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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한국학과 한국의 공공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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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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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페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내가 1983년 예일대에 입학했을 때 아시아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 결국 중국어를 전공하게 됐고 4학년 때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예일대에는 한국학 프로그램이 없었다. 오늘날 예일대에는 한국학 프로그램이 있지만 학생들은 한국학을 전공으로 삼을 수 없다. 교수가 한 명도 없다. 한국에 상당한 손해다. 많은 예일대 졸업생이 정부나 재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들은 학부 때 한국 문학·역사·철학·예술사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다.

최근 ‘공공외교법’이 통과됐다. 한국 정부에 해외의 한국 전문가 부족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해외 한국학 연구의 폭과 깊이는 중국학·일본학에 뒤진다. 정부의 지원 자금이 미국에서 한국학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 및 위상 제고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라고 표현된 공공외교법의 목표는 나를 실망시켰다.

내가 중국어·일본어를 공부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 정부의 ‘국가 이미지 제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내게 관심은 이 두 나라의 가치, 철학·미학 원리였다. 한국 음식을 홍보하는 것이나 싸이가 하버드대에서 강연한 것은 한국 문화에 대한 장기적인 관심을 키우는 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한국을 시간의 검증을 받은 가치체계가 아니라 소비를 기다리는 재미(fun)로 소개하는 것은 효과가 훨씬 덜하다. 한국은 노력하면 깊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제시돼야 한다.

프랑스·영국·일본은 오랜 식민지 지배 역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국 문화의 우월성을 홍보하며 식민지 주민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한 쓰라린 전통은 결코 권장할 수 없지만 이들 국가의 그런 전통은 일찍이 자국 문화에 대한 신화, 신비로움을 형성했다. 이 게임을 늦게 시작한 한국은 90년대까지 문화 홍보에 투자하지 않았다. 프랑스나 독일보다 100여 년이 늦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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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무사도(武士道) 홍보에 사용하는 ‘신화’나 식민지 유산을 배경으로 한 영국·프랑스의 엘리트주의를 한국이 피할 수 있다면, 그리고 보다 참여적인 한국학 홍보의 접근법을 개발할 수 있다면 한국이 늦게 시작한 게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가장 큰 한국학의 문제점 중 하나는 한국학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을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라 한국어·한국사를 공부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한국학을 성장시킬 가장 큰 잠재력은 한·중·일 비교 연구를 증진시키는 데 있다. 나 또한 일본 문학 교수로서 한국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전근대기 역사·문학·철학·예술사 분야에서 손실이 가장 심각하다. 한국은 중국학이나 일본학 전문가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함으로써 그들을 한국학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중국학·일본학 연구자들은 문어체의 한문으로 돼 있는 초기 한국 문헌을 읽을 수 있다. 그들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주목받을 만한 연구를 수행하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다.

하버드대와 관련된 문제도 있다. 나는 7년 동안 일리노이대 교수로 재직했는데 일리노이대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한국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일리노이대가 아니라 하버드대를 지원했다. 하버드대가 다 쓸 수도 없는 액수였다. 학문을 발전시키는 것은 학자들의 네트워크이지 아이비리그 대학 같은 특정 대학이 아니다. 연구에 중요한 것은 대학이 아니라 학과다.

공공외교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소녀시대가 수백만 명의 넋을 빼놓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미 있는 영향력은 생기지 않는다. 한국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한국을 정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투쟁에서 전사로 나설 사람은 40년 이상 가르칠 교수들이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젊어서부터 알게 되는 차세대 지도자들을 교육시킨다.

한국학의 표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에는 한국 연구를 하지만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는 학자가 많다. 프랑스나 스페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프랑스어·스페인어 수준에 상응하는 한국어 수준을 그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학생들이나 교수는 엄격한 프로그램을 존중한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워싱턴에서 북한에 대해 ‘설교’하는 것은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학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돈뿐만 아니라 비전이 필요하다. 한국 국내 대학에서 문학·예술사 교수 자리를 줄이면 해외 한국학에도 악영향을 준다. 한국 문화와 언어라는 기초를 무시하고 한국 경영·경제 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것은 학문의 자유다. 일본은 미국 내 중국학·한국학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학 지원에 15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일본이 자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홍보하고 불편한 진실을 세탁하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한국은 미국 학자들이 미국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한국학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임마누엘 페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