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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미의 취향저격 상하이] ⑩ 중국 강남의 누들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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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가이드 상하이에 소개된 아냥몐 국숫집.

긴 여행을 하다보면 입맛이 떨어지는 날이 반드시 온다. 그럴 때마다 국수는 대체 불가한 소울 푸드다. 어디서든 국물맛도 비슷하고, 포만감도 크고, 가격도 저렴해 실패 확률이 적으니 말이다. 상하이와 쑤저우(蘇州), 항저우(杭州)에서도 국숫집을 여럿 찾아갔는데, 그중에서 가장 가볼만한 곳을 한 곳씩 꼽았다. 이른바 중국 강남(양쯔강 이남 지역)의 누들로드다. 입맛 까다로운 독자라도 여기 소개한 국숫집에 찾아가면 마음 놓고 한끼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상하이에서 소개하고 싶은 곳은 ‘조기 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아냥몐(阿娘面)이다. 이 식당은 얼마 전 공개된 미슐랭 가이드 상하이에서 빕 그루망(BIB Gourmand)에 선정되기도 했다. 빕 그루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훌륭한 맛을 제공하는 식당을 뜻한다. 아냥몐의 대표 메뉴 조기 국수는 중국어로 ‘황위몐(黃魚面)’이라고 한다. 상하이 지역에서 흔히 먹는 국수로 시원한 돼지뼈 육수에 조기살을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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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냥몐 국숫집은 규모도 메뉴도 단촐하다.

아냥몐(阿娘面)은 우리말로 하면 ‘이모네 국숫집’ 정도 되겠다.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 출신의 이모님이 운영하던 곳인데, 지금은 돌아가시고 손자가 물려받았다. 이모님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국물을 우리고, 5시면 수산 시장에 나서 신선한 조기를 공수해왔는데, 손자가 그 정성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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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냥몐의 대표 메뉴인 조기국수 `황위몐`. 감자조림과 함께 먹어야 더 맛있다.

소박한 실내와 저렴한 가격, 단촐한 메뉴도 변함이 없다. 조기 국수라고 해서 비리지 않을까 싶지만 국물도 시원하고 생선살도 부드럽다. 여기에 매콤한 감자조림을 함께 곁들여 먹는 것이 팁이다. 조기 국수 외에 장어맛이 나는 드렁허리 국수도 인기다.

CCTV에 소개된 쑤저우의 국수맛집 `통더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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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 사람들은 아침 식사로 국수를 즐겨먹는다. 2014년 중국 국수의 발상지인 타이위안 국수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CCTV에도 소개된 국숫집에 있어 찾아갔다. 바로 통더싱(同得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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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과 토핑까지 직접 고른 후 셀프 수령한다.

통더싱의 특징은 국물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간장을 기본으로 국물을 내고, 후추를 가미해 매콤함이 감도는 홍탕면(奧油紅湯面), 돼지뼈를 우려 시원하고 깔끔한 백탕면(白湯面), 국물이 없는 비빔면(蔥油拌面) 이렇게 세 가지 종류다. 이중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백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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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더싱에서는 쑤저우 지역의 전통 국수인 `펑전백탕면`을 맛볼 수 있다.

쑤저우 외곽 한산사 근처의 펑챠오 마을에서 유래해서 펑전바이탕이라고도 한다. 국물을 고르고 나면 국수 위에 올려 먹을 ‘토핑’을 선택할 차례다. 돼지고기 편육(楓橋大肉), 매콤하게 조린 닭고기, 껍질 벗긴 새우, 버섯(野生菌)등을 원하는대로 선택하는데 각각 7~14위안 정도다. 주문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돼지고기 편육과 청경채, 계란후라이(荷包蛋)가 올라간 백탕면 세트를 고르면 된다. 백탕면 세트의 맛은 한국 고기국수와 비슷하고, 육수가 진하면서도 상당히 짠 편이다. 맛이 좋으면 배짱도 좋은지, 이 집은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만 장사를 한다.

쿠이위안관은 150년 역사를 지녔지만 내부가 넓고 쾌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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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에는 150년 역사의 전설적인 국숫집이 있다. 지금은 어디서든 맛볼 수 있는 항저우 전통 국수인 피안얼촨(片兒川)을 처음 만든 곳, 쿠이위안관(奎元館)이다. 1867년 생긴 이 국숫집은 그동안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원조의 노하우와 맛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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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이위안관의 대표메뉴인 피언얼촨. 면이 우동처럼 굵직하다.

일본군에 맞선 항일 전쟁 영웅 차이팅카이 장군, 경극 배우 메이란팡(梅蘭芳), “동방불패”와 “소오강호”를 쓴 홍콩의 무협소설가 진용(金庸)이 이곳에 다녀갔다. 특히 1996년 다녀간 진용은 이곳의 국수를 ‘천하제일(杭州奎元館,面點天下冠)’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메뉴판에 사진과 영어 설명이 있어 쉽게 고를 수 있는데, 양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인 피안얼촨은 면이 우동처럼 두툼해서 식감이 좋다. 그 위에 죽순과 강남식 갓김치 ‘쉐차이(雪菜)’, 돼지고기 편육을 올려준다. 구수하면서도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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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이위안관 안에 `강남국수왕`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쿠이위안관이라는 식당 이름과 얽힌 일화도 재미있다. 이 식당이 처음 문 열었을 당시 항저우는 지방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강남의 고시생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었다. 어느 날 가난한 과거 고시생이 국수와 국물만 시키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든 주인이 계란 세 개를 얹어 주었다. 세 가지 과거 시험에 모두 합격하라(連中三元)는 의미였다. 이 가난한 고시생은 나중에 장원 급제해 다시 이 식당을 찾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쿠이위안관(虧元館)’이라고 식당 이름을 지어주었다. ‘덕분에 장원 급제했다’는 뜻이었다. 이 일화가 소문나면서 항저우에 과거 시험을 보러 오는 고시생들은 통과의례처럼 이 식당에서 국수를 먹고 합격을 기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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