야세르 아라파트 같은 게릴라 괴수를 정중하게 대접해 캠프데이비드협정과 같은 위대한 전기를 마련했는데, 왜 우리는 동족·동포끼리 서로의 현황을 인정하는 아량을 가지고 끊임없이 평화적 교섭을 시도할 수 없는가.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중국도, 미국도 결국 다 믿을 수 없다. 남북 간에 스스로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지상명령이다. 그러나 그 대화의 장이란 북한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가능하고, 또 남한이 그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을 때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게 뭐겠는가? 결국 경제적 지원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그래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돈의 문제일 뿐 아니라 체제의 혁신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20세기 전반, 월남전 이전까지 그토록 찬란했던 미국이 자국의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왜 그런가? 월가의 금융세력이 국회를 완전히 장악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18년에 들어서는 정부가 대통령 한 사람, 막강한 재벌 총수 한 사람의 신적 권위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는 수직 구조 속에서는 우리 경제는 날로 파탄의 수렁으로 빠질 뿐이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시는 재벌의 룰 세팅은 아주 온건한 시책인 것처럼 ‘말씀 포장’을 하지만 실제로는 혁명적인 라디칼한 수술이다. 대기업이 골목의 구멍가게까지 모조리 싹 쓸어 획일적 시스템 속에 종속시키는 그런 폭력을 국민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탐욕은 스스로를 통제 못한다. 그 통제의 기능을 하는 것이 정치다! 나는 재벌 해체를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초법적인 자유를 상식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규칙 속에서 정당한 경제활동을 하라는 것이다. 선진국에는 골목에다 커피집 내고 소매업을 독식하는 재벌기업은 없다.”
조부 가인 김병로 선생께서 일제의 엄혹한 시절에 이미 소작농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시고 토지 무상 분배를 주장하셨다. 그 슬하에서 자란 대표님의 경제민주화 구상은 정치 구호가 아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대인의 우환이자 현실에 대한 절규임을 알겠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뜨거운 가슴을 지닌 사람이 개성공단 폐쇄나 사드 문제에 관해 그렇게 미온적인가? 개성공단 폐쇄로 하루아침에 공장을 날려 버리고 음독 자살을 시도하는 대북 사업자의 심정을 공감치 못한단 말인가.
“피해 보상은 국가가 확실히 해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력으로 생존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6·25 때만 해도 16개국 유엔군의 도움 없이는 대한민국은 존속할 길이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내려지는 준칙은 우리가 지키지 않을 수 없다. 개성공단이 남북 간 대화의 마지막 통로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자기 나라 병력의 생명 보장을 위해 일정한 무기가 필요하면 그 무기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걸 무조건 안 된다 하면 한·미 동맹 자체가 훼손되고, 한·미 공조가 안 되면 남북 관계도 제대로 갈 수가 없다.”
자, 이제 우리 담론의 제2주제인 개헌 문제를 토론해 보자! 5년 임기를 4년 중임으로 가자는 것인가.
“4년 중임은 현재 권력 구조에 하등의 변화를 주지 않는다. 대통령 임기를 3년 더 보장해 준다는 것인데, 그것은 보장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중임 때문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 4년 중임은 현재의 5년 임기만도 못하다.”
그럼 내각제 개헌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나는 일관되게 내각제 개헌을 주장해 왔다. 내각제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국민의 다양한 열망을 오히려 보다 직접적으로 권력 구조에 반영시킬 수 있다. 그래야 경제민주화도 가능해지고 권력의 수직 구조도 개선될 수 있다. 우리 조부께서 한민당을 창당하실 때도 당정의 핵심으로 내세운 것이 토지 개혁이었고, ‘유상 몰수, 무상 분배’였다. 나는 조부의 이러한 선비정신을 이어받았다.”
조봉암과 김병로의 관계는 어떠한가
“조봉암은 이승만 정권의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농지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모두 조부로부터 시발된 것이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화가 빨리 진행된 동유럽의 경우도 핵심 이슈가 토지 문제였다. 토지 개혁을 안 했기 때문에 공산화가 빨리 됐다는 것을 간파한 미군정이 이승만에게 토지 개혁을 하라고 한 것이다.”


▶관련 기사
① 문재인 “내년엔 정권교체”김종인 “시대흐름 관통해야”
[분석] 김종인·정의화가 ‘제3지대’ 용어를 꺼리는 까닭은


현재 김 대표님은 민주당원이다. 당원으로서의 의무는 정권 교체를 이룩하는 것이다. 나는 문재인 후보를 만나 열성적 지지자들 중심으로 패거리를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개방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평한 경선 룰을 만들어 어떻게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라고 권유했다. 문재인이 부활하려면 예수의 수난과도 같이 패션 드라마를 거쳐야 한다. 공평한 룰 속에서 신승할 때만이 막강한 힘이 나올 수 있다.
“나도 ‘공평한 경선 룰’이라는 그 한마디에 공감한다. 특정 후보에게 포커스를 맞추지 말고 오로지 집권에 포커스를 맞추기를 바란다.”
가인 선생도 좌우 합작을 주장했고, 17대조 할아버지 하서 김인후 선생도 ‘천명도’를 그리면서 인성(人性)을 말하는 자리에 성 대신 중(中)을 말했다. 대표님은 좌우를 아우르고, 진보와 보수를 통합하고, 기득권과 비기득권을 조화시키는, 천지의 중용이 되는 중(中)의 자리를 지켜주기 바란다.
“감사하다.”

▶인터뷰 전문 보러가기

기획·진행=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김포그니 기자 glutton4@joongang.co.kr
사진=주기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