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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만약 유승준의 아버지를 처벌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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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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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2007년 미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 영주권자였지만 한국 국적을 가진 이민 1.5세 조승희가 재학 중인 대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총 33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한 희대의 참극이었다. 당시 연구년으로 미국에 머무르던 필자는 뉴스와 인터넷으로 미국 내 보도와 한국 내 보도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흥미로운 일은 한국에 떠돌던 조승희 가족에 관한 소문들이었다. 조승희의 부모가 자살을 했다느니, 미 연방수사국(FBI)이 그 부모를 조사하고 있다는 등의 갖가지 소문이 떠돌았고 한국 언론에도 언급됐다. 하지만 FBI는 이렇게 얘기했다. 자신들이 조승희 부모를 보호하고 있다고.

 한국인들의 인식에서 조승희의 부모는 죄책감에 자살을 했든지, 뭔가 잘못해서 조사받아야 할 대상이었고 미국에서는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이렇게 죄인의 부모에게 사회적 낙인과 비난을 퍼붓는 현상은 자주 볼 수 있다. 연쇄살인 등 흉악범죄처럼 사회적 비난이 거센 사건을 대할 때 우리 사회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 부모들을 언론에 등장시키고 사회적 비난의 광장으로 끌어낸다. 하지만 그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에게 흉악범이나 총기난사범이 되라고 절대 시키지 않았을 거다.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들은 결국 부모로서 실패한 거다. 그들이 죄책감에 몸부림치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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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4명의 재외공관장이 조기 소환되어 교체된 이유가 자녀의 복수국적이라고 보도된 바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진실은 어느 대사의 아들은 병역의무까지 마치고 합법적으로 복수국적을 취득한 상태였고, 나머지 대사의 자녀는 모두 딸이라 합법적으로 복수국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자녀들은 결코 한국국적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 아들은 한국국적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군대도 갔다. 그런데 그 부모는 불이익을 받았다. 한국 국적을 잘 유지하고 있는데도 이럴지니,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을 선택한 자녀를 가진 부모들에 대한 비난과 사회적 불이익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문제는 각종 청문회나 고위공직자 검증 과정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자녀의 외국 국적 포기와 한국 국적 회복에 대한 약속이나 각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을 부모와 자녀를 서로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한국의 문화심리적 특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적 문제의 당사자는 공직자인 부모가 아니라 그들의 자녀다. 그리고 그 국적에 대한 결정은 그 자녀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 선택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그 성인의 결정을 부모가 책임지라는 것이다. 왜? 아마 자녀가 한국 국적(만) 가지도록 자녀를 설득(강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무원인 부모가 얼마나 애국심이 없고 모범을 보이지 않았으면 자녀가 한국 국적만을 선택하지 않았을까’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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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은 모두 부모의 책임이라는 말인가?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자녀를 둔 부모에게, ‘얼마나 평소에 학구적이거나 공부하는 모범을 보이지 않았기에…’라고 비난하면 받아들일 수 있나? 범죄자 자식의 부모에게 ‘평소에 부모가 똑바로 살지 않고 엉망이어서 자식이 그렇게 됐다’고 비난한다면 이건 온당한가. 자식을 길러본 사람은 누구나 알지 않는가. 자식만큼은 절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합법적 한국 국적 유지자와 그 부모는 비난이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만약 한국 국적을 선택하도록 자녀를 열심히 설득했다면) 그저 자녀 교육에 실패한 서글픈 부모들일 뿐이니 불이익까지 받을 필요는 없다. 자식 잘못 키웠다고 고위공무원이 되지 말라는 얘기는 말도 안 된다.

 문제의 본질은 부모가 아니다. 국적을 포기한 그 자녀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을 평생 동안 후회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그들은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한국을 버린 사람들이기에 원래 외국인인 사람과 달리 처우해야 한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도 대한민국의 다양한 혜택을 편법과 불법으로 누릴 수 있는 현재 제도의 허점을 개선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자녀를 둔 부모를 비난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한국 국적 선택을 자녀에게 설득할 합리적 이유와 명분을 그 부모에게 더 만들어주는 것이 맞다. 유승준의 입국은 또 법원에서 거부됐다. 이건 말이 된다. 하지만 만약 유승준 부모의 입국을 거부한다면 이게 말이 되나? 그건 그 부모가 아닌 유승준이 평생 안고 가야 할 자신의 선택의 대가다. 어설프게 부모에게 불이익을 주어 국적 포기 당사자에게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