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의 작가전] 하드고어한 오후 한 시 #9. 딸기의 밤 (3)

중앙일보

입력 2016.10.0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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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다양해도 일반적으로 살인자는 상대방의 삶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연쇄 살인범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피가 흐르는 희생자의 몸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반만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육신과 영혼의 절반은 땅속에 파묻힌 채 꼼짝없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온전히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땅 위로 올라가야 했다. 땅 위에 있는 집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돈을 구하기 위해서는 집을 팔아야 했지만 부동산 경기 악재로 지금 집을 팔면 반지하 전세금마저 토해내야 할 판이었다. 결론적으로 반지하를 벗어날 방법이 없으니 반만 살아 있다는 느낌을 견뎌야 했다. 초가삼간에 살아도 마음만 떳떳하면 그만이라는 말은 초가삼간이 반지하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펼쳤다. 장르소설이 뭐 어때서? 이곳만 벗어날 수 있다면 이따위 자극쯤 얼마든 만들어낼 수 있어. 그러나 그녀는 읽던 곳을 찾아내기도 전에 도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다리차가 30분이 넘게 공회전 중이었다. 엔진 소음이 고막을 찢을 것처럼 덤벼들었다.

남자는 차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자기 차에 냄새 배는 건 싫은 모양이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남자는 얼굴도 안 돌리고 대답했다.

“쌍둥이들 기다려요. 놀이공원에 데려다주려고요.”

“애들이 나올 때 시동을 켜시면 되잖아요. 소음 때문에 힘들다고요.”

그제야 남자는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자기 물건을 드러내놓고 여유를 부리던 그날 밤과 똑같은 눈빛이었다.

“아줌마, 아줌마가 이 골목 세냈어요? 내 차, 내가 워밍업 시킨다는데 무슨 간섭질?”

이 골목 세냈어요? 이 말, 이 동네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말이었다. 집주인이건 세입자건 하루 한 번씩 꼭 하고 넘어갔다. 비타민을 챙겨 먹듯, 조깅을 하듯 그 말을 하지 않으면 하루가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당신이야말로 이 골목 세냈어요? 그 말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삼키려니 그녀는 커다란 복숭아씨 하나를 강제로 넘긴 기분이었다. 목구멍이 얼얼했다. 성실한 생활인이자 좋은 아빠, 자기 차를 사랑하는 섬세한 성격의 1층 남자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자기 여자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흥분시키는 걸까. 혹시 반지하 생활자란 가난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결코 자신들이 최악이 아니라는 증거라도 되는 걸까.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상대가 표면적인 삶 이외의 삶, 이를테면 정신세계에서 영원히 자신의 위층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보다 최악인 사태는 없을 터, 어떻게 해서든 그런 세계를 부정하고 상대를 끌어내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어떤 것과의 괴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번 오줌 사건도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었다. 아니, 그전부터 풍기던 지린내의 범인이 모두 동일인물인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그녀는 주인 여자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때릴 때마다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지만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녀는, 곁에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무시를 당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웃끼리 배려하고 살아야 하는데, 몰상식하게 왜들 그러는지 쯧쯧.”

주인 여자가 혀를 찼다. 주인 여자는 아이의 엄마가 아닌, 공평하려고 애쓰는 교사 역을 자청하고 있었다. 왜들 그러니? 비슷한 것들끼리 사이좋게 놀아야지, 뭐 그런.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말없이 뒤돌아섰다. 주인 여자는 자신까지 ‘몰상식 군’에 포함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다시 나타나 노려보자 1층 남자는 그제야 시동을 껐다. 남자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엔진 소음이 부활한 것은 그녀가 실내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이번에는 빠작빠작 잔 돌멩이 눌리는 소리까지 같이 들렸다.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아이들이 내려온 모양이군 하는데 부우웅, 하는 굉음이 집안을 흔들었다. 작은 집 정도는 충분히 두 동강 낼 만큼 굉장한 소음이었다. 아이들이 내려온 게 아니었다.

남자는 차를 출발시키지 않았다. 위치만 약간 이동시켰을 뿐이었다. 사이드 기어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액셀러레이터를 있는 힘껏 밟고 있는 것이다. 배기관이 그녀의 창을 향하고 있었다. 매캐한 배기가스가 집안으로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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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뱉어내는 뜨거운 숨으로 실내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남자는 차를 출발시키지 않았고, 액셀러레이터에서 발도 떼지 않았다. 그녀는 미닫이창을 닫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창은 닫히지 않았다. 창과 창틀 사이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박혀 있었다. 단단히 박힌 돌멩이는 그녀 힘으로 빠지지 않았다. 부웅부웅, 맛 좀 봐라! 차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차가 미친 것 같았다. 부웅 부웅 부우웅, 죽어라! 차가 허공에서 철퇴를 휘둘렀다. 뭉텅 그녀의 귀가 떨어져 나갔다. 뭉텅 눈이, 뭉텅 코가, 뭉텅 입이 떨어져 나갔다.

