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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변명만 듣고 영장 기각” 반발…신동빈 “그룹 혁신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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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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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9일 새벽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사전구속영장이 29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실질심사를 거친 뒤 “수사 진행 내용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뒤이어 서울중앙지검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 회장은 “우리 그룹은 여러 가지 미흡한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책임지고 고치겠다”고 밝힌 뒤 서초동 청사를 떠났다.

검찰 “대기업 비리수사 어려워져”
부실·무리한 수사 논란 직면할 듯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은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이익을 형·누나 등의 가족이 빼돌리도록 한 점에서 법적인 책임이 무겁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 회장 측 변호인은 “혐의의 상당 부분이 신격호(95) 총괄회장이 경영권을 행사하던 때 벌어졌기 때문에 신 회장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맞섰다. 법원은 신 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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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반발했다. 수사팀은 공식 자료를 내고 “수사를 통해 밝혀진 신 회장의 횡령·배임액이 1700억여원, 총수 일가가 가로챈 이익이 1280억여원에 달할 정도로 사안이 중대함에도 피의자의 변명에만 기초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총수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줘 향후 대기업 비리수사를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기각 사유를 정밀 검토한 뒤 신 회장에 대해 영장을 재청구할지, 불구속 기소할지 결정키로 했다. 검찰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10년간 형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가족에게 500억원가량의 급여를 부당하게 지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5~2013년 전국의 롯데시네마 내 매점을 서미경(57·불구속 기소)씨 등에게 내줘 770억원대 수익을 올리게 하고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과정에서 다른 계열사에 480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고 있다.

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검찰은 ‘부실 수사, 무리한 수사’ 논란에 직면하게 됐다. 검찰은 사상 최대 규모인 30여 개 계열사를 압수수색하고 100일 이상 롯데그룹을 전방위 수사했지만 결과는 상대적으로 초라하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수사팀은 당초 핵심 수사 목표로 ‘비자금 규명’을 내세웠다. 하지만 신 회장에 대한 영장 혐의 내용에서 ‘비자금’은 빠졌다. 그나마 롯데건설에서 300억원대 비자금을 찾아냈지만 신 회장과의 관련성은 찾지 못했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팀은 수사 초기 법원의 무더기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수퍼 영장’이라며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며 “하지만 이후 롯데 주요 인사의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비자금 수사가 아니다’며 후퇴했다. 검찰로선 군색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롯데홈쇼핑의 9억원대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의 실체 규명도 미완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롯데그룹은 1967년 창사 이래 초유의 총수 구속 위기에서 벗어나 ‘신동빈의 새 롯데’ 개편 작업을 다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다음달 검찰의 중간 수사 발표가 나오면 정책본부 개편 등 그룹 개혁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신 회장은 이날 오후 출근해 그룹 현안을 보고받고 임원들에게 “기존에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선안과 기업 투명성 확보, 사회공헌 방안 등 혁신안을 준비해 달라”고 주문했다. 롯데그룹은 그동안 올스톱됐던 투자를 연말까지 최대한 예년 수준(약 7조원)으로 맞추고, 내년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날 롯데 계열사 주가도 일제히 올랐다.

구희령·현일훈·송승환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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