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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공식행사 5만원 식사 사회통념 어긋난다 볼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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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과 3만원 이상의 식사를 한다고 반드시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인 행사나 간담회에서 1인당 5만원짜리 한정식을 먹는 게 사회 상규와 사회 통념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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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대법원(원장 양승태)이 전국 법원에 배포한 내부 행동지침서인 ‘청탁금지법 Q&A’를 통해 이 같은 해석을 내놨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시행령에서 규정한 ‘3·5·10 규칙’에 대해 “구체적 사례들이 실제 재판으로 가면 다툼과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한 것이다. 이는 과태료 재판을 통해 실제 부과 여부를 결정하는 건 전국 법원이기에 의미가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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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음식점 외부에 1인당 3만원 미만의 ‘김영란법 맞춤형 메뉴’를 소개하는 광고판이 등장했다. [사진 김성룡 기자]

‘3·5·10 규칙’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과의 식사(3만원 이하)·선물(5만원 이하)·경조사비(10만원 이하)에 대한 처벌 예외 규정이다. ‘원활한 직무 수행이나 사교·의례 목적’이 전제다. 하지만 대법원은 변호사회가 1년에 두 번 주최하는 판사와의 간담회를 예로 들어 “1인당 5만원짜리 식사가 제공됐다고 무조건 처벌 대상은 아니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식적인 간담회 등에서 참석자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제공된 음식 등이라면 참석자의 범위와 직무, 비용 부담 등을 따져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선 권익위는 “3만원이 넘는 음식물 제공은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금지”라는 입장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그렇다고 3만원이 무조건적인 기준은 아니며 행사나 간담회가 대표성·공식성을 갖췄는지가 중요하다 ”고 말했다.

최종 판단할 법원의 내부지침서
“참석자 모두에게 준 음식이면
범위·직무·비용부담 등 따져봐야”

대법원은 김영란법의 핵심 쟁점인 ‘직무 관련성’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내놨다. 직업적 분류를 통해 직무 관련성을 폭넓게 적용한 권익위의 지침과 달리 구체적인 담당 직무를 고려해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는 거였다. ‘현행 형법상의 뇌물죄를 참고해 보더라도 김영란법상 직무 관련성 범위는 지나치게 넓다’는 인식에 기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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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은 서울대병원 관계자가 27일 병원 로비에 김영란법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사진 김성룡 기자]

대법원은 김영란법의 ‘입법 미비’도 문제 삼았다. 처벌 대상자로 공직자 등 ‘개인’만을 명기하고 법인·단체는 누락했다는 것이다. 권익위는 “협찬이나 기부 명목의 금품이 들어와 기관장이 이를 자기 명의로 수령했다면 결국 단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기관장을 처벌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경우 사실상 법인·단체가 수령 주체다. 따라서 ‘개인을 처벌한다’는 권익위의 지침은 실제 재판에선 배척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신고와 법적 다툼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 인터넷망인 ‘코트넷’에는 “김영란법 위반에 대한 다툼이 많을 것으로 보이나 과태료 재판을 위한 증거자료 수집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상당한 업무 증가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다. 대법원은 필요하면 전담 재판부를 만들고 예산과 인력도 늘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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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도 이날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검찰 조치’를 발표했다. 윤웅걸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서면신고가 원칙이며 무분별한 신고에 대해서는 수사권 발동을 자제할 것”이라며 “직업적 파파라치가 무차별적인 신고를 할 경우 무고죄 적용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 실무적 기준은 앞으로 법원의 판례를 보면서 정립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글=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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