1층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그녀를 싸움판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처절한 육체의 대결장에서 세게 맞붙고 싶은 것이다. 기어이 그녀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모습을 온 동네 사람들에게, 주인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똑똑히 봐둬. 교양 있는 여자의 실체란 이런 거야.

“일자리 좀 부탁하려고요.”

전화기를 쥐고 있었지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소설 쓰는 일이 과연 생존보다 중요한 걸까? 살아남으려면 여기 살아선 안 되는 거지? 초가를 얹은 집이라고 해도 지상으로 올라가 살려면 적지 않은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집을 팔아 돈을 구하기는 틀렸으니 고정적인 직장이 필요했다.

몇 가지 자격사항을 검토한 끝에 노동고용센터 직원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죠? 의료보험료 납부액이 월 십사만 원을 초과하는 분께는 혜택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통화를 종료했다. 집 때문에 의료보험 수가가 높게 책정되어 있었다. 정부는 주택 보유자인 그녀까지 보호할 의사가 없었다. 껍데기만 남은 집 때문에 생존마저 불투명해진 것이다. 배기가스는 쉬지 않고 밀려들어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사하는 것은 관두고 살아남으려면 당장 그곳을 벗어나야 했다.

사다리차는 그녀가 집 밖을 벗어난 것도 모르고 독가스 살포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저만치 떨어져 차를 바라보았다. 차 안에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을 1층 남자와, 살인가스로 가득 찬 그녀의 반지하 집을 떠올렸다. 그녀는 거대한 차체에 대고 물었다.

‘꼭 이렇게까지 으깨놔야 해야 해?’

1킬로쯤 걸으니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가 나왔다. 아파트 값이 폭락한 뒤로 다세대 주택이 인기였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반지하집이 건물을 떠받치고 있었다. 저런 건 법으로 짓지 말도록 해야 해. 땅에 허리가 박힌 채 생매장당한 인간의 주거지라니.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울분 때문이 아니라 휴대전화가 진동 중이었다.

“어때? 쓸 수 있을 것 같아?”

공 실장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독촉 아닌 독촉이 이어졌다. 그로선 똥줄이 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당장 큰 거 하나 못 터뜨리면 출판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다. 공 실장에게는 그녀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독히도 좁은 인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류가 팔릴지 감은 잡았으니 주문대로만 써 주기만 하면 대박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그는 순진하게도 믿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녀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를 바라보느니 로또를 사는 게 날 거야. 나는 사람 으깨는 소설 못 써.”

“임 작가, 잘 생각해야 해. 우리가 사람을 못 으깨면 사람들이 우리를 으깰 거야.”

공 실장의 태도는 진지하다 못해 절박했다. 자기를 으깨려는 절구공이를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사람 같았다. 몇 킬로미터를 걸었을까, 눈앞으로 낯익은 집 한 채가 나타났다. 자신이 사는 집과 똑같이 생긴 주택이었다. 같은 건설사에서 시공한 것 같았다. 반지하, 똑같이 생긴 창 너머로 여자가 보였다. 여자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낯익은 모습인걸. 동네 사람들이 구경했을 자신의 모습이 그 위로 겹쳐졌다. 그녀는 여자가 조금 측은해졌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없었다. 코가 없었다. 입이 없었다. 눈코입이 있던 자리에는 딸기 속처럼 붉고 축축한 생살이 드러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공원이었다. 공원에는 어느새 그윽한 어둠이 내려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숨을 골랐다. 깨끗한 밤공기를 흡입하니 가슴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맑아진 게 아니었다. 뭔가 이상했다. 가슴께를 만져보니 그 자리가 축축했다. 내려다보니 가슴에 구멍이 나 있었다. 옷과 피부가 사라진 자리에 벌건 생살이 드러나 있었다. 벌건 살 속으로 갈빗대가 보였다. 갈빗대 사이로 벌렁거리는 허파와 조용히 박동하는 심장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시 다세대 주택지 한가운데였다. 어딜 가나 그런 주택지 천지였다. 3층짜리 건물, 건물에 박혀 있는 수많은 창, 불빛, 그리고 맨 밑에 깔린 수많은 반지하 세대. 반지하에도 낮고 작은 창이 달려 있었다. 통풍과 채광이 목적인 창 너머로 반지하 생활자의 사생활이 들여다보였다. 창마다 여자들이 있었고, 여자들은 쌀을 씻고, 청소기를 밀고, 설거지를 하고, 하얀 유방을 드러낸 채 파트너와 사랑을 나누었다. 여자들이 일제히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없었다. 코가 없었다. 입이 없었다. 딸기 속처럼 빨간 생살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이런 현실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눈에서 끈적한 액체가 배어나왔다. 그녀는 손이 떨리도록 눈가를 압박했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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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 1969년 경기 부천 출생.
· 인천대 국문학과, 한신대 문예창작 대학원 졸업.
· 2010년 전남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발표한 소설로 <예술가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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