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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각자 계산해"… 달라진 국회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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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12시30분 경기 용인의 한 순대국집. 쌀값 안정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의원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정찬민 용인시장 등이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과 함께 나타난 더치페이 문화다. 김 정책위의장은 “현장방문 후 참석자들이 순대국을 먹고 각자 1만3000원씩 밥값을 계산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이 국회의 오랜 관행을 바꾸고 있다. 감시의 눈초리가 국회에 쏠렸다는 점을 의식해 각별히 주의하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민권익위가 만든 안내책자를 나눠주며 “책자의 내용을 모두 숙지하고 특히 향후 6개월 동안 시범케이스로 걸리지 말라는 기관의 충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국정감사 풍경도 확 바꿔놨다. 국감은 식사를 거르고 밤 늦게까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과거엔 피감기관에서 의원실에 피자·치킨·도시락 등을 보내주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국회 정무위 소속 한 보좌관은 “올해부턴 김영란법을 의식해 피감 기관에서 야식 제공을 뚝 끊었다”며 “이렇게 배고픈 국감은 처음 보낸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의 식사 약속도 뚝 끊겼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방에 찾아오는 민원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 함께 돈 내고 밥먹자고 말하기도 실례인 것 같아 그냥 차나 한 잔 하면서 대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같은 당 박명재 사무총장도 사무실에서 보좌진들과 함께 1만원 짜리 죽을 시켜먹었고, 이혜훈 의원도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의원실 직원들과 2만원짜리 식사를 했다. 이혜훈 의원실 측은 “김영란법 규정에 맞추기 위해 국회 주변에서 3만원이 넘지 않는 가격대의 식당 리스트를 만드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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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의 지역구 민원 수렴 활동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매달 두 번씩 지역구민들의 민원을 청취하는 ‘민원의 날’을 7년째 시행해 온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도 이 행사가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닌지 검토중이다. 김 의원은 지난 19대 국회 정무위에서 김영란법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김 의원측 관계자는 “공익적 목적의 제안이나 고충민원을 듣는 것이 국회의원의 역할 중 하나인데 이 역시 김영란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감시와 고발의 풍토를 만드는 법률이라 부담이 있는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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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경ㆍ이지상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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