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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미 대선 ‘승자독식’ 변수…33만표 적게 얻은 부시, 선거인단 5명 많아 당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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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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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1차 TV토론에 참가한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AP=뉴시스]

지난달 26일 미국 대선후보 1차 TV토론회가 막을 내린 뒤 언론과 여론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의 판정승을 선언했다.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언론은 “대통령에 걸맞은 후보는 단 한 명뿐임이 입증됐다”고 보도했고 CNN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62%가 클린턴이 토론에서 승리했다고 응답했다.

내달 8일 50개주 선거인단 선출
주민투표서 1표라도 더 받은 후보
해당 주의 선거인단 몽땅 차지
전국 득표율보다 주별 득표 중요
총 538명 중 270명 얻으면 승리
클린턴 17곳서 201명 확보 확실
트럼프 21곳 164명…경합주에 달려

토론이 막을 올리기 전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 대다수 매체가 이번 1차 토론을 ‘대선 분수령’ ‘인류의 달 착륙 이래 최대 TV 이벤트’ 등으로 표현한 것을 떠올려보면 클린턴의 승리 소식은 대선 판세를 굳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2월 1일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를 시작으로 대장정에 오른 미 대선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토론장에서 클린턴은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돼 온 체력 논란에 대해 “(나처럼) 112개 국가를 순방해 협정한 뒤에나 거론하라”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에게 한 방 먹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일부에선 트럼프가 우위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의회 전문지 더힐의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48%가 트럼프의 승리라고 말해 클린턴(46%)보다 높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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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금융 동향을 분석해 판세를 예측하는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TV토론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그룹은 1차 TV토론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어느 후보도 명백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며 “대선에 터닝포인트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의견은 UBS·노무라 등 다른 투자은행 보고서에서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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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빈 수레’(1차 TV토론)만 요란했을 뿐 여전히 대선 예측 보드판엔 미지수가 가득하다. 특히 미국 대선의 최대 특징 중 하나인 ‘선거인단’(The Electoral College)과 ‘승자 독식’(Winner-Takes-All) 제도는 앞서 보도된 수많은 예측과 상관없이 언제든 판을 흔들 변수로 남아 있다. 실제로 2012년 대선 당시 갤럽과 라스무센 등 여론조사기관들은 선거 바로 전날에도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앞설 것이라는 조사를 내놨었다. 다음 날 결과는 전국 득표율 50.5%를 기록한 오바마 대통령의 연임 성공이었다.

더욱이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것은 전국 득표율이 아닌 주별 득표율이라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롬니에게 전국 득표율에 앞서 연임에 성공한 것은 분명 맞지만 이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실제로 2000년 앨 고어 민주당 대선후보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전국 득표수가 33만여 표나 앞섰지만 선거인단에서는 5명이 적어 ‘이기고도 지는’ 상황을 맞았다.

결국 지난 1차 TV토론과 오는 2·3차 TV토론(9일·19일)은 다음달 8일 대선(선거인단 선출)에 상대 후보보다 0.1%포인트라도 앞서기 위한 ‘구애활동’에 가깝다. 크게 이기든 적게 이기든 ‘이기기만 하면’ 그 주의 선거인단 수를 모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클린턴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되는 지역은 16개 주+워싱턴 DC(201명)이고, 트럼프는 21개 주(164명)다. 전체 538명의 선거인단 수 중 과반(270명 이상)을 확보해야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클린턴은 69명, 트럼프는 106명의 선거인단이 더 필요하다. 주마다 특정 당이 우세로 점쳐지는 곳이 많지만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13개 주의 선거인단 173명이 여전히 부동층으로 남은 셈이다. 이 상황에선 승기를 잡은 주들의 지지율과 전국 지지율은 하등의 의미가 없고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를 잡는 후보가 최종 승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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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클린턴의 기세가 좋다. 여론조사 기관인 퍼블릭폴리시폴링(PPP)이 토론 다음 날부터 이틀간 실시한 주요 경합주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이 5곳 모두 앞선 것으로 나왔다. 특히 NYT가 “클린턴이 플로리다만 잡으면 승리한다”고 말한 플로리다주에서 클린턴은 48%의 지지율을 보여 트럼프를 3%포인트 앞섰다. 클린턴은 펜실베이니아(49%대 44%), 콜로라도(51%대 44%), 노스캐롤라이나(49%대 45%), 버지니아(49%대 43%)에서도 트럼프를 눌렀다. ‘583’ 등 주요 선거 예측 기관도 클린턴의 당선 확률을 상향 조정했다. USA투데이는 지난달 29일 ‘트럼프 반대’를 선언하며 창간 34년 만에 처음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 NYT도 트럼프의 납세기록 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트럼프가 18년 동안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고 1일 보도했다. 트럼프로서는 악재가 겹쳤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막판 뒤집기’를 배제할 수 없다. 공화당 경선 당시 17명의 후보가 난립하던 상황에서 이들을 모두 제친 후보가 트럼프다. 당시 공화당은 민주당과 달리 승자독식으로 대의원을 분배하는 경선이 많았는데 이는 자극적인 ‘막말’로 눈길을 끌고 있던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득표율이 크게 차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득표를 많이 한 후보가 그 주의 대의원을 많이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덕에 트럼프는 3분의 1 득표만으로도 대의원 절반 이상을 차지해 공화당 대선후보가 됐다.

지난달 30일 폭스뉴스의 지지율 조사에서 클린턴은 트럼프를 3%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이는 오차범위(±3%포인트) 이내여서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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