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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고백한다, 중국 기업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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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임미진
임미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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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진
산업부 기자

기자인 내가 중국 기업을 잘 몰랐다. 일부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오른 것만 알았다. 중국 기업은 아직 추격자이겠거니 했다.

갤럭시노트7 배터리 사태를 돌아보자. 이슈가 달아오르자 원인에 관심이 쏠렸다. 대체 누가 불량 배터리를 만들었을까. 취재를 해 보니 배터리 셀 제조는 삼성SDI의 한국 공장이, 최종 조립은 중국의 협력사가 맡았다. 이거로구나. ‘중국에서 조립한 삼성SDI 배터리가 결함을 일으켰다’는 기사가 나갔다. 네티즌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왜 못 믿을 중국 기업에 조립을 맡겼느냐’는 댓글이 주류였다.

결과적으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기사가 됐다. 배터리가 중국에서 최종 조립된 건 맞다. 하지만 결함의 원인은 한국 공장에서 만든 배터리 셀이었다. 전량 리콜에 나선 삼성전자의 구원투수는 누구였을까. 역설적으로 중국의 배터리 업체 ATL이다. 애플 아이폰 시리즈에 배터리를 공급해 온 저력 있는 회사다. 노트7은 삼성SDI의 물량을 끊고 전량 ATL 배터리만 쓰기로 했다. 중국 기업의 기술력에 편견을 갖고 있던 기자도, ‘그럴 줄 알았다’고 고개를 흔들던 독자들도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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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9월 21일자에 1회를 보도한 ‘중국의 미래, 선전을 가다’ 5회 기획기사를 준비하며 이런 충격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세계 주식 시가총액 500대 기업에 중국 기업이 얼마나 포함돼 있을 것 같은가. 28일 기준 홍콩·중국 증시 상장 기업만 따져도 47곳이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기업을 포함시키면 50곳이 훌쩍 넘는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정부의 비호를 업은 국영기업이 대부분이라고 폄하할 이들도 있겠다. 국영기업이 전체 숫자를 불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알리바바(9위)·텐센트(11위)·바이두(129위)·JD닷컴(293위) 같은 쟁쟁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건 어떤가.

500위권에 포함된 한국 기업은 7곳뿐이다. 삼성전자(25위)를 빼면 한국전력(323위)이 그나마 상위권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모두 400위권이다.

최근 기자의 지인은 고교 진학을 앞둔 딸과 함께 중국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고 했다. 말끝마다 “중국은 그래서 안 돼”라며 중국 비하 발언을 일삼는 딸에게 중국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 나라인지를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다. 이 딸은 좋은 아빠를 둔 덕에 세상을 제대로 볼 기회를 가질 것이다. 중국을 알 기회가 없이 중국산을 업신여기고 중국인들을 홀대하는 한국인이 아직 너무 많다. 기획취재 뒤 받은 충격을 한 중국 시장 전문가에게 털어놓자 돌아온 답변이 계속 귀에 맴돈다. “그러게 중국 우습게 아는 나라는 한국뿐이라잖아요.”

임 미 진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