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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시각각

‘피닉스’ 정세균 의장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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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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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문희상을 국회의장 시킵시다.”(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 됩니다. 친노니까요.”(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그러면 정세균이 될 텐데?”(김종인)

“정세균이 돼야 합니다. ‘덜노’(덜 친노)니까요.”(박지원)

20대 국회 개원을 앞둔 지난 4월 하순. 김종인이 박지원과 식사하며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놀란 문희상이 박지원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이 날 밀어줘야지 누굴 미나”며 애걸했다. 그러나 박지원은 “당신은 안 돼. 친노 아니냐”며 잘라버렸다. 게다가 이 통화 사실을 의원 워크숍에서 공개하며 “국회의장을 새누리당에 줄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다. 38석 국민의당을 업지 않고선 국회의장을 낼 수 없는 123석 더민주는 더 이상 문희상을 밀 수 없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하 경칭 생략)이 20대 국회의 수장이 된 배경이다. 극적이다. 정세균은 4·13 총선 직전엔 정치생명이 끝장날 위기에 몰렸다. 오영식·전병헌·강기정·최재성 등 측근 의원들이 죄다 공천에서 탈락했다. ‘친문’ 다음가는 세도를 자랑하던 정세균계가 초토화되고 그 혼자만 험지 종로에 재공천된 것이었다. 게다가 상대방은 ‘박심’을 업고 대권까지 넘보는 서울시장 출신 오세훈이었다.

그러나 정세균은 좌절하지 않았다. 승리를 확신한 오세훈이 다른 새누리당 후보 유세장을 돌며 여유를 부릴 때 그는 청바지 차림으로 하루 20시간씩 지역구를 누볐다. “종로에 세 명만 모이면 정세균이 나타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오세훈을 큰 표 차이로 거꾸러뜨리고 6선 고지에 올랐다. 피닉스(불사조)가 된 것이다. 국민의당 덕도 봤다. 국민의당 후보가 오세훈 표를 적지 않게 잠식하면서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다.

국민의당으로 인한 행운은 이어졌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면서 야당 몫이 된 국회의장직을 놓고 박지원과 국민의당이 “친노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독자 계보를 꾸리며 친노 색채를 빼 온 정세균이 의장직을 차지할 수 있었던 배경의 하나다.

의장이 된 그는 연타석 홈런을 쳤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비판한 개회사로 “국회의장 개회사도 뉴스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어 여당의 봉쇄망을 뚫고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해 청와대에 치명타를 날렸다. 당 대표를 세 번이나 지내고 산업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음에도 존재감이 약했던 정세균이 정치인생 20년 만에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셈이다.

자연히 그에게 가해지는 여권의 공세도 거세다. 한 친박 의원은 “지금 버릇을 고쳐놓지 않으면 야당발 악법 직권상정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현직 의장 형사고발이란 초강수까지 불사하며 집중포화를 퍼붓는 이유다.

하지만 정세균은 꿈쩍도 않는다. 언론의 카메라 세례를 누릴 만큼 누리고 나서 타협해도 충분하다는 심산인 듯하다. 자신을 ‘야!’로 부른 정진석 에 대한 분도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은 연타석 홈런을 쳤으면 타석을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한다.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책임이 새누리당에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국회의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회를 정상화할 무한책임이 있다. 최소한 ‘맨입’ 발언에 대해선 유감을 표명하는 게 도리다.

정세균은 국회의장 후보에 지명된 직후 손학규계 의원들의 회식자리를 불쑥 찾아갔다. 정세균과 손학규는 과거 당의 리더십을 놓고 경쟁한 관계라 사이가 서먹하다. “어떻게 여기 오셨나”며 당혹해하는 손학규계 의원들에게 정세균은 “다 같은 식구들인데 난 여기 오면 안 돼? 술 한잔 줘”라며 연신 웃음을 날렸다. 며칠 뒤 국회의장 표결에서 287표 중 274표를 얻어 무난히 당선된 건 이런 넉살과 친화력 덕도 있었을 것이다. 그 넉살을 다시 한번 발휘할 때가 지금이다. 이정현의 단식 현장을 찾아가 중단을 호소하고 정진석을 만나 “유감 표명할 테니 국감 들어와. 그래도 ‘야’는 심했다”며 껴안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