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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당은 국감 들어오고 정 의장은 유감 표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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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새누리당 의원 129명 전원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형사고발했다. 현직 의장이 형사고발된 건 70년 헌정사 사상 처음이다. 새누리당의 정 의장 고발 혐의는 직권 남용과 허위 공문서 작성·명예훼손이다. 김재수 장관 해임안 처리 과정에서 여당과 협의 없이 차수 변경을 했다는 게 골자다. 결론부터 말해 어처구니없다. 해임안 처리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정치 행위다. 이런 문제를 협상으로 푸는 대신 검찰에 맡긴 건 집권당 스스로 정치력 부재를 선언한 무책임한 행동이다. 삼권이 분립된 대한민국에서 입법 과정의 절차적 논란을 검찰이 개입해 풀 수 없다는 건 새누리당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여당, 현직 의장 형사고발 막장극
의장도 버티기 일관해 극한 대치
3당 원내대표 회동, 전환점 되길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지난 추석 미국 방문 때 국회 예산으로 부인을 여객기 1등석에 태우고, 교민들에게 나눠줄 시계를 샀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 또한 유치한 발목 잡기다. 의장에게는 공식 행사에서 나눠줄 기념품 예산이 책정돼 있다. 또 대통령의 외국 순방에 영부인이 함께하듯 국회의장도 공식 외교 행사에 배우자를 대동해 나갈 수 있다. 정 의장의 방미가 공식 행사인지 여부는 따져봐야 하겠지만 과거 여당 출신 의장들도 외국 순방에 부인을 대동한 경우는 흔하다.

 이뿐 아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감사장을 닷새째 비워놓고 정 의장 공관에 몰려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는가 하면 돌아가며 정 의장 사퇴 촉구 단식까지 하고 있다. 집권당은커녕 공당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체통마저 팽개친 듯하다. 여당이 이처럼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막가파적 행동을 일삼는 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나 있던 일이다. 내년이면 민주화 30년인데 새누리당의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가는 모양새다.

 김 장관 해임안 의결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고 정 의장의 국회 운영에도 문제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새누리당이 벌이고 있는 감정적 행태들은 정 의장을 자극해 극단적 대치 정국의 골을 더욱 깊게 할 뿐이다. 당 지도부는 김무성·유승민·나경원·이혜훈 등 비박계 23명이 지난달 29일 “국감만큼은 복귀하자”고 결의한 걸 받아들여야 한다. 정 의장에 대한 형사고발도 접기 바란다. 그러지 않고 민심과 상식을 거스르는 강경 투쟁을 이어 간다면 주말을 고비로 당내의 국감 복귀 목소리는 급격히 높아질 것이다.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정 의장의 유연한 대응도 절실하다. 현직 의장으로서 형사고발까지 당한 데 불만이 많은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정 의장 역시 국감 파행에 책임 있는 당사자의 한 명이다. “맨입으론 안 되지” 같은 발언으로 편파적 국회 운영 논란을 자초하지 않았는가. 최소한 유감 표명을 통해 새누리당에 국감 복귀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다. 마침 30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이 3당 원대대표 회동에 합의했다. 정 의장과 여야 3당은 이 회동을 통해 의장의 유감 표명과 새누리당의 국감 복귀라는 타협책을 끌어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